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대를 판가름 하는 방법 중에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에 대한 추억담을 늘어 놓는 것이 있습니다. 웨어울프라든지 키트, 맥가이버, 와일더 집안, 캐빈, 두기 등등을 늘어 놓으면 이 사람 참 나이 많구나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워낙 많이 회자되었으니 넘어가지요. 하기야 이 두 가지 매체는 계속 회고가 되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수도 있네요. 그리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제가 있으면 그 영향을 받기도 하고 말입니다. 참고로 친구 KY는 음악 취향을 짚어보면 정말로 노땅(...)이었지요. 게다가 불의 검이나 아르미안의 네딸들 같은 작품으로 역사 공부를 했다고 공언했으니 말입니다. 얘가 막내였거든요. 그래서 열 살 넘게 나이 차이 나는 형제들 덕분에 매체를 접하는 시기가 훨씬 빨랐습니다.

갑자기 소설 리뷰하면서 왜 이 이야기를 꺼내냐, 하면 나이에 따라서 『전상에의 아리아』를 보는 느낌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대라면 『하얀 늑대들』을 이 소설 옆에 댈 겁니다. 물론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 비슷하게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나이가 많다면 아마 이 소설을 먼저 떠올릴 겁니다. 전쟁물의 고전. 사람들의 피를 말려 놓은 로맨스.-_-; 『하얀 로냐프 강』말입니다.

저는 『하얀 로냐프 강』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과거형이긴 하지만 솔직히 지금도 다시 읽을 마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미 기억은 휘발되어 자세한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지만, 로맨스는 로맨스이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원래 역사도, 삶도 미시적으로 보면 어떤 때는 매우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약한 자를 핍박하고 차별하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필요하지 않은 피를 뿌리는 것을 정당하다 보는 상황도 벌어지니까요. 『하얀 로냐프 강』은 그렇기 때문에 불편한 소설입니다. 묘사나 서술이 아름답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매력적이지만 그 뒤끝은 참으로 안 좋습니다. 하하하. 이게 제가 『하얀 로냐프 강』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전상에의 아리아』의 아리아를 읽으면서도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여기는 여주인공 아인과 남주인공 슈아죌의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넘어가야할 장벽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그 장벽 사이에는 슈아죌이 아주 훌륭한 기사라는 것도 포함됩니다. 즉, 서로 맞대고 있는 세 나라가 서로 충돌하면 슈아죌은 거의 반드시 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마음을 졸였지요.


간단한 내용 소개는 이미 대부분의 온라인 서점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간략한 소개만 해보지요.
전쟁물입니다. 로맨스가 있으며, 차원이동물입니다. 한국인인 아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 전쟁 포로인 어느 아가씨의 몸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 귀족 아가씨는 전쟁 포로로 잡힐 것을 알자 자살 시도를 했고, 혼이 날아간 상태에서 차원 이동을 한 아인의 혼이 덜컥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은 전혀 귀족답지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포로라지만 귀족이다보니 전쟁 배상금(몸값)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슈아죌은 아인을 데리고 본국으로 귀환합니다. 그 와중에 좌충우돌하면서 조금은 친해지는데, 이 인연은 슈아죌이 아인의 신원보증을 하면서 더 깊게 이어집니다. 자아. 여기까지보면 딱 로맨스지요? 하지만 이 글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슈아죌과 아인의 사이에는 깊고 깊은 강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닙니다.

1. 아인은 전쟁포로입니다. 신원은 확실하지만 전쟁포로로서 로미니에 끌려갔고, 따라서 기반이 없기 때문에 밑 바닥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나마 전쟁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천애고아가 되었기 때문에 본국인 이리스로 도로 가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이겠네요. 적어도 같은 나라에 있으니 말입니다.

2. 슈아죌에게는 여성과 관련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를 만든 마녀, 아니, 솔직히 마녀라는 단어가 아까운 어떤 여성께서는 호시탐탐 슈아죌을 노리며 끊임없이 둘의 사이를 방해합니다. 이런 사람 나빠요. 솔직히 조아라 연재본으로 완결까지 보고 나서 책을 산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이 여성께서 어떻게 되었는지 뒷이야기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책 읽고 나서 그 의문도 풀렸습니다. 만세!)

3. 슈아죌은 기사입니다. 그것도 실력이 뛰어난 기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출전해야합니다. 매번 전쟁을 나갔다가는 인력 소모가 심하니 몇 번 돌아가면서 출전하기는 하는데, 2번의 여성께서 공작을 벌인 것도 있고 황제가 슈아죌의 소원을 들어주고 요구한 것도 있어서 거의 매번 출전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전쟁은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만드는 위태로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아인의 신분이 상승하는 계기가 된 몇몇 사건들입니다. 어떻게 자리를 만들었고, 어떻게 승진했는지, 그리고 전쟁에 나간 슈아죌을 위해 일을 벌였는지 등등 말입니다. 아인이 자리를 잡고 승진하게 되는데 가장 도움이 된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수 많은 사회과목들과 원래의 특기였습니다. 물론 책도 엄청 많이 읽었지만 여기저기 등장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세계지리와 한국지리를 꿰뚫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삼국지도 분명 읽었을 겁니다.(...)


T님은 보신다고 했고, 아마 C님 취향에도 맞을 겁니다. 아니, 연재분을 보셨던가요..? 외전에 중요한 이야기 두 가지가 붙어 있습니다. 결말 직전의 외전 하나, 결말과 에필로그 사이의 외전 하나입니다. 보고 나서 쾌재를 불렀으니 마음 놓고 보셔도 됩니다.+ㅅ+

박명식. 『전상에의 아리아』1-2(완). 뿔미디어, 2013, 각 권 13000원.


덧붙임.
앞서 쓴 글에도 책의 장정이 마음에 든다 했는데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듭니다. 마법 대신 원소술이라는 기술이 있지만 그리 널리 퍼지진 않아서, 기사들이 싸우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니 저런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잘 어울리지요. 1권은 빨강+은색의 조합, 2권이 파랑+금색이라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금색보다는 녹색 빛 도는 노랑에 가깝지만, 보통은 빨강-금색, 파랑-은색을 섞어 놓으니까요. 몇몇 동화책에도 무구를 언급할 때 그렇게 묘사하던데..-ㅂ-;


덧붙임2.
책 날개의 저자 출생연도(1990) 보고 좌절했다능...;ㅂ; 그렇다능...;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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