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높은 이야기가 나갑니다. 이해 못하시는 분도 많겠지만 그러려니, 생각하시어요.


발단은 「퍼시픽림」입니다.


「퍼시픽림」을 보고 나서 일본 더빙판으로 다시 보고 싶다며 투덜댔는데, 저 다음으로 보신 Mo님이 감상글을 올리셨습니다. 근데 감상글에 글라도스라는 것이 언급되었더군요. 예거팀 AI 시스템 목소리가 글라도스라고요. 그리고 그 목소리에 대한 감상이 하도 가슴 깊이 와닿아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글라도스가 뭐지?

당연히 검색 대상은 엔하위키. 글라도스로 검색하니 GLaDOS라는 것이 나옵니다.(링크) 오타가 아니라 정말 이름이 저런가봅니다. 뭔가 했더니 「포탈」이라는 게임에서 나오는 시스템이랍니다. GLaDOS인 이유가 Genetic Lifeform and Disk Operating System(유전적 생체모형 디스크 운영 체계)의 머릿글자만 따와서 그렇습니다. And가 아니라 and니까.
자세한 내용은 보면 아시겠지만 저, 엔하 위키 안의 영상과 목소리를 하나씩 다 클릭해보고는 혼자서 미친듯이 웃었습니다. 이렇게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라니! Mo님이 저 목소리를 「퍼시픽림」에서 듣고 나서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이 이해가 갑니다. AI OS니까 기본적으로 여자 목소리라해도 중립적인 맛이 있긴 한데, GLaDOS의 설정을 다 읽고 「포탈」과 「포탈 2」의 내용까지 숙지하고 목소리를 들으니 저게 그냥 들리지 않아요!

Mo님의 표현. "내 알바 아니지만 너네 곤란하지 신난다"

정말 그 표현이 딱입니다, 딱.

내용 폭로가 될 수 있는 내용이라 일단 접어두지만, 「포털 2」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곳의 영상입니다. GLaDOS가 얼마나 성격 나쁜지 여실히 보여주는군요. AI지만 거짓말도 잘한답니다. 로봇이 아니라 그런가.


게다가 「포털 2」의 엔딩곡인 Want you gone도 참 좋더군요. 해석을 보니...ㅋㅋㅋ

압권은 뽑혔을 때의 그 외침..... 넨도로이드가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가 떠오릅니다.(링크)




여기까지 읽고 나서 갑자기 주인공인 첼이 궁금해서 보았습니다. 괜히 이상한 곳에 갇혀서 온갖 고생을 하는 과묵한 주인공. 그리고 거기서 같은 게임회사의 하프 라이프 주인공인 고든 프리먼까지 봤다가, 우주 3대 공돌이가 누군지 궁금해서 보러 갔다가 다른 공돌이인 아이작 클라크와 마스터 치프를 보러 갑니다. 아... 눈물나는 저 행적들..ㅠ_ㅠ


동서를 막론하고 공돌이는 갈아야 제맛인가요.;ㅁ; 이건 불합리해!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안공돌...)
셜록 홈즈-그림자 게임을 보고 왔습니다. 이번에도 본다 본다 하고는 넘어갈 줄알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G가 금요일에 영화예매를 했다 해서 함께 보기로 한 덕분에 봤지, 아니었다면 또 밀렸을 겁니다. 아니, 이러다가 또 안 보지. 의외로 영상물은 잘 챙겨 보는 경우가 아주 드뭅니다. 저를 대강(?) 아는 사람들은 제가 또 영화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하니까 영화도 많이 보는 줄 압니다. 하지만 대개는 간접 경험으로 얻어 들은 지식이라, 영화를 끝까지 제대로 본 건 많지 않지요.

