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강원도지사의 감자팔이에 이은 아스파라거스 팔이였습니다. 그 때문에 트위터에는 또 다시 아스파라거스 구입 광풍이 불었고, 애초에 티켓팅에는 조예가 없는지라 선착순 판매는 포기하고 다른 판매처를 찾았습니다. 저보다는 G의 옆구리를 퍽퍽퍽 찔러 구매를 시작했던건, 아스파라거스 같은 서양 출신 식재료는 G가 더 잘 해먹기 때문입니다. 아니, 뭐, 한국 출신 식재료든 동양 출신 식재료든 뭐든, 요즘에는 집에서 뭘 해먹는 일이 드무니까요. 그래서 G 옆구리 찌르면 알아서 구입하겠지 싶어 시작한 겁니다.

 

찾아보니 네이머 스마트스토어에 여러 가게들이 들어와 있더군요. 그 중 양구쪽 농가를 찾아서 주문했습니다. 물론 검색하고 주문하고 하는 건 모두 G에게 떠넘겼습니다. 제가 한 일은? 도착한 아스파라거스를 잘 받아뒀습니다. 흠흠흠.

 

 

 

아스파라거스 굵기에 따라 소, 중, 대의 세 종류가 있습니다. 무게를 달아 보내주다보니 가는 아스파라거스는 수량이 많고, 굵은 쪽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아스파라거스 굵기 비교 사진에 모나미 153이 올라와 있더군요. 가장 가는 아스파라거스의 굵기가 볼펜대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제가 주문한게 아니라 헷갈려서 확인해봤더니, 대는 품절이었고 소와 중이 있어서 각각 1kg 씩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아스파라거스의 사진으로 끗.

 

안 해먹는다고 해놓고는 주말에 어머니가 만든 아스파라거스 반찬과 요리를 넙죽 받아 먹고는, 남은 걸 들고 왔습니다. 마늘쫑 볶듯이 간장과 마늘 양념으로 볶았는데, 그렇게 먹어도 맛있더군요. 거기에 닭다리살을 쓴 닭고기 아스파라거스 조림도 맛있습니다. 아니... 아스파라거스의 단맛에 닭고기가 어우러지니 젓가락이 안 멈춥니다.

 

그래도 자취방에서 뭔가 따로 해먹기는 번거로워서 안 먹으려 했다가, 오래 두면 다른 나물들이 흔히 그러듯 맛없진다는 경고를 수차례 들었던 지라, 저녁에 꺼내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프라이팬에 찌듯이 살짝 볶았습니다. 안 자르고 그냥 하려다가 프라이팬이 작아서 중간 한 번만 잘랐습니다. 그리고 살짝 물 붓고 뚜껑 덮어서 그대로 가열.

 

음.

맛이 어땠냐면 말입니다. 채소보다 고기를 주장하는 저지만, 그래서 고기를 더 찾아먹는 저지만, 아스파라거스의 맛은 진짜 저를 홀리더라고요. 원래는 저기에 머스터드나 맥주를 곁들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 둘 집어 먹다보니 냉장고에서 뭔가 꺼낼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한 접시를 홀랑 비우게 되더군요. 다 먹고 나서는 한 상자 더 구입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

 

굳이 맛이나 식감 비교를 하자면, 깍지콩과 비슷합니다. 가끔 일본 여행 갔을 때 여기저기 섞여 나왔던, 야들야들하고 아삭아삭 혹은 아작아작한 식감인 그 깍지콩 말입니다. 살짝 풋내가 나는 듯하지만 그게 또 매력인, 씹는 맛이 있는 채소지요. 어떻게 보면 완두콩 같기도 하고요. 하여간 그런 풋내와 단맛이 동시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두릅 줄기부분의 씹는 맛과도 닮았습니다. 향이야 두릅이 훨씬 강하지만, 단맛은 아스파라거스가 더합니다. 봄의 맛이 이런 느낌인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소스 찍어 먹을 생각도 안하고 앉은 자리에서 한 접시를 다 비웠던 겁니다. .. 그리고는 지금 더 주문할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고요. 크흑. 그러니 다들 봄을 맛보세요. 2kg에 3만원이면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부담갖지 말고 시도하세요. 외국채소지만 그런 장벽따위는 무시할 정도로 맛있습니다.;ㅠ;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마녀수프에서 토마토와 셀러리를 빼고 닭살코기를 추가하면 됩니다. 어렵지 않아요.


