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자쿠 쥬고(朱雀十五)의 탐정 시리즈 다섯 번째 책입니다. 저자는 후지키 린. 제가 G3.5를 하게 만들었던 원흉인 『바티칸 기적조사관』 시리즈의 저자입니다. 『기적조사관』은 요즘 1년이나 1.5년에 한 권 꼴로 나오고 있는데 책이 늦게 나오는 것은 둘째치고 이야기가 슬슬 산으로 갈 조짐이 있어서 말입니다. 사실 제가 더 능력이 있었다면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모종의 망상 이야기를 써 제꼈을 거라 생각하는 정도로 상당히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각 권의 분위기가 확확 바뀐다는 점도 재미있지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후지키 린의 책은 한국에 드물게 번역되었습니다. 시리즈는 꽤 많이 냈는데 번역이 안되는 작가 중 하나더라고요. 라이트노벨이라기에는 책이 무겁고, 일반 추리소설로 내기에는 라이트노벨은 아니어도 취향을 타는 내용이 많아 그럴 겁니다. 게다가 『기적조사관』은 특정 종교와 관련이 있는 고로 문제의 소지가 있고요. 아니, 『성스런 형님』도 번역되었는데 웬말이냐 싶긴 하지만.... (성스러운 형님이 정확한 표기겠지만 애정을 담아 성스런이라고 씁니다. 하하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2

저자는 후지키 린, 표지는 토레스 시바모토. 『바티칸 기적조사관』에 이어 이 시리즈도 토레스 시바모토가 표지를 담당했습니다. 라노베가 아니기 때문에 속 삽화는 없습니다. 그런 것이 어울릴 이야기도 아니고요. 이 시리즈는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서 손을 안대고 있었는데, 이번 권의 분위기가 긴다이치 시리즈와 닮았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서 B님께 빌렸습니다. 빌려 놓고 다른 일로 내내 미루고 있다가 더 이상 미루면 다른 책들도 못 읽을 것 같아 마음 먹고 붙잡아 달렸습니다. 앞의 100쪽 가량을 읽는데는 열흘 넘게 걸렸지만 뒤의 300쪽은 가속페달을 밟은 것처럼 점점 속도가 올라서 어제 마지막 100쪽을 다 읽었습니다. 물론 성격상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고 설명이 나오는 것 같은 부분은 잽싸게 건너뛰어 가며 사건만 파악했습니다.



아주 간단히 내용을 요약하자면 선조들이 사고 친 것을 후손들 중 누군가가 미친듯이 폭주하며 고리를 끊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이 몇인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막말로 표현하면 "X는 누가 싸고 치우는 건 후손이 하고"의 수준입니다. 민폐 단계로 보자면 도쿄전력의 뒤치닥거리와 비슷한..(...) 아니, 뭐, 이건 국가적인 문제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섬 하나가 통째로 말려들어간 셈이니까요.


앞 시리즈를 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후지키 린의 스타일입니다. 오랫동안 미루고 커버만 씌워두었다가 보는데, 보는 도중 '이 분위기 아주 익숙한데'라고 생각하고 3초 뒤에 『기적조사관』을 떠올렸지요. 나쁘게 말하면 상투적이고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이 길지만 이게 일어가 아니라 번역서였다고 생각하면 별 문제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숨돌릴 틈도 없이 연속적으로 사건이 휘몰아칩니다. 주인공인 리쓰코가 책 말미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서문에 해당하는 시간은 앞의 100쪽 조금 더 되는 분량에서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이었지만 뒤에서는 이틀에서 사흘 가량에 거의 폭주하든 사건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특히 앞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스자쿠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하나 하나 트릭이 풀리고 사건이 해결됩니다.



범인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신원미상의 시체도 짐작했던 인물이었고, 그 뒤에 등장하는 다른 시체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범인의 정체 등은 초기부터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도 그런게 추리소설이잖아요. 몇몇 추리소설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등장인물 중에 범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하기 상당히 쉬웠고요. 하지만 다른 시체의 정체와, 그 정체와 관련되어 범인이 범행을 기도한 또 다른 이유, 그리고 자백한 이유를 생각하면 ... 입에서 불을 뿜고 싶은 정도입니다. 범인을 눈치챘을 때부터 마음에 드는 인물이 이렇게 훅 가는 구나 싶었던 데다, 결국엔 선대들이 사고 친 것을 뒤에서 수습하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결말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런 폐쇄적인 섬 사회의 지배집단에서 흔히 발생하는 근친상간은 그쪽을 질색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기에 거슬릴 수 있고요. 선대에 해당하는 그쪽 인물들은 다같이 드럼통에 시멘트 부어 넣고 후쿠시마 앞 바다에 수장시키고 싶은 심정입니다. 참.ㅠ_ㅠ 아냐, 그래도 스자쿠가 나섰으니 그 사람의 인생은 그래도 보장되었겠지요. 아마도. 상황을 봐서 그 뒤의 섬 상황은 안 봐도 시궁창이겠지만 그건 알 바 아닙니다. 하하하하....


트릭들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스자쿠가 없었다면 이 사건들이 그냥 묻혔을 거란 생각도 드는데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 섬은 의외로 평온하게 흘러갔을 겁니다. 어저면 스자쿠와 리쓰코가 있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는지도 모르지요. 진상은 밝혀졌지만 그리 좋은 결말은 아니니까요.




藤木稟.『大年神が彷徨う島 探偵・朱雀十五の事件簿』. 角川書店, 2014, 778엔.


2014년에 발행되었지만 『기적조사관』보다 앞선 작품입니다. 도쿠마(德間)쇼텐에서 2000년에 나온 문고본이 있거든요. 이미 완결도 났다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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