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하는게 이런 연구도 속도와 시간운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직장이나 시험응시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운 중에 관운이 있지요. 연구에도 관운처럼 또다른 운이 따라붙는다 생각합니다. 치열한 노력이 있지만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 우리 팀보다 아주 조금 일찍 발표하면 그때까지의 운이 날아가니까요.


그 때문에 이 책은 굉장히 치열한 이야기로 읽혔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더니 아하하하하. 漁夫님 이글루에서 리뷰를 보고 도서관에 신청해서, 그래서 보게 된 책이더라고요. 일단 그 글을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이 재미있을 겁니다.:)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Svante Pääbo: http://fischer.egloos.com/6561094



원래 게놈 서열 밝히는데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특히 연구는 속도전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누가 더 빨리 결과를 발표하느냐가 누가 더 재료를 많이 확보하는가 또는 누가 더 효율적으로 재료를 사용하느냐에서 갈리더군요.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발표하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미토콘드리아 DNA까지는 괜찮았는데 전체 게놈을 발표하기에는 재료가 부족합니다. 그도 그런게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추출하는 것은 뼛속의 여러 재료들입니다. 그걸 쓰려면 뼈를 톱질해 갈라서 속에서 채취해야하는데, 이미 DNA가 다 분해되고 없는 경우도 많고 박테리아가 침투해서 그 DNA만 남아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인간의 DNA가 있고요. 뼈를 얻으러 갔다가 큐레이터의 행동을 보고 기암했던 건... 허허허허허허.


아, 저자는 고생물 DNA 분석으로 유명한 스반테 페보랍니다. 이름이 독특한데 스웨덴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직장은 독일에 있는 막스플랑크인류학연구소고 직위는 소장입니다.(...)



p.39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mtDNA 발표는 『셀』이었지요. 게놈 발표는 『사이언스』에다 했네요. 아무래도 같이 연구하는 박사후 연구원들은 연구가 널리 알려지길 원하니까요.


p.40

peer review를 동료검토라고 하나요? 제가 들었던 단어는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학계마다 번역하는게 다른지도 모릅니다.


p.54

시료를 찾은 곳이 독일민주공화국...ㄱ-; 통일전에는 그랬군요. 하기야 뒤에 나오지만 라이프치히 연구소에 자리잡은 것도 동서독의 균형 발전을 위해 일부러 각 지역에 연구소를 배분해서 그랬답니다.


p.77

그리고 얼마 뒤 잘나가는 진화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네이처』에서 우리 연구를 극찬한 것을 보고 기뻤다.

이 때의 연구는 캥거루쥐의 DNA 분석연구입니다. 박물관에 수집된 몇 십 년 전의 캥거루쥐와 그 당시의 캥거루쥐의 DNA를 비교해서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진 않았다고 밝힌 거고요. 그 자체보다는 DNA를 분석하는 기법이 중요했더군요.


p.96-97

(중략) 우리는 이에 대한 짧은 논문 한 편을 『네이처』에 발표했고, 이 논문에서 그 곰들이 먹은 식물의 DNA를 회수해 그들의 식생활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그 전까지는 야생동물의 DNA는 피에서만 얻었답니다. 그래서 마취총을 쏴서 피를 채취했다는데, 그 뒤에 이어진 문장에도 나오지만 야생동물학과 보존유전학에서 배설물 수집이 흔한 일이 되었답니다. 마취총을 쏘면 마취가 풀릴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조절하는 것도 어렵고 총맞는 동물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요. 이제는 채변 봉투를 들고 다니면 됩니다.(...)


p.140

과학에 대한 내 발표 외에, 독일에서 인류학이 했던 일을 감안할 때 막스플랑크협회가 그 주제에 손을 대도 될 것인지와 관련한 여러 비공식적인 논의들도 있었다.(중략) 우리는 역사를 잊어서도 안 되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해서도 안 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50년 전에 죽은 히틀러가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했다.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분석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했을 때 저런 논의가 있었답니다. 하지만 오히려 독일인이 아니었고 연구소의 상당수도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자유로웠다는 말도 하는군요. 히틀러가 우생학을 이용해 인종청소를 자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독일에서 인류학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앞서 漁夫님의 포스팅에도 나오지만 가족사와 개인사, 그러니까 사생활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본문도 재미있지만 이 사생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더군요. 이야아아아.... 북유럽 출신이라 이런 생각이 가능한가요. 이쯤되면 설마 공동육아를 하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분야가 달라 그런지 마크는 그 뒤에 출현하지 않습니다. 대신 린다는 몇 번 나오더군요. 2008년, 게놈 분석 프로젝트 도중에 정식으로 결혼을 하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반테가 린다 보다 먼저 죽는 경우의 독일 연금 지급 문제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결혼해서 공식적인 배우자가 아니라면 연금이 나오지 않겠지요, 아마. 결혼의 가장 큰 기능 중에는 저런 재산 분배 및 상속 기능이...(...)


스반테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이야기는 302쪽에 나옵니다. 찾아보시어요.'ㅂ'




스반테 페보.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김명주 옮김. 부키, 2015,18000원.


제목에 언급된 데니소바인은 ... 직접 읽어보시면 압니다. 이 부분도 꽤 재미있습니다. 원제는 Neanderthal Man: In search of lost genomes 입니다. 번역제목이나 거의 같죠. 번역제목에 약간의 문학적 유희는 있지만.



번역도 괜찮았고 글 자체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구입할 생각이 있습니다. 일단 방에 책장을 마련하면 그 때부터 열심히 수집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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