위의 커다란 냄비에 들어간 분량은 양배추 반통, 당근 큰 것으로 하나, 양파 네 개입니다. 다만 양파는 겉부분이 썩어 도려내고 썼기 때문에 큰 양파로 2개, 중간 양파로 3개 정도 분량이라고 보면 됩니다. 닭가슴살은 나중에 확인하니 350g짜리 팩이더군요. 국산인지 수입인지는 확인 안했습니다. 하는 걸 잊었네요. 하하;



한 냄비 가득 만들어 놓으면 그래도 5일 이상 먹는데, 아침에만 먹는데다 주말에는 집에 가니 건너뜁니다. 그래서 열흘 정도에 한 번씩 만드는 것 같군요. 뭐, 지금까지 달랑 두 번 만들었으니 평균 내기는 어렵습니다.






아침에 먹을 때는 우유 반컵과 달걀프라이를 곁들입니다. 설거지하기 번거로우니 건더기를 프라이팬에 넣고 데우다가 어느 정도 데워지면 한 가운데를 비우고 거기에 달걀을 깨넣고 뚜껑을 덮습니다. 잠시 기다리면 알아서 쪄지더군요. 이 날은 달걀노른자가 완전히 익었지만 보통은 반숙으로 먹습니다. 속이 녹진하게 흘러내리는 달걀 노른자..-ㅠ-;

모 소설의 등장인물이 그런 것처럼 메스로 반으로 갈라 노른자가 흘러내리는 것을 즐기면서 먹지는 않지만 덜 익히면 퍽퍽하지 않아서 먹기 더 좋습니다. 쓰읍....


오늘 아침에는 거기에 전날 저녁에 불려 놓고 잔 당면도 넣었지요. 당면을 넣으면 포만감이 배가됩니다.-ㅠ-


하여간 음식에 쉽게 질리는 편은 아니니 다음 주에도 한 솥 가득 만들겠네요.


채소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즐겨 먹진 않습니다. 제가 가장 즐겨 먹는 것은 빵이랑 달걀이니 채소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도 가끔 카레를 만들 때는 채소를 듬뿍 넣어 끓입니다. 양파는 큰걸로 세 개 정도, 감자는 중간 크기로 4개, 당근은 큰 걸로 하나. 그리고 카레 한 솥을 끓입니다. 고기는 보통 한 팩을 넣는데 슈퍼에서 파는 카레용 돼지고기는 보통 3천원 정도 합니다. 근수로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한 팩 사다가 넣는지라.
하여간 카레는 채소를 듬뿍 듬뿍 넣는게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카레 외에 채소를 직접 조리하는 일은 드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셀러리를 썰고 토마토를 넣어 미네스트로네라도 끓여야 할 것 같습니다. 책 한 가득 채소가 등장하다보니 채소가 확 땡기거든요. 정 안되면 월남쌈이라도 만들어 먹어야 겠다 싶을 정도로요.

원래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번역자인 프님 덕분입니다. 앞서 읽었던 『세밀화로 보는 과일의 역사』에 대한 감상(링크)을 읽고는 같은 시리즈인 채소도 좋다고 추천하셨더라고요. 어, 근데 다 읽고 보니 전 과일이 더 좋더랍니다. 채소보다는 과일을 좋아하기 때문일거예요. 대신 이 채소책에는 굉장히 신기한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펜넬이 허브로도 있고 줄기채소로도 있다는 것도 이 책으로 처음 알았고요. 채소도 종류가 많은 터라 이거 번역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싶더군요.

