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김보영을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소개해주신 분이 M님이었지요. 그 당시 개인지로 찍던 『진화신화』를 읽고 굉장히 감탄하여, 그 뒤에 나온 출판본은 구입은 당연하고 여기저기 도서관에도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넣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SF단편집을 거의 보지 않아서 그 간 손 안대고 있었는데 트위터가 모든 지름의 시작이었습니다. 작년에 아작에서 『저 이승의 선지자』라는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트위터로 접했으니까요. 표지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 덥석 집어 들었지만, 그 표지와 관련해서 그간 책 표지가 어두침침했는데 이번에는 화사하다는 트윗을 읽고는 앞에 출간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을까 아주 잠깐 고민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읽어야 할 책이 산적한 터라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손대었네요. 그러고 보니 책도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한참 미루다가 구입했더랍니다. 사실 '옛 작품만 읽고 최근 작은 안 읽으며 팬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맛 뜨거라~ 하며 집어 들었던 겁니다. 오늘 읽을 책을 고를 때 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더 미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오늘 읽어서 다행입니다. 날이 그래도 맑아서, 여유가 있는 때라서 읽기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목에 적었던 것처럼 매우 난해하지만 읽다보면 그것이 차분히 이해되는 그런 소설입니다. 원래는 다른 단편집에 소개되었던 단편을 중편 분량으로 확대한 소설이라 합니다. 씨앗이 된 소설을 읽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책을 다 읽었으니 찾아볼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설명하기 매우, 매우 난해합니다. 보통 감상을 쓸 때는 제가 파악한 전체 줄거리를 적어가면서 소개하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작가의 말은 책 맨 뒤에 실려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저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어디가 저승이고 어디가 이승인지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분열된 '나'들과 분열과 합일을 반복합니다. 아메바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단세포의 생물체가 아닌가 추정하지만 SF이니 그것이 어떤 생명체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독자는 따라갈뿐.


원래는 하나의 생물체였다가 분열된 2세대들은 하나이지만 또 다릅니다. 그리고 그 세대에서 다시 분열된 개체들은 하계로 내려가 하나의 삶을 겪고 다시 돌아오고 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을 가진 중심 개체인 2세대들은 자신의 분열 개체를 가르치는, 중음(中陰)을 구성하고 거기서 지도를 합니다. 서술자인 나는 그렇게 분열한 개체가 이상을 보이는 걸, '타락'했다고 볼 정황을 파악하고 그와 다시 합일하기 위해 다른 수많은 분열 개체를 삼키고는 제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독특한 성정을 가졌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지나치게 하계의 삶에 집착한 아만, 그리고 특이한 사상을 지녔던 탄재가 그들이지요.

'나'는 그 와중에 타락한 제자를 처치하려는 다른 2세대들의 방해를 물리쳐야 합니다. 2세대 중에는 하계에서의 삶이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며 서로 합일하고 개체를 지키는 걸 선택한 이도 있고 하계의 좋은 삶만을 선택해 쾌락을 추구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나'의 제자들이 타락했다고 보고 움직입니다.



이렇게 보면 줄거리 정리가 쉬워 보이지만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런 실마리가 전혀 없습니다. 주인공의 이야기와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합일과 분열, 그리고 통합된 개체와 각각의 자아 인정이라는 여러 가치관 혹은 생각을 두고는 갈팡질팡합니다. 애초에 분열과 합일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자아를 갖고 있던 존재들이었고, 각 개체, 특히 주인공인 나반의 분열체들은 자아를 유지하고 하나의 개체로 독립해 존재하는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원래 하나였던 2세대들에게는 합일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하나가 되는 것이니 그러한 분리 자아를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나반 역시 다른 이들이 타락이라 부르는 하계에의 집착, 삶에의 집착, 분리 자아 유지 요구 등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혹은 이해하지 않으려 하다가...(하략)



설명하기 어려우니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초반은 어렵지만 그 초반만 넘기면 괜찮다니까요.



마지막에 덧붙여진 외전과 다른 단편은 매우 가볍습니다. 앞 이야기를 읽어 그런지 몰라도 그 자체로 완결된 이 단편들은 앞서 나왔던 단편집의 느낌과 닮았습니다. 짧은 이야기 안에서 완결성을 가져야 하니 아무래도 복잡한 설정은 나오지 않지요. 그러면서도 희망적이고 밝은 무언가를 보여주어서 좋습니다. 본편의 여러 반전을 넘겨 마지막의 결말과 이어지는 외전도 좋았고요. 어찌되었든 저 이승의 선지자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겁니다.




김보영. 『저 이승의 선지자』. 아작, 2017, 14800원.



『새벽열차』나 그 뒤의 외전들이나, 읽다보면 사이버펑크가 아니라 스팀펑크 배경의 그림이 문득 떠오릅니다. 소재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림으로, 아니면 영상으로 짧게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새벽열차』의 말미에 영향 받았던 여러 작품에 모토라도가 없는 것도 재미있네요. 다시 읽다보니 그것도 떠올랐습니다.


분열한 개체와 융합했을 때 자신의 자아는 사라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00년대 초반에 살짝 다룬 소설이 잇었지요. 『마왕의 육아일기』. 서술 장치도 독특했지만 서술자가 등장하는 그 이야기에서 언급한 내용은 나반이 자신의 분열 개체에게 하는 말들과 닮았습니다. 합일한다 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 물론 그건 합일한 주격이 하는 이야기니 그렇긴 하지만 나중에 등장하는 누구씨가 누구의 자아를 유지하는가 생각하면 일리는 있지요.



다 읽고 지금 다시 표지를 보니 표지가 달리 보입니다. 우와아아아...=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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