강봉조, <나는 오후에 탐닉한다>, 갤리온, 2008
카를로 페트리니,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이후, 2008
피터 멘절, <헝그리 플래닛>, 월북, 2008

작은 탐닉 시리즈인 나는 오후에 탐닉한다를 먼저 읽고, 헝그리 플래닛을 읽고, 슬로푸드 맛잇는 혁명을 나중에 읽었습니다. 하지만 책 크기도, 작가도, 분위기도 다른 책들임에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강봉조씨는 사진작가입니다. 하지만 사진뿐만 아니라 공사도 하고, 집 인테리어도 하고, 직접 페인트칠도 하며 집 수리도 잘 합니다. 시카고에 예쁜 집을 한 채 사놓다 보니 예산이 부족해서 집 수리는 직접 몸으로 뛰어가며 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마음에 안드는 부분을 조금씩 고치며 아기를 키우며, 집 옆에 텃밭을 만들고 마을 공동 채소밭도 가꾸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맛있는 채소를 직접 키웁니다. 농약도 화학비료도 쓰지 않고, 바둑이의 배설물과 여러 가지를 모아 퇴비를 만들어 채마밭에 줍니다. 검은색의, 비옥해보이는 토양에서 기른 채소는 밥상에 올라 식구들의 입을 즐겁게 합니다.


슬로푸드에서 말하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들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유를 대량생산하는 홀스타인종이 아니라 토착종으로, 적지만 진한 우유를 생산해 마을 특유의 치즈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소들의 이야기와 재래종의 다양한 옥수수를 키우려 하는 인디오들의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 닿아 있겠지요. 세계은행의 추천대로 해안가에 참새우 양식장을 만들었지만, 새우에게 주는 먹이가 부패하고, 대량의 항생제를 투여하며 해안은 망가지고 망그로브 숲은 사라집니다. 그 결과는 쓰나미로 돌아옵니다. 2005년의 대 지진으로 인한 대형 해일은 해안을 덥쳤고, 파도 완충판 역할을 하는 망그로브 숲이 사라진 그곳은 엄청난 피해를 입습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이 그 지역을 "조금 더 잘 살게"하겠다며 돈을 벌기 위한 참새우 양식장을 만들었고 남은 것은 쓰나미의 피해뿐입니다. 만약 원주민들이 하던대로 작물 재배를 했다면 휴경기간에 참새우를 길러 여분의 수익을 올리고 땅은 또 잠시 쉴 수 있었을 거랍니다. 참새우 양식은 했습니다. 다만 대량이 아니었고 환경친화적으로 했다는 것이 달랐을 뿐입니다.

인디오들이 재배하는 대부분의 옥수수도 다국적 종자회사에 특허권이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물도 아마 그 종자회사들이 특허 취득을 했을겁니다. 미스김라일락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헝그리 플래닛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식문화를 보여줍니다. 평균적은 아닐지 몰라도 그 나라를 다니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가족들의 집을 방문해 그들의 1주일치 식량을 구입하고 사진을 찍고 함께 생활합니다. 북쪽으로는 그린란드, 적도 근처의 나라들, 그리고 차드의 난민촌, 미국 텍사스, 일본의 오키나와, 중국의 농촌과 도시 근교 마을. 하여간 다양한 여러 나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식문화는 그리 다양해보이지 않습니다. 절반 정도의 국가에서는 청량음료와 맥주와 콜라가 빠지지 않습니다. 특히 콜라! 일주일 마시는 콜라를 모아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무섭습니다. 4인 가족이 저렇게 많은 콜라를 마신다니, 그 여분의 칼로리는 어디로 갔을까 싶습니다. 아이들의 입맛은 인스턴트로 향하고 있고 좋아하는 음식의 상당수가 패스트푸드랍니다. 점차 지구촌의 입맛은 하나로 모아지고 있는 걸까요. 슬로푸드와 헝그리 플래닛을 읽는 동안 서로의 글이 번갈아 떠오릅니다.



무거운 이야기는 이정도.
헝그리 플래닛은 책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그래서 읽는 도중에 몇 번은 들고 나가기 무겁다면서 슬로푸드를 들고 나갔습니다. 슬로푸드는 판형이 헝그리 플래닛보다 크지만 두께는 얇고 무게는 훨씬 가볍습니다. 지질의 차이입니다. 헝그리 플래닛은 전면 컬러화보에 아트지를 썼으니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고로 치한이 달려든다 싶으면 주의하세요. 이 책을 휘둘렀다가는 과실치사일겁니다.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잘못 맞으면 살인 미수까지도..? 하지만 헝그리 플래닛의 매력은 그 생생한 사진들입니다.
보고 있는 내내 집안의 일주일 식량을 몽창 꺼내 찍어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일주일치 식량(간식)을 한 번에 사두면 하루면 없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특히 아이스크림은 이틀이면 동이 날겁니다. 그런 무서운 일은 못하죠.

.. 그러고 보니 하겐다즈가 사진에 한 번도 등장을 안 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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