스쿼시-호박도 많이 등장해서 그런지 올해는 하나쯤 단호박 사다가 호박대왕을 만들어 보고 싶은게 ....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 BL 작가님. 잭이랑 클림트가 등장하는 소설 꽤 재미있었지요. 하하하하;


본론으로 돌아가, 앞부분에 등장한 정보 중 윤작 정보(16쪽)는 아주 좋습니다. 물론 목록에 나온 채소 모두를 제가 재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건 아니지만, 나중에 텃밭을 두게 되면 이건 꼭 생각해야겠네요. 게다가 뒷부분에 나오는 아스파라거스 재배법도 좋습니다. 아스파라거스는 다년초라, 오래오래 키울 수 있는 땅에다가 심으라네요. 아스파라거스는 맛있지만 참 비싸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조그만 땅 한 뙈기에 심어보고 싶습니다.


책 몇 군데서 오타인지 원서가 그런지 알 수 없는 표기들이 있습니다.
23쪽에 센트미터라는 단위가 나옵니다. 아마도 이건 오타 같네요. 그 아래에는 31.7파킬로그램이라는 단위도 나오는데, 이게 뭔지 모르겠군요. 그 부근의 단위는 거의 킬로그램인데 이것도 오타인가, 아니면 단위 킬로그램을 말하는 것일까. 근데 호박이 31.7파킬로그램이면 좀 무시무시하네요. 대왕 호박이 100kg 넘는 것은 알지만, 그 앞 뒤 문맥으로 봤을 때 31.7kg도 충분히 많아 보이거든요.


프랑스 사람들이 사라진 채소 종들을 복원하기 위해 열심이라는 부분을 보니 갑자기 조앤 해리스의 『블랙베리 와인』이 떠오르더군요. 이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서로 오가는데, 현재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주인공이 익힌 여러 채소 재배법이 등장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민간요법들이 등장하기도 하더군요. 허브를 이용해서 해충을 쫓는다든지 하는 방법 말입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특이한 재래 감자종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는 걸로 끝납니다. 에필로그가 아주 약간 있지만 책 내용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닙니다. 하여간 그 때문인지 다시 『블랙베리 와인』을 빌려오고 싶더란 말입니다.-ㅂ-


채소든 식물이든 재배하는 것은 좋습니다. 문제는 제가 능력이 안된다는 거..OTL
열심히 능력을 키워서 초록 손가락까지는 아니더라도 검은 손가락은 탈피해보겠습니다.ㅠ_ㅠ


로레인 해리슨.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 정은지 옮김. 오브제(다산북스), 2013, 13000원.


첫 사진은 채마밭이 아닙니다. 이전에 잔디밭만 찍어 올렸더니 여기가 어디냐 묻는 분이 있으셔서 올려봅니다. 창덕궁 정문 기준으로 오른쪽, 동쪽에 있는 화단입니다. 높이가 꽤 되어요.




종로문화원 옆 채마밭입니다. 이제는 상당히 자랐네요. 근데 몇몇은 아직 정체를 못알아보았습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포석 왼편은 딸기입니다. 그리고 저 멀리 돌담 아래 심은 것은 옥수수고요. 근데 사진 오른편 하단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 커서 열매든 뭐든 달려야 알 수 있겠지요. 정 모르겠으면 아버지께 여쭤봐야..-ㅁ-;




딸기는 열매가 꽤 달렸습니다. 하지만 먹음직스럽게 달린 것은 없더라고요. 아니, 딸기 잎사귀 아래를 뒤지지는 않았으니 나중에 다시 보면 다를지도 모릅니다.




상추랑 아욱이었나. 아, 저 커다란 잎사귀가 뭐였는지 지난번에 이름 적어놓고 또 잊었네요.T-T;

저 멀리에 무성한 잎이 달린 것은 깨입니다. 들깨인지 참깨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후자?




