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맨젤과 페이스 달뤼시오의 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전에 『헝그리 플래닛』을 보았거든요. 그 때도 꽤 재미있게 보았는데 얼마전 T님 이글루에서 『칼로리 플래닛』 감상을 보고 나서야 다음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목도 닮았지만 프로젝트의 느낌도 닮았고, 『헝그리 플래닛』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도중에 『칼로리 플래닛』의 프로젝트도 시작했습니다.

『헝그리 플래닛』은 세계 각국의 가족들이 일주일 동안 무엇을 먹는가에 대해 사진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고 각 가족들의 뒷 이야기, 그들의 문화, 그들의 식생활을 함께 다룹니다. 『칼로리 플래닛』은 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가족이 아니라 개인 버전의 사진을 찍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을 섭외하고, 그 사람이 하룻동안 무엇을 먹는지를 보며 사진을 찍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비슷할 것 같지만 내용은 두 책의 방향은 서로 다릅니다. 개인의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더 내밀하고 진솔합니다. 그리고 마음 아픈 이야기도 여럿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했고 책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실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은 다음이 훨씬 더 복잡하더군요. 예를 들어 앞부분에 나온 어떤 이는 하루 식사에 비정제 우유 한 컵이 들어 있었습니다. 피터랑 페이스는 건기 당시의 해당 지역의 소에서 유지방이 얼마나 나오는가에 대한 자료를 찾았고 관련 연구를 얻어 그 우유 한 컵의 칼로리를 계산합니다. 커리를 먹었다 치면, 해당 커리를 만들 때 들어가는 기름 한 큰술까지도 다 일일이 계산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직접 조리하여 먹으니 그에 따라 칼로리가 굉장히 달라지거든요.

그렇게 계산한 1일분의 식사 칼로리를 적은 사람부터 많은 사람까지 주르륵 배열하고 실었습니다. 원래는 101명을 하려 했다가 지면 관계상 21명을 제외했다는군요. 총 80명입니다. 여기에는 아마 페이스와 피터 본인의 칼로리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식문화나 문화, 세계화, 빈곤, 농업.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꼭 읽으시고, 아니시더라도 한 번쯤 볼만합니다. 책이 두껍고 무거워서 다루기 힘들다는 것이 최대 문제로군요. 저도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래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니까요.



그리고 읽고 나면 미묘한 죄악감이 듭니다. 너는 그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하루 섭취 칼로리가 800칼로리 뿐인 곳도 있고, 그나마도 가뭄으로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가난해지기도 한다는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비가 제 때 제대로 온다면 그 사람들은 굶을 일도 없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텐데요. 환경 재난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뉴스를 다루는 선진국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그런 작은 나라겠지요.

읽으면서 내내 마음은 불편했지만 그래도 좋았씁니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게 만드는 책인걸요.



피터 멘젤, 페이스 달뤼시오. 『칼로리 플래닛』, 김승진, 홍은택 옮김. 윌북, 2011, 25000원.

하야시 노조무의「영국은 맛있어」(원제 「イギリスはおいしい」, 林望. 일명 림보)는 빙고님 블로그에서 보고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간단하고 맛있는 스콘 레시피가 있다는 말에 홀린 거지요. 하지만 북오프 서울역점이나 신촌점이나 둘다 하야시 노조무의 책은 없었고, 교보문고에서도 다른 책은 검색이 되는데 이 책은 안되더랍니다. 그래서 별도 주문을 넣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n님이 빌려 주신다 하여 덥석 받아들었습니다. n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복 많이 받으실거예요.>ㅅ<


상당히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독특한 한자어도 많이 나와 새삼 깨닫는 것도 많습니다. 양파(다마네기)의 한자어 등은 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요리재료로는 자주 등장하지만 히라가나로만 나와 있지, 한자어로 나온 경우는 기억에 없습니다. 요즘은 거의 그렇게 쓰는 모양이군요. 생강(쇼가)도 그렇고 말입니다.
이모저모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지하철 안에서 보면서는 꽤 힘든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표정 관리가 전혀 안되거든요. 읽고 있으면 피식 웃다가 히죽 웃다가 쓴웃음을 짓고 있으니, 얼굴이 변화무쌍합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왜 아직 번역이 안되었을지 궁금하군요. 문고판이 나온 것은 95년이지만 인용된 책자를 보면 대략 90년 전후로 나온 것 같습니다.(인용 백과사전 등이 86, 88년 정도의 책들)


아직 초반부라 스콘 이야기까지는 못갔지만 대강 앞부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영국은 정말로 맛없는 나라라고 한다. 그렇다, 맞다. 하지만 위도가 높은 곳에 있는 만큼 식재료는 맛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조리법이다.

그 조리법에 대한 설명 중 가장 끔찍했던 것은 茹でる. 삶다 또는 데치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삶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물에 식재료를 넣고 30분 茹でる. 그렇다면 데치다가 아니라 삶다가 맞지요. 무엇을 삶는 고 하니 대부분의 식재를 다 삶습니다. 심지어는 리크도 삶습니다. 리크는 한국에서 본적이 없는 식재료인데, 로베르씨의 행복레시피에서 소개된 걸 보고 알았습니다. 대파 비슷한데 그보다 더 굵고 튼튼(?)한 모양이더군요. 맛도 매운 맛보다는 단맛이 많이 나나봅니다. 하여간 다른 채소가 아니라 파의 일족이고 이 책에서도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근데 이걸 어떻게 조리하냐면, 데칩니다. 뿌리부분과 잎 끝 부분을 살짝 다듬고는 그 채로 냄비에 넣고 물을 넣고 삶습니다. 30-40분 정도 말입니다. 단단하고 억센 파라해도 30-40분 데치면 어떤 모습이 될지는 다들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슈퍼마켓에 독특한 모양의 무(swede)가 있길래 어떻게 조리하냐고 판매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역시 같은 대답입니다. 잘 손질해서 물에 넣고 삶아서 그냥 먹으면 되어요!

아아아....

아무리 식재료가 좋고 맛있어도 조리법이 한 가지라면, 그것도 물에 넣고 삶고는 물은 버리고 채소만 먹는다면 그게 뭐랍니까.;


책 앞부분에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영국인들은 요리에 관심이 없답니다.(제이미 올리버는 정말로 예외적 인간인건가.) 작가 본인도 어느 날 영국인 부인이 「料理なんてものに時間や神經を浪費するなんてばかばかしいわ」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잊을 수 없다더군요. 해석하면, '요리 같은 것에 시간과 신경을 낭비하는 건 시시해요'쯤 됩니다. ばかばかしい를 뭐라 해석하는가가 문제인데 어처구니 없다나 시시하다 등의 뜻이랍니다. 어느 쪽이건 요리는 시간낭비, 그러니 물 붓고 끓이면 되는 삶기가 최고라는거죠.(먼산)


그러나 이건 앞부분이고 점차 영국에도 맛있는 건 있다는 이야기가 슬슬 나오고 있습니다. 사과도 맛있고 훈제생선도 맛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명란. 이걸 훈제해서 판다는데 속의 알부분만 쓱 빼서 밥에 섞어 비비면! -ㅠ-!!
해보고 싶더군요. 명란 파스타랑 비슷하게 밥만 넣으면 되니 말입니다. 문제는 명란젓이 비싸다는 것이고....;



앞으로는 또 어떤 맛있는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네요. 누군가 번역해준다면 그것도 홀랑 사서 볼텐데 아쉽습니다. 원서라도 읽을 수 있으니 다행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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