여튼 「그림자 게임」은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안 듭니다. 이건 셜록 홈즈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생각한 셜록 홈즈는 이렇지 않습니다. 앞서 일은 책, 『위대한 탐정소설』에 영향 받아 그런 것도 있지만, 셜록 홈즈는 탁상머리 탐정에 가깝고, 몸을 움직이기는하지만 저렇게 액션 활극을 벌이지는 않지요. 몸을 움직일 줄 알지만 이렇게 과하게 움직이는 건 홈즈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 외모는 이탈리아 인에 가깝지 영국인이라 보기에는 미묘합니다. 뭐, 그건 셜록 홈즈 원작의 삽화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셜록 홈즈라 생각하지 않고 본다면 재미있었습니다. 그 직전에 「황금 나침반」을 봐서 더 그럴지도 모르지요. 「황금 나침반」은 영상은 멋지지만 내용을 그 안에 다 구겨 넣으려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마구 끊깁니다. 갑자기 장면이 끊기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데, 그 사이의 맥락이 통째로 빠져 있으니까요. 그에 비해 「그림자 게임」은 그런 맥락을 매끈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특히 앞서 나왔던 복선 혹은 소품을 하나 하나 다 그러 모아 다시 보여줍니다. 특히 사소한 사건, 사소한 소품 하나가 뒤에 가서는 굉장히 큰 역할로 다시 등장합니다. 그 때 나왔던 이런게 이렇게 쓰이다니라며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 두 번 보게 만드는 힘이겠지요. 여튼 영상도 멋지군요. 호텔에서의 모습, 내부 실내 장식들, 드레스, 드레스, 드레스. 으어어어.;ㅁ; 아이린이 입은 옷! 그 당시의 복식! 진짜 취향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무도회 장면에서는 여자들이 입은 옷에 홀려 있었습니다. 으허허허;ㅂ;

이하는 별 것 없지만 내용폭로를 포함한 이야기니까 살짝 접어둡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카모메 식당>, 2007

2007년도 출시된 DVD입니다. DVD의 경우 맨 뒤의 연도는 상영년도가 아닌 출시년도를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언제나 처음이라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그리고 G의 경우에 이 DVD는 처음이기에 아주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모메(갈매기) 식당은 G가 구입한 첫 DVD이며, 그렇기 때문에 DVD 구입은 하지 않았던 G의 테이프를 끊어 주었습니다. 테이프를 끊었으니 이제는 계속 구입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음 DVD가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 솔직한 심정은 마구 증식하는 DVD를 보게 될까 두렵습니다.

지난 주에 갑자기 G가 제게 말했습니다. 카모메 식당을 구입해달라고요. 영화건 애니건 지금까지 DVD는 손을 대지 않았던 이 녀석이 왠일인가 싶었지만 지르라면 질러드려야죠. 게다가 식당입니다. 먹는 장면을 무척 좋아하니 저도 귀가 솔깃했지요. 도착한 것은 지난 주중이었고 본 것은 주말입니다. 주말에 거실 컴퓨터를 차지하고 앉아서 중간에 한 번도 안 끊어 먹고 죽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보고 났더니 마스터님이 관련 포스팅을 했던 기억이 나서 조금 뒤져보았습니다. 카모메 식당의 2부-마스터님의 설명으로 정정. 2부가 아니라 같은 감독의 다음 영화랍니다-에 해당하는 영화가 한 편 더 있었군요. 아직 DVD는 발매되지 않았지만 작년 여름에 상영한 모양입니다. 보지 못해서 조금 아쉽지만 DVD가 나오면 G 옆구리를 슬며시 찌를 것이니 괜찮습니다.

식사 후에 보시는 것이 좋지만, 토요일 오후, 점심도 건너 뛰고 만사 귀찮아서 늘어 있을 때 본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아니면 평일 저녁에 다이어트로 식사를 건너 뛰고 보신다면 환상적으로 몰두할 수 있습니다. 식당이 처음에는 손님 하나 없이 조용하지만 커피부터 시작해 난데 없이 등장한 시나몬롤-시판하는 시나몬롤은 이런 모양이 아니라 거의 달팽이 껍질을 그냥 놓은 것 같은 모양입니다. 중간을 누른 모양은 본 기억이 없습니다-부터 시작해 연어 정식, 고기 정식, 오니기리까지 사람을 홀리는 음식들이 차근차근 나옵니다. 단 번에 맛있는 음식으로 한 방 날리는 것이 아니라 소소하게 작은 것부터 보여줘서 어느 새 영화에 몰두해 군침만 흘리고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겁니다. 감독님이 정말 멋진 수를 쓰십니다.

