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많이 읽고 있는데 리뷰는 계속 안쓰고 있었습니다. 출퇴근하면서는 계속 책을 보고 있으니 소화되는 양은 많지만 남는건 없었다는 반증일까요.
스마일즈의 검약론은 엊그제 한겨레21에서 자조론이 일제시대 번역되었고 그 목적이 무엇이었다고 듣는 순간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거기에 저는 검약론에서 말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할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취미생활만 몇 가지인데 그걸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거죠.
(생각나는 것만 적자면 온라인 게임, 퀼트, 십자수, 소품만들기, 천수집, 책수집, 홍차, 커피, 레시피 수집, 슬슬 먹거리도 만들고 있고, 거기에 맛집 기행에 케이크 기행에 커피 기행도 있고, etc. )
그래도 사회초년생 때의 기억으로 돌아가 좀더 고삐를 조이자는 생각은 했으니 성과는 있었던 셈입니다.
안도현씨가 편집한 고양이는 어디서 명상하는가.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강력 추천합니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집에 고냥마마님을 모시고 오게 될 수 있으니 그 뒷감당을 하실 수 있는 분들만 읽으시는게 좋을듯합니다. 저는 제반 상황을 열심히 떠올리며 간신히 참았습니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이야기꾼 여자들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은 분위기가 닮았습니다. 도쿄기담집은 읽을 생각이 없었지만 지하철 안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꺼내 들어 읽었는데 쉽게, 술술 넘어가는 단편집이더군요. 몽환적이고 뭔가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의 환상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무협형 판타지 소설과는 100만광년 정도 떨어져 있으니 유념하시길. 그런 류의 판타지가 아니라 환상소설쪽입니다.)
이야기꾼 여자들도 비슷합니다. 읽고 나면 부럽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침체되어 있지만 안온한 그 분위기도 마음에 듭니다. 무엇을 부러워했는지는 보시면 아실겁니다.
시노다 고코의 요리와 여행이야기는 시간대를 잘 선택해서 읽으셔야 합니다. 세계 각지의 음식 이야기가 나와 있는 고로 식전이나 다이어트 중, 저녁 시간에 읽으면 상당히 힘듭니다. 시간 안배가 중요한 책이지요. 둘쎄 데 레체 외에도 미트볼 스파게티나 베이글 샌드위치나, 동남아쪽 음식들이나 포 등의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합니다. 몇 번 읽어도 재밌는 음식책입니다.
알래스카의 늙은곰이 내게 인생을 가르쳐주었다라는 긴 제목의 책은 제목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보고 관조하며 인생을 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굳이 비교하자면 로빈슨 크루소와도 같은 삶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의 일지입니다. 로빈슨 크루소, 15소년 표류기, 나의 산에서 등이 취향이라는 분께 권합니다.
알래스카 오지에서 직접 통나무를 자르고 오두막집을 짓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며 생활하는 것이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지니, 조금은 부러웠습니다. (조금만 부러웠던 것은 제가 이런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능력 부족이예요.;;;) 다른 건 몰라도 효모 팬케이크와 효모 비스킷, 블부베리 잼은 어떻게든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효모랑 생 블루베리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아, 재미있었던 걸로 치자면 이 포스트에서 소개하는 책들 중에서 단연 1위입니다.
그리고 대박은 이 책. 김서령의 家. 부제가 "우리시대 교양인들이 사는 곳, 격조높고 아름다운 집으로의 초대"입니다. 이곳에 소개된 사람들이 교양인인지 아닌지는 교분을 갖지 못한 제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자가 소개하는 대로,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집구경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느낌은 이랬습니다.
혹시 죽비를 아십니까? 선방에서 스님들이 공부할 때, 잠깨라고 목덜미를 후려치는 그 회초리. 인사동에서도 팔고 있으니 보신분들이 많을겁니다. 소리도 장렬하지만 맞았을 때의 느낌도 참 장렬합니다. 초등학교 때 한 대 맞아봤는데 아팠다기보다는 그 뒤따라오는 소리에 놀라서 몰래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부모님들 108배 하시는데 쫓아갔다가 자야하는데 안자고 놀다 걸려서 혼난겁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죽비로 목덜미를 후려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어디 한 군데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는지라 더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먹고 자고하는 곳이 아니라 생활 공간이며 그 생활이 삶이 되어 겹겹이, 켜켜히 쌓여 만들어지는 곳이 집, 家, home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등장하는 분들의 나이대가 30대 중반 이상에서 60대, 혹은 그 이상으로 높은 편이라 그런지 여기 소개되어 있는 집들은 다 살아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간에-그렇다 해도 다세대 주택은 있지만 아파트는 없었습니다. 역시 정원을 가꾸고 관조하고 관망하고, 집을 만들어가는 곳은 아파트보다 열린 곳이 적당하다는 이야기일까요-위치를 막론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더군요.
그냥 집이라고 생각하면 관리하기 쉬운 아파트를 떠올리고 그 안에 내 공간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혼자 단촐하게 살기에는 그런 아파트가 편할지는 모르지만 여러 수고로움을 겪지 않고는 내 집을 만들 수 없다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맛보았지요.
아직 꺾어진 60은 아니니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면 언젠가는 진짜 내 집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집을 건축할 경우 땅값과 건축비와 설계비를 감안해야하니 등골 휘게 모아야겠군요. 주변에 건축쪽 일 하시는 분도 있으시니 사전에 많이 의논을 해서 제대로 된 집이 나오도록 노력을....(오늘도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나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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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5. 24.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