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뉴스를 보고 있는데 기사가 지나갑니다.

소설가 이윤기씨가 향년 63세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설마하니 동명이인일까 싶어서 자세히 들어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윤기씨 맞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장미의 이름」 번역자로 더 기억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월간 에세이에서 만난 짧지만 굵은 글로도 많이 기억합니다.
(아마 1회 번역대상 수상자도 이윤기씨 이셨을 겁니다.)

간접적인 매체로만 만나뵌 분이지만, 그 정열과 향학열은 정말로 본받고 싶었습니다. 한국인 중에서는 가장 제 이상형-멘토에 가까웠던 분이고요.;ㅅ; 



앞으로 이윤기씨의 이야기를 다룰 때 故라는 단어를 앞에 붙여야 한다니 좋은 분들은 너무 빨리 가시는군요.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아마 오늘은 여러 이유로 날짜를 잊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이윤기, <내려올 때 보았네>, 비채, 2007
이윤기, <꽃아 꽃아 문 열어라>, 열림원, 2007


도서관 서가 사이를 헤매이다 보고서는 덥석 집어 들은 것이 산문집, 산문집이 마음에 들어 주말 동안에 읽으려고 집어 든 것이 신화 에세이입니다. 신화 에세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 4권을 보고 나서 한 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니 그리스 로마 신화 4권부터 하여 최근의 이윤기씨 책은 다 읽은 셈입니다. 물론 번역본은 제외. 거기까지 읽기엔 책이 너무 많습니다.
(책 정보를 집어 넣기 위해 저자 이름으로 검색했더니 목록이 주륵 뜨는데 맨 위에 떠 있는 것이 위 두 책도 아니고 그리스 로마 신화도 아니고 번역서였습니다. 하하;)


오늘 하도 징~하게 놀다 왔더니 길게 쓸 여력도 안되고, 길게 쓰려면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합니다. 두 권 다 한 번 읽고서 끝낼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꽃아~는 우리 신화 에세이라 책이 좀 어렵습니다. 깊게 이것저것 참고하며 읽어야하는 책이지만 제 내공이 아직 거기까지 닿지 못했습니다. 많이 잊기는 했지만 우리 신화를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 삼국유사도 삼국사기도 다시 찾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삼국의 기원 설화와 부여의 신화도 다시 찾아 읽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 신화를 읽어나가기 전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책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해석들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구지가의 해석, 참으로 ... 지당하십니다. 하하하..;
권신아 씨의 일러스트도 사람의 눈을 홀립니다. 독특한 그림이라 신화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기우였습니다. 이 신화 삽화들만 모아서 전시회를 해도 굉장히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꽃의 묘사도, 옷들도, 그리고 색도 멋집니다. 글과 함께 본다면 삽화가 또 다시 보이니까요. 삽화만 후르륵 넘겨보면 그 맛이 안 느껴집니다.

하지만 편집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줄간격 대략 200. 책이 작았다면 삽화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아쉬웠을테지만 그렇다면 조금 얇게 해주시면 안되는 겁니까. 300페이지를 훌쩍 넘는 책인데 두꺼운(무거운) 종이를 썼기 때문에 책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들고 다니기 쉽지 않군요. 하지만 줄간격이 그렇게 넓고 큼직한 글씨니, 줄간격을 조금 줄이더라도 페이지 수를 줄였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글이 시원시원하게 보이는 것은 좋지만 무게와 가격을 생각하면 분량은 적은 편이라고 봅니다. 12000원이 요즘 책값에 비하면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가격이긴 하지만 편집에 신경을 써서 가격을 줄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고가 전략으로 나온 책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려올 때 보았네쪽이 신화보다는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월간에세이에서 연재되었던 수필도 몇몇 보이는군요. 여러 매체에 썼던 글을 모아서 냈나봅니다. 읽으면서 내내 웃었고 가끔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며, 자주 뜨끔했습니다. 한 두 달 묵혔다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읽으며 정신을 일깨우고 싶은 글들이 모여 있습니다. 블로그에 글은 많이 쓰지만 그런 것만 가지고는 경지에 이르기엔 택도 없다는 것을, 끝없는 공부만이 갈 길이라는 것을, 정진해야한다는 것을 떠올려 주었지요. 죽비와도 같습니다. 글쓴이의 유머에 입술 한 쪽 끝이 올라가고 내내 빙글빙글 웃다가도 죽비 한 대를 맞고 나면 머리가 울리면서 정신도 함께 울립니다.
이 책도 편집에 대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금 가벼운 종이로,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게 하면서 가격을 내렸으면 어떨까 싶은걸요. 벌써 수필들도 12000원을 돌파한 기미니, 올해는 또 책값이 얼마나 오를까 걱정됩니다.
(헉? 만약 중국에서 출판 홍수가 일어나면 전세계 종이값이 폭등하겠군요. 나무들이 남아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책 사재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 이걸 어쩝니까. 총알이라도 잔뜩 채워두어야 하는 겁니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 -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웅진지식하우스, 2007


