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어디에 집중하는지가 다르겠지요. 같은 사진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다를 테니까요.

이 책의 부제는 '100명의 책상이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것들'입니다. 서문을 읽어보면 이 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자세히 나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작업실) 책상 위가 어떨지 궁금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부탁해 사진을 모으다가 수가 부족해서 플리커를 뒤졌답니다. 그리고는 사진을 올린 사람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다시 책상 사진을 모았고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책상 사진을 모았지만 여기 실린 것은 세계 각국의 여러 직업을 가진 100명입니다. 의외의 국가들도 많이 나오니 꼭 미영프독일중 등등만 나올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저자는 인터랙티브 디벨로퍼이자 디자이너랍니다. 한국 IT 기업에서는 보통 개발자나 디자이너를 두는데 이 사람은 둘다 하는 모양입니다. 회사에 따라서는 여기에 기획자 직군을 추가하기도 하더군요. 하여간 그렇다보니 이 책에 실린 사람들도 직업의 상당수가 디자이너, 건축가, 사진가 등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일견 보기에 비슷한 책상인 것 같은데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를 제외하면 다 제각각입니다. 컴퓨터는 뭐가 공통이냐 하면, 여기 실린 책상 위에는 50% 이상의 확률로 애플이 놓여 있습니다. 정말로요. 어떤 경우에는 맥과 애플 모니터와 맥에어와 아이패드가 나란히 놓이기도 합니다. 제 주변에서의 맥 비율을 생각하고, 한국 내에서의 맥 비율, 혹은 전세계에서 맥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이 책상들에 놓인 맥은 꽤 특이하지요. 뭐,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가요..? :)


사진이 대부분이고 글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입니다. 책상 주인의 이름 옆에는 그 책상의 특징을 뽑아 단순하게 그린 아이콘이 있습니다. 각 아이콘에 등장하는 물건들이 사진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숨은그림찾기 같아 재미있더군요.

맺음말에 등장하는 질문도 생각해볼만 합니다.

당신만의 책상이 있나요?
하루에 책상이 있는 공간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시나요?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그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나요?
주변에 어떤 물건들을 두고 있습니까?
어떤 물건이 가장 특별하게 느껴지나요?
100명의 책상 중 어떤 책상이 당신의 책상과 가장 닮아 있습니까?
어떤 책상이 마음에 드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이죠?




그래서 책상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데.. .그와 동시에 맥에 대한 욕심도 아주 조금 생깁니다. 하하하하.


김종민. 『데스크 프로젝트: 100명의 책상이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스윙밴드, 2014, 16000원.



몇 쪽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지만, 하여간 어느 독일인의 책상.
자아. 저는 딱 두 개 맞췄습니다. 하나 쯤은 더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확신이 안서네요. 일단 왼쪽에서 네 번째는 미쿠,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HMO 미쿠 넨도롱. 그리고 가운데 보이는 모자쓴 아가씨는 카렌이거나 이리아.


혹시 다 맞출 수 있는 분? =ㅅ=
제목만 두고 보면 세노 갓파의 책과 닮았습니다. 세노 갓파의 책도 저명인, 유명인들의 작업실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요. 취향만 놓고 보면 세노 갓파의 책이 더 잘 맞는데, 그렇다고 이 책이 별로라는 것은 아닙니다. 나쁘진 않은데 몇 가지가 걸릴 뿐입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는 여러 미술가나 건축가, 그 외 유명한 예술계 사람들의 집을 자주 방문합니다. 그 때마다 기자도, 사진작가도 매번 다르고요. 글의 분량이나 내용도 매번 다릅니다. 특집 기사일 때도 있고, 집중 탐방일 때도 있고, 짧은 꼭지에 가까운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런 글들을 하나로 모아 엮은 책이 이 책입니다. 그 때문에 글 투가 조금씩 차이가 나고 분량도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읽다보면 어떤 글은 지독하게 싫은 반면 어떤 글은 마음에 들어 몇 번이고 돌려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한 번 쯤 봐도 괜찮겠다 하는 건 워낙 다양한 사람들의 작업실이 있다보니 그 중 하나 정도는 모델로 삼을법 하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작업실이 마음에 들 때도 있고 글이나 하는 일이 마음에 들 때도 있습니다.