사진 하단은 꽃상추. 근데 그 위쪽에 보이는 건 뭔지 모르겠습니다. 생긴 걸 봐서는 무랑 비슷한 종류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잎 색이 자줏빛이 돕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혹시 적케일?-것들과 그 뒤의 깨. 깻잎을 생각하면 아마도 참깨.
이전에 듣기로는 들깻잎은 못 먹고 참깻잎만 먹는다더군요.
틀렸습니다.T-T; 들깻잎을 먹고 참깻잎은 못먹네요. 양쪽의 과가 다르다는듯....;




그리고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랑 총각무 혹은 열무인가 싶은 것들. 아.. 아직 채소에 대한 공부가 부족합니다. 살림을 하지 않으니 도통 모르겠다니까요.;ㅁ;



언제 날잡고 어머니나 아버지께 여쭤봐야겠습니다.
종로문화원이 어디있는지 감이 안 올 분도 있겠지요.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가장 편하게 설명하자면 광화문 근처, 동십자각 옆, 더 정확히는 트윈트리타워 길 건너편입니다. 자주 걸어다니다보니 그 옆에 텃밭이 생긴 것도 보았고 가끔 지나갈 때는 얼마나 자랐나 보기도 합니다. 한데 생각보다 잘 못크네요. 요즘 날씨가 엉망이라 그런가.



사진기를 꺼내든 것은 이 꽃 때문입니다. 딸기 꽃 같은데, 노지 딸기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싶었지만 못 볼 것 같군요. 날씨 문제가 아니라 유동인구의 문제입니다.(먼산) 과연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을까요.




한 곳에만 핀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피었습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은 꽃상추네요.




시야를 넓히면 이렇습니다. 저 뒤로 보이는 것은 콩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확신은 못합니다. 이러다 오이면 낭패죠.-ㅁ-;




상추가 튼실하게 자라면 아마 문화원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지 않을까요. 잠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욱이었나, 종종 애들이 우산 대신(!) 쓰곤 하는 커다란 잎사귀 자라는 채소랑, 가지, 고추 정도입니다.

가끔 안부 확인하고 있으니 튼튼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습니다.>ㅅ<
번역이 이상하다.

버섯항목에서 시타키(Shiitake)라 적은 건 영어식 발음이라 그렇다 치자. 항목 맨 뒤에는 해당 채소를 사용한 요리법이 있는데 버섯 수프가 나왔다. 만드는 법을 적어본다.

1.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버터 50g을 녹인다. 샬롯을 넣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살짝 튀긴다. 마늘을 넣고 1분간 더 익힌다.
2, 1번에 버섯을 넣어 골고루 묻도록 잘 젓는다.
3. 닭 육수를 2번에 넣고 간을 맞추고 뚜껑을 덮은 후 버섯이 익을 때까지 약 10-15분간 부글부글 끓인다.
4. 다른 냄비에는 나머지 버터를 넣고 녹인 후 밀가루를 넣어서 루(roux, 밀가루를 버터로 볶은 것)가 될 때까지 휘젓는다.
5. 2분간 익히고 불에서 내린다. 믹서에 루와 3번을 넣어서 섞는다.
6. 간장을 5번에 넣고 간을 해서 크림과 같이 내놓는다.

...
뭔가 이상해.
아무리 봐도 이상해.
저거, 4번을 믹서에 넣고 간 다음에 루를 넣거나, 루를 넣고 걸죽해지게 만들어 먹지 않나? 게다가 초창기에는 간도 전혀 안해. 약간의 소금이라도 넣어야 하지 않아?
확인했더니 저자가 영국 사람이다. 하하하하하.