이윤기씨의 그리스 로마 신화 1-3권은 아주 옛날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반쯤은 의무감에 읽었기에 그리 재미있다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4권은 훌훌 넘겨보다가 뭔가 재미있겠다는 반응이 있어 집어 들었습니다. 아침 출근시간에 시작해 퇴근시간, 그리고 퇴근한 이후에도 다 읽어 하루에 죽 읽어내렸습니다. 책이 두껍긴 하지만 종이가 조금 두꺼운 편이고 그림이 많은데다 편집 자체가 느슨-글자가 빽빽하지 않은-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 책이 좀 무겁더군요. 비슷한 두께의 소설책은 가벼운 종이를 쓰면 되니 이정도까지는 아닌데 그림들 때문에 아트지에 가까운 코팅 종이를 쓰다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끝부분이랄까요. 신들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넘어갈 때쯤의 이야기라 신들의 비중은 조금 낮습니다. 신화와 전설의 중간쯤. 어쨌건 처음부터 끝까지 헤라큘레스의 이야기고 그의 가계도에 대한 이야기, 그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 그와 얽힌 영웅들의 이야기가 죽 이어집니다.
헤라큘레스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는 대강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읽고는 정떨어졌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남성상입니다. 악동을 넘어서서 망나니에 패륜남, 온갖 사고는 다 치고 다닙니다. 게다가 본인이 종우(種牛)라는 사실에도 그리 신경쓰지 않고, 아니 아예 생각을 안하고 있다니까요. 그걸 감안하면 헤라큘레스의 자손은 환상적인 수준으로 많을 거라고 ... 12가지 과업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가끔은 머리를 쓰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건 머리를 쓴다기 보다는 본능에 가깝습니다. 허허. 삼국지 인물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뽑으라면 단연 장비. 술 마시고 사고치는 것도 닮아 있군요. 그래도 장비는 형들에게는 꼼짝 못하기나 하지, 헤라큘레스는 아무나 가리지 않고 다 덤빕니다. 어머니를 닮은 부분이 없어 보이니 이건 제우스를 빼닮았다고 할까요? 씨 뿌리기가 장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맞습니다.

헤라큘레스 이야기 외에 몇 가지 곁다리 이야기들도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뜨악한 것은 제우스가 칼리스토를 유혹한 방법입니다. 큰곰, 작은곰자리의 모델인 칼리스토는 원래 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요정이었지요. 그러다 제우스에게 덜컥 걸렸는데, 레다때처럼 백조로 변한 것도 아니고, 페르세우스를 잉태시킬 때처럼 비로 변한 것도 아니고. 택한 방법은 아르테미스였답니다. 딸래미로 변해 요정을 유혹했다는 이야기에서 기겁했습니다. 칼리스토가 제우스 아이를 임신하고는 아르테미스에게 벌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유혹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허허허허허허...

그러고 보니 헤라큘레스가 죽을 때 남겼던 말도 뜨악합니다. 헤라큘레스가 죽은 이유는 아내의 착각과 투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헤라큘레스가 구혼했다가 구혼시험을 통과하고도 쫓겨난 나라가 하나 있었더랍니다. 거기서 쫓겨난 다음 자기 친구의 여동생을 만나 결혼하게 된건데-짧게 줄였습니다. 그 사이에도 사건 사고는 많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를 쫓아낸 그 나라를 찾아가 점령합니다. 당연히 예전에 구혼했던 그 나라 왕녀도 포로가 되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내가, 헤라큘레스가 그 여자랑 결혼하는 것 아닌가 싶어 사고를 쳤지요. 나중에 자기의 착각으로 남편이 죽게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목을 매달지만...
하여간 죽기 직전, 마지막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네가 왕녀를 거두어라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구혼했다가 차이고 결혼해서 낳은 아들인건데, 아버지의 전 구혼녀와 아들의 나이차이는? 아름답다고 언급은 되어 있지만 그래도 나이가 안 맞아요!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읽고 나니 1-3권도 다시 보고 싶어지는군요. 차근차근 찾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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