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타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 작은 나라 쿠바의 커다란 도전, '늘 푸른 혁명'>, 들녘, 2004

부제가 길어서 그렇지 실제 제목은 생태도시 아바나입니다. 원제는 <NIHYAKUMAN TOSHI GA YUKIYASAI DE JIKYU DEKIRU WAKE>. <200만 도시가 유기채소로 자급 가능한 이유>. 훨씬 딱딱하군요. 하지만 원제쪽이 책의 내용을 백분 살리고 있습니다.

아바나의 생태혁명 - 도시 농업에 대해서는 이전에 KBS의 다큐멘터리로 본 적 있어 낯설지 않았습니다. 본 것이 2001년이었던가요. 맞을겁니다. 개인적으로 DVD를 사둘까 하고 있는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KBS의 DVD 복사가 3만원이 넘어서 눈물만 삼키고 고민하고 있지만요. 아바나의 생태 혁명, 영국의 정원, 코스타리카, 생태 건축 정도의 시리즈가 기억납니다.
하여간 그 때 아바나의 도시 농업을 보고는 집에도 저런 걸 해두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저 봉쇄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말입니다.

쿠바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오늘 대화를 나눈 분의 이야기를 보면 대강 이렇습니다. 미국에 반항하는 나라, 카스트로라는 독재자가 있으며 북한과 교류하는 (나쁜) 나라, 보트피플, 가난한 나라, 무기를 외국에 팔아먹는 나라. 요약하면 북한 못지 않게 나쁜 나라. 이게 정년을 앞둔 어느 분의 생각입니다.
미국에 반항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1800년대 후반, 스페인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일으켰더니 다 되어가기 직전, 미국이 개입해 홀랑 스페인에게서 "양도" 받습니다. 그리하여 친미 정권이 들어서 있었는데 체 게바라를 위시한 좌파 정권이 친미 정권을 뒤엎고 내전(쿠데타였나..)에서 승리합니다. 그리고 친소 정책을 펴서 아~주 멀리 있지만 소련의 우산 아래 잘 크고 있었지요.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그랬고요. 1990년대, 소련이 무너지고는 소련에게 기대고 있던 경제도 휘청합니다. 그 때까지는 정말 잘 살았다고 그럽니다.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으로 생산한 설탕은 소련이 비싼값으로 사주고 그외 생필품이나 원유 등의 물자를 모두 소련이 지원했으니까요. 소련 입장에서는 미국 턱 밑에 있는 공산주의(일지 사회주의일지) 국가는 비수나 마찬가지이므로 잘 갈아두었던 거죠.
그러다가 소련이 무너지면서, 설탕을 사줄 나라도 없어지고 풍부한 물자 지원도 사라진데다 다른 판로를 찾아보려던 찰나 미국이 쿠바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경제 봉쇄를 단행합니다. 그냥 단행한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고서도 만약 쿠바와 교역(교류도 포함)할 경우 무역 제재를 받을 줄 알아라라고 엄포를 놓았지요. 그리하여 1990년대 쿠바는 경제 공황상태가 되고 아사 직전까지 몰립니다. 쿠바에서 탈출하는 보트 피플도 이 당시일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런 쿠바가 어떻게 90년대의 경제 공황에서 지금의 생태 혁명 국가로 다시 태어났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도시 농업과 일반 농업, 그리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농업과 관련된 모든 업무, 많은 개발, 많은 과학자,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 것도,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면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도 보통 생각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모습과는 굉장히 다릅니다. 이 책을 읽고 있자면 나 쿠바가서 살래!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달까요. 스페인어를 배워서 날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메가씨가 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걸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요. 아니,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른 것보다 국가 차원의 농업 장려가 인상깊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자급을 하기 위해 도시 여기저기에 밭을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화학비료도, 농약도, 재료가 없어서 자급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유기농으로 가게 되었다라는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됩니다. 음. 너무 판에 박힌 말이었군요. 반성하겠습니다. 흠흠

그나저나 얼마나 미운털이 박혔으면 의약품에 대한 수입조차도 막혔을까요. 덕분에 의약품 대신 대체의학을 도입하고 있답니다. 침으로 마취하고 허브로 약을 만들며 농약조차도 허브라든지 천적관계를 이용해 해결합니다. 실제 책 속에서도 어느 채소를 심을 때는 이쪽엔 오레가노, 저기엔 로즈마리를 심으면 해충을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이런 연구를 장려하고 개발하고 있으니까요. 하기야 라틴아메리카 전체 과학자의 10%가 쿠바 사람이랍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원유 수입도 어려워지니 그 다음은 풍력과 수력, 태양력 에너지를 씁니다. 원자력은 미국의 봉쇄로 개발이 중단되었다는군요. 자연 에너지 개발로 눈을 돌리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태양 전지판도 수입이 안되니까 자체개발. 이쯤 되면 한국은 뭐하고 있나?란 생각이 듭니다. 정부에서 정책 지원을 해주니까 이런 것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교육과 의료입니다. 의사 1인당 인구 비율이 일본보다도 높습니다.(저자가 일본인이라 기준은 일본) 거기에 교육과 의료는 정부에서 아예 처음부터 공짜랍니다. 대학교도 공짜. 공부하는 것은 진짜 돈이 안듭니다. 이쯤 되면 한국을 뭐라 할게 아니라 스페인어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2-3년 공부하면 가서 살 수 있겠지요? 농담이 아니라 60% 정도는 진담으로, 정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입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면 저런 생각들과 동시에, 진짜 아바나가 지상 천국인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쿠바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삶의 질이 높은 국가나 행복한 국가가 아니니까요. 독재자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고 그 독재자의 딸마저도 미국으로 망명해서 아버지를 비난하고, 재작년인가 있던 보트 피플 소년*의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이미지를 많이 바꾸었다 한들 이 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책이 다른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나왔다면 그 의심은 한층 더 했을 겁니다.

사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의, 마음에 드는 책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KBS의 다큐멘터리 구입을 다시 고민하러 갑니다.(..)



* 보트 피플 소년에 대한 기사는 검색하면 꽤 나올겁니다. 2년 전쯤 외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야기입니다.
쿠바의 한 소년이 어머니를 따라 보트 피플이 되었다가 미국 해경에 의해 구조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사망하고 소년 혼자 남게 되었지요. 쿠바에서는 이 소년의 아버지가 소년을 찾고 있다면서 아이를 보내 줄 것을 요구하고, 미국 내에서는 소년의 외가 친척들이 미국에 있으니 이들에게 보호를 받게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친권자인 아버지의 승리로 소년은 쿠바로 돌아갑니다. 돌아간 소년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TV에 등장했다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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