그릇이나 인테리어나 2006-7년도 사이에 일본에서 불었던 북구풍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경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취향도 딱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Passion 5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컵을 보았지만 원색의 대비가 화려한 줄무늬 그릇도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넓은 접시도 냄비나 프라이팬, 식당의 열려있는 주방과 그 인테리어, 원목의 식탁과 의자까지 그대로 잡지 화보에서 떼어온 듯하지만 살아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갈매기 식당이 제 취향에 100% 맞는 것은 아닙니다. 북구풍 인테리어는 삭막하다고 해야하나, 너무 깔끔해서 제 취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좋긴 하지만 그 곳의 나무들은 너무 하얗습니다. 소나무를 살짝 그을려서 갈색을 내는 정도가 취향이지요. 하지만 주방 기구들은 정말 부러웠습니다. 연어를 구워내는 장면에서는 모니터에 손을 집어 넣어 꺼내고 싶은 생각도...;


총 상영시간이 102분입니다. 슬렁슬렁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식당 이야기에 푹 빠져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아우. 점심 시간을 앞두고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힘듭니다.
다들 밥 맛있게 드세요!
<초속 5cm>, 신카이 마코토
G는 저보다 영화를 자주 봅니다. 하기야 제가 보는 영화 수가 굉장히 적긴 합니다. 심할 때는 1년에 한 편 볼 때도 있거든요. 아니, 더 심할 때는 1년에 한 번도 영화관에 안갑니다. 중고등학교 때도 안갔지만 대학교 때도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강 기억을 추릴 수 있으니 주저리 주저리 써 보면 이렇습니다.

라이언킹, 마이크로코스모스, 스크림, 에비타, 뮬란 : 이쪽은 다 지방에서 본 것으로 대학교 3학년 때까지입니다.
이 이후에 반지의 제왕 1, 3(2는 DVD방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나니아 연대기 1, 찰리와 초콜릿 공장(조니뎁버전).. 정도? 더 본 것이 있다 해도 한 손에 꼽을 수준일겁니다. 영화보다는 소설 쪽이 더 취향이라 그런건지 어떤건지. 하여간 그랬던 제가 최근 영화 두 편을 거의 연달아 봤습니다. 6월 셋째 주에 보았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어제 보고 온 초속 5cm.

그랬던 제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 보고 초속 5cm는 생각이 없다고 하다가 불시에 보러간 것은 먼저 보러 다녀온 G 덕분이었습니다. 항상 조조만 할인카드를 써서 1-2천원 수준에 보던 녀석이 일요일 저녁에 꽤 비싼 돈을 주고 보러 다녀오길래 걱정했더니만, 어땠냐는 제 질문에 깔끔하게 대답했습니다. "괜찮았어."
평소에는 영화평이 짠 녀석이 제 돈 주고 본 영화에 이렇게까지 평하다니라는 생각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저도 순식간에 카드를 긁은 것이었지요. 현금도 있었으나 할인되는 것은 카드입니다.;

아마 제목인 초속 5cm의 뜻은 대강 들어서 아실겁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cm라는군요. 그걸 알고는 G와 산술계산을 해서 초속 5cm면 160cm떨어지는데 대략 32초 걸린다는 잡담도 했었지요.
이 이야기는 총 3부로 나뉩니다. 세 가지의 짧은 애니메이션이 전체 이야기를 이루고 있지요. 시간 순서대로니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애니의 감상을 해칠 수 있으니 넘어갑니다. 훗훗.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초속 5cm 중에서는 초속 5cm쪽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미 자체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더 나았을지 모르지만 전 초속 5cm가 느낌이 더 좋았습니다. 1시간 남짓한 짧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카가야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그 하늘과, 영상과, 그 현실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조조로도 못보고 그냥 퇴근길에 상암까지 가서 보고 왔지만 그 시간과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편의 노래가 너무 크게 틀어진 탓에 귀가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익숙한(-_-) 신주쿠 주변의 풍경, 다카시마야 백화점. 그리고 2편에서 나온 그 섬. 언젠가 한 번 꼭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것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라 더 마음에 들었는지 모릅니다.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감독님의 현실감각에 감탄했달까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도서관에 신청을, 초속 5cm는 소장용으로 주문할 예정입니다. 두 영화에 대한 애정도 차이는 이정도.


덧붙여,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現實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역시 남자의 첫사랑은 무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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