양파 품종을 언급하는데 더 켈새란다. The Kelsae인데, 더는 빼도 좋지 않나. 아니, 영문으로만 그리 하고 켈새라고 적어도 되잖아. 아니면 혹시 켈사이라거나? 그리고 Sturon이 서투론인 것은 u를 뺀 것인가, 스투론을 잘못 적은 것인가. 양파꽃이 관상용으로도 좋다니 음...;...
그리고 양파항목에서는 양파 머핀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1. 오븐을 예열한다.(220℃). 양파를 데쳐서 믹서에 넣어 곱게 만들어 250g의 퓨레가 되게 한다.
2. 버터, 계란, 설탕을 휘저어 섞은 후 1번의 양파 퓨레에 섞는다.
3. 나머지 재료들을 하나씩 넣어가며 완전히 섞는다. 머핀 그릇에 재료를 넣고 20분간 굽거나 가색이 될 때까지 굽는다. 따뜻할 때 내놓는다.

저기 등장하는 나머지 재료는 재료 순서를 보아하니 소금, 베이킹파우더, 호두, 밀가루의 순인 것 같다. 그런데 위의 조리법대로 만들다가는 양파떡이 나올 것 같다.


셜롯항목에서, 품종 중에 해티브 더 니오르가 있다. 이거, 철자가 Hative de Niort이다. t를 묵음 처리한 걸 보니 아티브 드 니오르 아닐까.-_-;
셜롯 요리에 등장하는 베어네이즈 소스는 도대체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달걀과 버터로 진하게 하기 전에 와인식초에서 허브와 셜롯을 넣어 달인다고?

리이크라고 적은데서 이미 두 손 들었다. leek가 리이크. 여기서 더 이상 읽기를 포기하고 책을 내려 놓았다.

편집도 지나치게 신경써서 오히려 보기 불편한 감이 있다. 괜찮은 책이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ㅂ;
최근에 만드는 수프에는 무조건 콩을 넣습니다.
음, 수프라고 적긴 했는데 따지고 보면 국이나 찌개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간이 거의 안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패스. 국과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국물이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ㅂ' .... 그렇게 따지면 채소 수프 수준도 아닌건데?;

하여간 그렇게 만든 채소 수프는 타파통에 넣고 냉장 보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습니다. 집에서 먹을 때는 데워먹지만 도시락으로 들고 나가면 그냥 차가운대로 먹습니다. 날이 점점 따뜻해져서 그냥 차갑게 먹어도 그럭저럭 먹을만 합니다. 원래 전열기기는 쓸 수 없지만 이번에 열판을 하나 구입할까 고민하고 있지요.-ㅂ-;

2월에 만든 수프에는 흰콩이 들어갔지만 그 콩이 다 떨어져서 요즘엔 검은콩을 넣고 있습니다. 서리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방콩-인지 밤콩인지;-이라고 부르는 검은 콩입니다. 밥에 잘 넣어먹지요. 서리태는 이 콩보다는 크기가 작고 속살이 푸른색입니다. 이 콩은 상아색이고요.

어느 날 저녁, 채소수프를 먹으려는데 포만감을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걀을 삶았습니다. 세 개를 삶아서 두 개는 놔두고 하나는 이렇게 담았습니다.


보통 크기의 달걀이 들어간 사진입니다. 절대 메추리알 아니고요...; 점보컵이라 용량이 조금 큽니다.

채소수프는 보글보글 끓여 충분히 데운 다음,


이렇게 담습니다.



아놔;;;;
간장을 쓴 것도 절대 아닙니다. 간은 그저 소금 아주 조금만으로 했을 뿐이고요 그나마도 냄비 하나에 소금 반 작은 술도 안 들어갔습니다. 저 색은 그저 콩 때문에 그런겁니다. 채소수프에 검은콩을 넣으면 어찌 될거란 생각도 전혀 없이 그저 콩이니 좋다면서 넣었는데 색이 저렇게 되었습니다. 같이 들어간 채소는 양파와 양배추와 당근. 이 주 전부터는 양파값이 비싸니 안 먹겠다면서 오로지 양배추와 당근과 콩만 넣고 푹 끓이고 있습니다.

