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청색의 수수께끼』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소설의 반전이 들어 있으니 가려서 열어 보셔야 합니다. 자칫하다가는 내용 폭로를 당할 수 있으니까요.
일본의 친척관계는 호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이모, 고모라는 단어까지 확실하게 가려 쓰는지, 아니면 아주머니, 혹은 아저씨라는 말로 3촌 이내의 혈족을 두루뭉실하게 쓰고 있는지 말입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관심을 안 두고 있었어요.
일단 영어권은 aunt와 uncle이라는 단어로 홀수 촌 친척들을 부릅니다. 짝수는 전부 cousin.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가까운 친척인지는 맥락을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형제 지간이라든지, 아버지와 형제 지간이라든지, 할아버지들이 형제 지간이라든지 등의 힌트가 있어야 얼마나 가까운 친척 지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상당히 구체적이지요.
어머니의 자매는 이모, 어머니의 남자 형제는 외숙부나 외삼촌이라 부릅니다. 아버지의 여자 형제는 고모, 아버지의 남자형제는 백부나 중부, 숙부 등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3촌이내이며 5촌이면 당숙(외당숙), 당고모 등으로 부르고 5촌 아저씨로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갑자기 여기서 왜 이 이야기를 꺼내냐면, 『청색의 수수께끼』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인 「다나에」에서 친척 호칭을 잘못 썼기 때문입니다.
사건 공범인 사에는 범행의 주 원인이 된 사나에가 자신의 숙모라고 말합니다. 숙모는 숙부의 아내, 다시 말해 아버지 형제의 부인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안됩니다. 사나에는 남편인 우사미와 헤어진 뒤 친정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남편은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집안과 의절해 아내에게 빌붙어 지냈기 때문에 시댁하고는 전혀 교류가 없었을 겁니다. 남편하고 헤어지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봐야 친정이지요.
근데 그 다음에 또 엉뚱하게 번역한 곳이 있습니다. 공범 사에와 주범 칸나는 사촌 지간입니다. 사에 말로는 사나에는 이혼 뒤에 '어머니의 처가'에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가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부르는 것 아닌가요. 어머니의 친정이나 친가라거나 아버지의 처가라면 이해가 되는데 저거 뭐라 생각해야하나 헷갈립니다. 어느 쪽이건 어머니의 친가라고 받아 들이고, 사나에가 친정으로 돌아간 것이었다면 둘은 이종사촌간입니다. 즉, 숙모가 아니라 이모입니다.
숙모가 맞다고 가정하면 말이 더 안 되는게, 작은 아버지의 부인이라면 우사미는 사에의 작은 아버지가 됩니다. 분위기를 보았을 때 둘은 전혀 혈연 관계가 아닙니다. 생판 남이라니까요.
그 어떤 말을 듣고도 '허허허, 오해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100% 믿으시면 곤란합니다.; 80% 정도는 진실이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지난 월요일과 금요일에 있었던 정신 공격에서 패배해 피폐한 상태라 이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가능하면 올해는 그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웃어 넘길 수 있는 해탈의 경지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 나이에는 머나먼 이야기이고 그러기엔 부단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압니다. 수련, 수련, 수련,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암시가 있어야지요.
설에는 독신생활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라는 돌려 말하기 신공에, 화를 삭히면서 웃고 있느라 힘들었지만 어제는 또 달랐습니다. 외가 쪽 아주머니(어머니의 사촌) 결혼식이었는데 그 분이 제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나이상 제 차례는 그 다음입니다. 만약 제가 어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집중포화를 맞았을 것인데, 어쩌다보니 제가 아버지를 도와 접수대에서 축의금 봉투를 받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같이 하기로 한 육촌 동생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손님들이 빨리 오신데다 육촌 동생은 한 시간 전에 도착했기에 제가 아버지 옆에서 돕고 있었습니다. 근데 손님들이 갑자기 몰리니 빠져나가기도 그렇고 계속 받게 되더군요. 하하; 보통 축의금 봉투 받을 때는 남자가 주로 하고 여자가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뭐, 예전에도 한 번 해본-그 때는 접수 후에 봉투 정리를 도움-일이라 앉아 있었지만 정신 없는 건 마찬가지로군요. 다음에는 노트북을 들고가 엑셀 정리를 해버릴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ㅈ-
하여간 이런 상황이라 정리가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저녁 먹으러 들어가서 친척들의 집중 포화를 받았습니다. 주로 대상은 이모부와 이모들. 언제 가냐, 남자는 있냐라는 순서로 이야기가 가면 좋으련만 언제 가냐라는 대답에 엉뚱하게도 어떤 분이 '올 가을에 갈거예요'라고 대답하는 것 아닙니까? 그 분이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 성격도 잘 알고 있지만 당황했습니다.
(어머니께 지금 들으니 또, '그거 다른 사람들 말 막느라고 그런거야'라는 군요.-ㅂ-; 하기야 그런 말을 들으면 '왜 안가냐?' '빨리 가야지' 등의 말이 차단되니...)
어쨌건 이렇게 친척들에게 시달리다보니 엊그제는 어머니께 내년부터는 명절 때 안간다고 선포했다가 설전을 벌였습니다. 흑; 하지만 정말로 만나고 싶지 않다고요.;ㅂ; 정 안되면 아예 명절마다 일본으로 튀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엔 내년 1월이 너무 바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