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 중 어떤 책을 먼저 읽을 까 하다가 냐오님이 『핀치의 부리』를 추천하신 덕에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예전에도 몇 번 제목을 들었기 때문에 빌리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른 책에 밀려서 읽는 것이 늦어졌을뿐이지요.;

한데 읽기 전, 어려울까 겁먹었던 것과는 달리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역시 제 취향은 생물학, 그 중에서도 이런 진화 생물학입니다. 조금은 재미있게라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보다는-그런 내용의 드라마나 영화도 질색합니다-진지하면서도 생생하게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빌린 책도 『모래군의 열두달』. 아마 비슷한 맥락의 책일겁니다. 이쪽은 현장연구가 아니라 체험 관찰기에 가깝겠지만 말입니다.

다윈의 핀치는 다윈이 비글호 여행을 하던 도중, 진화론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걸로 유명합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 부리가, 모두 같은 종임에도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착안해 진화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던가요. 그래서 핀치가 유명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다윈의 핀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화론이 다시 맹공격을 받던 당시, 연구자들은 현장연구를 통해 진화의 또 다른 증거를 발견합니다. 그 중 하나가 핀치입니다. 진화가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을 보다보면 진화는 환경에 맞춘 변화로, 어떤 것이 진보이고 어떤 것이 퇴보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둘다 맞습니다. 환경에 맞춰 제대로 살아 남는다면 그것은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적어도 뒤쳐져-죽지는 않을테니까요.

현장 연구의 생생한 모습을 담으면서, 또 다른 연구를 보여주며. 왔다갔다 하고 있는 내용 전개가 꽤 익숙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했더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천문학 책인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에서 다룬 것과 비슷하군요. 팔로마산 천문대에 근무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 각자의 연구 영역과 그와 관련된 학문과 이론을 풀어 나가는 것이 꽤 비슷합니다. 익숙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인가봅니다.

뒤로 가면 진화생물학을 넘어서 의학의 이야기도 다룹니다. 페니실린은 수 많은 사람들을 구했지만 이제 더이상 듣지 않습니다. 박테리아나 세균의 진화(적응=내성)를 통해 이제는 듣지 않거든요.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도 그래서 등장하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재앙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진화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일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빨리 적응한다는게 그리 좋게 보이진 않지만 말입니다. 이 책은 분명 신종플루나 사스나 조류독감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쓴 책인데도 그런 존재를 암시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래서 막판에는 더 공감하며 보았지요.


읽고 있다보니 다시 매튜 리들리의 책이 읽고 싶어집니다. 조만간 다시 찾아 읽어야지요.>ㅅ<
(아마도 6월에나..OTL)


조너던 와이너. 『핀치의 부리』, 이한음 옮김. 이끌리오, 2001. 13000원.


그러고 보니 읽다가 몇몇 단어의 번역이 걸렸던 것 같은데, 워낙 재미있어서 잊었습니다. 하하.;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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