콩은 그냥 넣는 것이 아니라 한 차례 삶아 넣습니다. 그냥 넣으면 콩이 푹 익는 동안 당근이 뭉개집니다. 양배추는 완전히 분해되는 수준이고요. 그러니 미리 넣고 삶아서 준비했다가 당근 볶고 양배추 넣어서 숨이 죽고 난 다음에 콩을 넣습니다. 콩을 넣을 때는 채소 전체가 다 물에 잠길 정도로 물을 붓지만 그 이후에는 더 붓지 않습니다. 식사시간에 물을 먹지 않는 버릇을 들였더니 채소수프의 국물도 잘 안 먹게 되더군요. 달큰하니 맛있긴 하지만 데우지 않고 먹을 때는 내키지 않습니다. 만약 저기에 밥을 넣어서 죽으로 끓여내면 더 맛있겠지만 일부러 채소만 먹고 있는 걸요.

어쨌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소수프-라고 여전히 우깁니다-지만 콩이 듬뿍 들어가고 양배추도 많아서 달달합니다. 게다가 제가 콩을 아주 많이 좋아하거든요. 그런고로 식사시간은 굉장히 즐겁습니다. 후후후~♡
올해 춘곤증이 거의 없는 이유도 이 덕분이 아닐까 싶네요. 이제 밀가루만 줄이면 부피감량도 상당히 쉬울텐데...;


덧붙임. 제목에 대한 답을 안 적었더군요. 검은콩을 넣은 수프를 권장하지 않는 이유? 그야 비쥬얼 때문입니다.-ㅁ-; 혼자 먹는 것이라면 전혀 관계없지만 혹시라도 누군가를 대접하려고 만든다면 '검은 것은 몸에 굉장히 좋대요. <미스터 초밥왕>이나 <생로병사의 비밀>도 안 보셨어요? 라고 말하세요. 과장된 언사가 당신을 살릴겁니다.(..)

글 올리면서 몇 번인가 언급한 적 있지만 제가 집에서 만든 음식은 대부분의 경우 저만 먹습니다. 제 입맛에만 맞도록 만든 음식이라 다른 사람들이 먹으면 지나치게 싱겁거나, 퍽퍽하거나, 달지 않거나 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이런 조합이 가능한가 싶은 음식들도 등장합니다.

제목만 봐서는 절대 이상하지 않은 토마토를 넣은 채소 수프는 그 자체만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양파 듬뿍, 양배추 듬뿍, 당근 잔뜩을 썰어서, 양파, 당근, 양배추 순으로 넣고 볶다가 적당히 익으면 거기에 토마토 캔 두 개를 넣는 겁니다. 토마토가 통채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깍둑썰기 해서 통조림으로 만든 것이라 그냥 붓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물을 붓고 여기에 허브 드 프로방스와 굵은 소금을 넣어 푹푹 끓이면 완성. 당근이 푹 무를 정도로 끓입니다. 수프에 흰콩을 넣기도 하는데 이 때는 깜박하고 콩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만이라면 괴식은 아닙니다. 그저 토마토를 넣은 채소수프로 미네스트로네와 비슷한 느낌인겁니다. 고기도 안 들어가고 파마산 치즈 껍질도 없지만 비슷하긴 합니다. 고기는 사실 안 넣는 것이 아니라 못 넣는 것에 가깝지요. 고기를 추가하면 재료비가 배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코스트코에 갈 때마다 닭가슴살의 구입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그 연장선입니다. 독특한 취향일지 몰라도 전 닭다리보단 닭가슴살이 더 좋습니다. 살이 많아서 좋아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2월 어느 날의 난잡한 작업 책상 모습입니다. 점보컵에 담긴 것이 그 채소수프입니다. 옆에 있는 것은 고구마. 고구마는 길게 썰어 굽는 쪽이 굽는 시간도 짧고 먹기에도 편합니다.
그 뒤로 보이는 캐드펠 시리즈와 리스토란테 파라디소는 일단 넘어가죠.;


저 뒤로 보이는 티코지에는 커피가 아니라 일본에서 사온 겐마이차(현미녹차)가 들어 있습니다. 옥수수와 현미 알갱이, 그리고 녹찻잎이 들어 있습니다. 말차가루와도 비슷한 가루가 많이 나는데 맛은 깔끔하고 고소합니다. 환율 오르기 전에 구해둘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물품 중 하나입니다. 빵빵한 커피 팩-그러니까 커피 200g 팩 하나 정도의 부피가 1천엔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거라면 한참을 두고 마실텐데 일본 여행 갈 때는 홍차 구입에 바빠 다른 종류의 차는 거의 손을 안댑니다. 그러다보니 현미녹차도 구입한다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렸지요.