하는 일이 마음에 들었던 꼭지는 「궁중채화 장인 황수로」입니다. 딱히 연꽃이 맨 처음 사진에 등장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 옛날 힘들여 만든 조화, 채화의 맥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대단해 보여서입니다. 꽃잎 한 장 만들기 위해 1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그 노력과 시간이 대단해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쓰임이 적으니 맥이 끊기기 일보 직전이지요.
채화라는 것은 처음 들었지만 아주 낯선 것만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연등회의 연꽃도 채화의 일종이니까요. 여기서 다룬 것처럼 비단을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종이로 만든 가짜꽃입니다. 어렸을 때 가끔 연잎을 말았던 지라 기억합니다. 연등 하나 만드는데는 정말 엄청난 노고가 들어가더군요. 만약 절에서 하는 연등회라고 하면, 그 수 많은 연등을 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과거형인 것은 지금은 거의 찍어낸 것을 걸어 놓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근 연꽃 등들은 거의가 공장제더군요.


밀로드-「가구 디자이너 유정민」-의 작업실도 작업실 자체보다 거기서 만들어 내는 가구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한 때 소목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만큼, 나무로 만든 가구들이 끌리더군요. 게다가 허리가 안 좋으니 앉았을 때 편한 의자가 참으로 반갑습니다.-ㅁ-;


사람 사는 집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작업실은 「도예가 신상호」의 집입니다. 재미있게 사는 집이라는 분위기가 팍팍 들더라고요. 테라스 공간은 그야말로 들창인데, 바깥으로 나온 그 공간이 좀 익숙하다 싶었더니만 모 소설에서 나온 올리브 빛 저택이 떠오릅니다. 6인용이었나, 테이블을 놓고 둘러 앉아 맛있는 것을 나눠먹는 그 집 말입니다. 아니면 씨벨트였나? 캘리포니아 어드메에 어느 유명한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프로젝트 집도 떠오릅니다. 썬룸-일광욕실이 바다를 바라보는 형태로, 다른 공간보다 한 단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런 공간과도 닮았고요.
저라면 소파가 아니라 앉아 있을 공간을 내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아마 공간에서 못 빠져 나올 겁니다. 코타츠가 아니라 일광욕실의 매력에 홀딱 빠져서 나른한 고양이처럼 그 위를 굴러다니겠지요.


「화가 장원실」의 그림은 하나쯤 집에 걸어 놓고 싶습니다. 물론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보는 것은 느낌이 굉장히 다르겠지만, 바랜듯 보이는 그림이 은근히 가슴을 칩니다.


「화가 서용」의 돈황 석굴 벽화는 친구 K가 보면 홀딱 반할 것 같더군요. 다만 돈황과 둔황을 섞어 적었던데 하나로 통일을 해주지. 이건 편집 실수가 아닌가 합니다. 손이 가기도 많이 가거니와 재료 자체도 구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수입은 어떻게 하는 거지.ㄱ-;


하여간 보고 있노라면 열심히, 치열하게, 꾸준히, 묵묵히 작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그런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기사를 썼겠지만 읽고 나니 왠지 저도 가슴이 뜨겁습니다.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 둘 꺼내서 다시 잘 털어 저도 언젠가 저런 작업실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 해야겠지요.

정진하겠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 『작업실, 구경: 엿보고 싶은 작가들을 25개 공간』, 2013, 15000원.


가격을 보고 나니 참.....; 이 두꺼운 책에, 이 종이질에, 이 컬러 화보까지 담고 1만 5천원이군요. 소설책의 정가를 떠올리니 서글픕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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