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밝히자면, BL소설 감상입니다. 취향 아니면 넘어가세요.

 

 

바림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바림 : 색칠을 할 때, 한쪽은 진하게 칠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점점 엷고 흐리게 칠하는 일

 

미술 기법 중 하나랍니다. 유사어로 그라데이션이 뜨긴 하지만 아무래도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닌 모양입니다. 다만, 책 표지를 보면 바림이 어떤 느낌인지는 짐작하실 겁니다. 그 옛날에, 하늘색 좋아하냐면서,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하늘의 색을 그린 웹툰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에서 느껴지는 하늘색™이 바림 기법일 겁니다. 아니, 화선지에 칠하는 먹의 농담을 봐도 이해가 되겠지요. 제목처럼 이 연애담은 누군가에게 물들어가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주인공의 입으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하루의 바림』은 네임버스nameverse(name + universe)입니다. 몸에 누군가의 이름이 문신처럼 새겨진 사람들이 있고, 보통은 그 이름 주인의 글씨체랍니다. 네임 커플은 운명과도 같다고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이 소설은 그 비틀린 운명을 보여줍니다. 운명이라고 하나, 네임버스라는 태생적 운명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아요. 운명을 파괴하고, 새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고, 그렇게 운명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김의준의 성장담이 주제입니다. 그리고 부주제는, 운명에 배신당하고 아파하는 이준을 보듬어 주는 정이겸의 존재입니다.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는 골든 리트리버 멍멍이가 부주제입니다.

 

잠시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았지만, 이 책의 주요 인물은 다섯입니다. 주인공은 지방에서 올라온 유학생인 김의준이고, 재수한 의준이보다 한 학년 위지만 동창이자 절친인 재현이, 그리고 과 내의 남신(...)으로 유명한 김이겸, 그리고 그 친구인 지호. 마지막으로 배수원.

 

외동아들인 의준은 목장을 이어 운영하라는 부모님의 제안(?)을 물리치고 서울로 대학을 옵니다. 재수해서 온 대학은 친구 재현이 있었고,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운명과도 같은 자신의 네임을 만납니다. 한 학년 위인 네임은 매우 친화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의 배수원입니다. 그리고 수원과 사귀기 시작한 의준은 ... (하략)

 

 

재현과 지호는 주인공의 주변에서 여러 모로 도와주는 조연으로, 성격들이 매우 좋습니다. 친구를 매우 아끼고 보듬는 재현과, 어쩌다보니 얽혀서 코 꿰인 덕에 어설피 도와주는 지호. 이 둘의 존재도 소설의 진행에 상당히 큽니다. 특히 재현은 의준이가 상처받고 흔들릴 때 옆에서 든든하게 지지합니다. 덕분에 이겸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거기에 의준을 맹목적으로-라고 할 정도로 쫓아다니는 이겸 덕에 그간의 가스라이팅을 벗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어떻게 보면 물도 화분갈이도 제대로 안해주는 주인을 만났던 식물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물과 애정을 듬뿍 받고 흡수해서 예쁜 꽃을 피우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뭐든, 생물을 피워내는 것은 관심과 애정이란 걸, 의준이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셈이지요. 그리고 그 주인은 아무리봐도 골든 리트리버 댕댕이. 우리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무한반복)을 외치며 쫓아다닙니다. 그래요. 매우 귀엽습니다. 식물적 관점으로 보면 말라죽어가는 화분 살리기인데, 동물적 관점으로 보면 정신적으로 바닥까지 치달은 사람을 골든리트리버테라피로 살려내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어느 쪽이건 귀엽다는 건 같습니다.

 

누구에게 집중해서 보느냐에 따라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줍니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 읽어도 좋을 소설이고요.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냉대받는 당신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The Great Only One™입니다. 아, 그게 Great one이란 건 아니고요. 그쪽은 무서운 분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외전 2입니다. 읽으면서 내내 달달해서..... 본편 진행되는 중에도 매우 궁금했던 이야기라 이렇게 뒷 이야기를 들으니 행복하더랍니다. 크흑. 행복하라며 뒤에서 야광봉 흔들고 싶습니다.

외전에서 분리수거 쓰레기의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없습니다. 쓰레기는 분리수거 뒤에 어떻게 폐기장에 들어갔는지 알 필요 없습니다. 그냥, 식물키우기와 댕댕이테라피만 기억하세요.

 

 

 

밤바담. 『하루의 바림』. 시크노블, 2020, 12000원.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 올리는 소설은 여럿 있지요. 밤바담의 소설들이 그렇습니다. 한없이 평범하고 누군가에게 버림받아 혼자라고 생각할 지언정,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주제라고 봅니다. 동화풍의 부드러운 이야기라면, 이미누의 소설은 극복기라고 봅니다. 판타지 소재의 소설들이라 잊을 때가 많지만,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생츄어리』도, 개정판이 아직 독점으로만 풀린 『우리들의 평온한 인생을 위하여』도, 『청춘만가』도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읽고 나서 기빨리는 다른 소설보다는 이 두 작가의 책은 나올 때마다 잊지않고 체크하며 구입하는 거죠. 핫핫핫.

 

넵. 힐링과 위로가 필요한 겁니다... 그런 겁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