이것이 본론.
토마토 수프가 괴식이 된 이유는 이겁니다. 사진에서도 자태를 아름답게 뽑내고 있는 저 팥.-_-a
실은 팥죽을 해먹으려고 팥을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언젠가는 만들겠지라며 점점 뒤로 미루고 있다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될 때쯤에 간단하게 팥을 해치우는 방법이 생각난 겁니다. 바로 채소 수프에 팥 삶은 것을 넣는 겁니다. 물론 수프 전체에 팥을 넣고 끓이면 나중에 팥 때문에 홀랑 다 상할 수 있으니, 만든 수프를 조금씩 데워 먹을 때 팥을 넣는 겁니다. 두 큰술 정도? 하여간 듬뿍 넣습니다. 그런데 저기에 또 흰콩이 보이는 걸 봐서는 저기엔 밥도 들어갔군요.-ㅅ-; 채소 수프만으로는 속이 허전하다 싶으면 리조토를 끓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박박 우기면서 식은밥도 수프에 넣어 같이 끓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괴식 완성.
제 입맛에는 잘 맞습니다. 푹 끓인 밥알과 채소국물이 섞이면 그것도 나름 좋고요. 거기에 콩과 팥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비웁니다. 물론 G는 손도 안댑니다. 채소 수프야 가끔 먹긴 하지만 콩이 들어갔다 하면 그것만으로도 손을 안댑니다. 거기에 팥이 들어갔다면 더욱 손을 안 댈 것이고 밥이 들어갔다면 괴식으로 낙인 찍고 외면합니다.


팥을 다 먹어서 요즘엔 그냥 평범한 채소수프를 먹지만 뜨끈하고 든든한 것이 한 끼 식사로 제격입니다. 이렇게 대강 만들지 않고 본격적으로 만든다면 더 맛있겠지요.



덧붙임. 언젠가 해보고 싶은 것인데.. 저 채소 수프에 카레 가루를 넣어 다시 끓이면 채소카레가 되지 않을까요? -ㅠ-
원래는 첫비행님 이글루에 트랙백을 걸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갑니다. 양해를..;

첫비행님의 4월 여행 때 지유가오카에서 만났다는 제철채소음식점을 보고, 거기서 홀딱 반해 케이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에 한 번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몽생클레르 맞은편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일요일 점심 때 그 근처를 살짝 헤맸는데 결국 찾은 곳은 몽생클레르 맞은편이 아닙니다. 그보다 한참 못미쳐서군요.
몽생클레르 맞은편에는 폴 바셋 지유가오카 점이, 아엔의 맞은편에는 와치필드가 있습니다. 지유가오카 안내 지도에 종종 등장하는 Three Dogs Bakery에서 아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와치필드가 있으니 그걸 기준으로 삼으시면 될겁니다.
(제대로 위치를 알아가지 않아서 같이 헤맸던 샤이님께는 죄송합니다. 흑흑흑;;)

AEN을 앤이라 읽어야 할지 아엔이라 읽어야 할지 아인이라 읽어야할지 난감한데 아엔이 맞답니다. 이름의 유래를 보니 아연을 의미하는 거라는군요. Zn의 아연입니다. 미네랄(미량원소)을 포함한 채소를 주력 음식으로 하고 있어 그렇다는 듯합니다. 설렁설렁 해석을 했으니 그런가 보다 생각해주세요.

전봇대에 씌어진 주소로는 지유가오카 2-8이로군요.

입구에 이렇게 AEN이란 이름이 나와 있고,

건물 옆은 대나무로 가려두었습니다. 이 바로 옆이 지유가오카 공원이랍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많이 모여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1시 쯤 들어갔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분위기군요. 주방에는 요리 둘, 설거지 담당 한 명이 있고 접객과 요리 나르기를 같이 담당하는 매니저와, 아르바이트 둘이 같이 있습니다. 메뉴판 나르랴, 주문 받으랴, 거기에 음식 나르고 음식 접시 치우고 디저트까지 배달하려면 정말, 이 인원으로 가게가 돌아간다는게 신기합니다. 하기야 손님들도 약간의 기다리는 시간은 감내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지요.

제철의 세트메뉴가 2100엔. 거기까지 나가기엔 조금 무리란 생각에 다른 것을 고르다가 본 것이 채소세트입니다. 메뉴 소개에는 미네랄 채소와 제철 채소가 나온다 되어 있는데 이 양쪽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지요. 같이 간 샤이님은 흑돼지 커틀릿 세트를 시켰습니다.

세팅은 이렇게. 숟가락은 없고 젓가락만 있습니다. AEN이라 되어 있지요.

젓가락 받침이 호박입니다. 가을이라 그런가요.

채소 세트에는 이렇게 샐러드가 별도로 나오는데 흑돼지쪽은 샐러드가 안나와서 왜 그런가 했더니 그 쪽은 아예 이런 접시 가득 샐러드를 담고 주변에 커틀릿을 놓았습니다.
앞 왼쪽에 보이는 것은 우엉이나 연근으로 추정되는 조림. 뒤쪽은 달달한 감자샐러드. 아래에는 좀더 삭히면 사워크라우트(슈크루트)가 되지 않을까 추측되는 양배추 절임. 그리고 가운데는 새콤한 샐러드 소스를 뿌린 채소들입니다. 약간 시들시들한 느낌이라 아쉽더군요. 아삭한 것이 좋은데 말입니다. 그래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습니다.

이것이 샤이님의 메뉴. 샐러드 한가득, 그리고 달걀 구이도 있고 두꺼운 돼지고기도 함께 합니다.

밥은 백미와 현미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미로 했지요.

밥과 된장국은 모든 세트에 딸려 나오나봅니다. 건더기도 실한게, 팽이버섯과 유부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국물은 후루룩 마시고 건더기는 젓가락으로 건져먹으면 되지요.

제철의 채소가 어떻게 나오나 했더니 채소 조림(찜?)입니다. 으하~
채소만 가득 있어서 심심하지 않을까 했는데 먹는 동안 계속 감탄하며 즐겁게 먹었습니다. 대파도, 호박도, 가지도, 당근도, 버섯도. 들어 있는 모든 채소가 아주 알맞게 익어서, 어석거리지도 물컹거리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그 딱 알맞은 상태에서 꺼냈을까요. 게다가 짭짤하고 달달한 간장 소스 덕분에 밥이랑 같이 먹으면 정말 행복합니다. 생각하는 지금도 침이 마구 고이는군요. 고기를 먹을까 하다가 선택한 채소지만 고기보다 더 행복한 밥상이었습니다.

에러라고 생각한 것은 메뉴에 딸려 나오는 이 디저트. 치즈무스랍니다. 요구르트 맛이 살짝 감도는 치즈무스였습니다. 달달하기도 하거니와 채소로 깔끔해진 입맛을 뭔가 텁텁하게 만드는 느낌이라서요. 맛은 있지만 메뉴에는 어울리지 않는 디저트란 생각입니다. 몇 숟갈 뜨다가 도로 내려 놓았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폴 바셋의 카페오레로 입가심을 하는게 최고...(퍽!)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가고 싶습니다. 그 때는 어떤 채소들이 나와 있을까요.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건 겨울 여행인데, 겨울의 제철 채소라하면 역시 배추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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