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읽는 중입니다. 현재 50% 정도 진도를 나갔군요. 분량만 따지면 일본 소설 중에서도 작고 얇은 것 수준인데 내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자는 자크 르 고프. 한 때 중세사 관련 서적을 찾아 볼 때 자주 들었던 이름입니다. 이 사람하고 조르주 뒤비의 책을 꽤 보았지요. 그것도 이미 한참 전의 일이지만 말입니다. 요즘은 중세사 찾아보려 하니 책이 아주 두껍고 버거워서 손대기 쉽지 않아요. 게다가 읽다보면 번역용어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난 김에 『중세의 결혼』부터 다시 손을 댈까요.

하여간 보다가 좌절한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중세에 대한 편견이 와장창 깨지는데, 이게 문제는 제 전공분야하고도 연관이 되는 거라 상당히 골치 아프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죠.ㄱ-;

일단 재미있는 부분만 적어보지요.

40쪽.
책자형태의 변화가 독서 형태의 변화를 부르고, 이게 사고 방식의 변화로도 연결된다는 것은 재미있군요.

책에서 고서학, 고고학이라고 번역을 하긴 하는데 조금 미묘. 해당 단어가 Archives거든요. 고서가 아닌 건 아닌데...;


61쪽부터.
보통 중세의 종료는 1492로 봅니다. 콜롬부스(콜롬보)의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삼지요.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그게 아닙니다. 르 고프가 내내 말하듯, 시대의 변화가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니까요. 콜롬보가 가자마자 중세가 종료된 것도 아니고, 르네상스가 그 때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더랍니다. 애초에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말고도 이미 9세기에 샤를마뉴(카롤루스, 혹은 카를)가 일궈낸 르네상스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카롤링거 르네상스 이후에도 르네상스가 옵니다. 그래서 68쪽에서 말하듯, 중세는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시기를 말하지만 그 르네상스는 하나가 아니고 여럿입니다.
다만 그 뒤에 바로 이어지네요.-_-;
르네상스라는 개념이 확립된 것은 19세기부터입니다. 중세도 17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네요.

카롤링거 르네상스 다음은 12세기의 르네상스.
.. 근데 적다보니 세계사 시간에 다 배운 이야기입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도 세계사 교과서에 등장하며, 12세기의 르네상스는 카톨릭의 교리에 고대 철학의 개념을 더한 스토아 학파를 언급하면서 나온듯? 르네상스라고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중세의 중요한 사건으로 언급했으니까요.


82쪽.
"(중략) 촌락 경제에서 기근이 사라진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러시아를 제외하고."

이거, 좋은 의미로 제외한 것이 아닌 것 같아..ㄱ-;


106쪽.
"사실 우리는 중세의 젊은이들에 대한 자료가 부족합니다.(중략) 의미심장하게도 조르주 뒤비는 그들 중 단 하나의 카테고리만을 연구할 수 있었으니, 기사라는 특정 계층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인구 증가로 이 귀족 청년들은 영지도 아내도 얻을 수 없었고, 성직의 은급도 누릴 수 없었지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군으로 내몰렸습니다."

하하하하.
왠지 눈물이...;ㅂ;


129쪽
에서 언급하는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지식인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저작에 따르면 비판적 지식인과 기성 권력에 봉사하는 유기적 지식인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난 것은 조아라의 중세풍 판타지들. 어디까지나 그쪽은 중세풍이긴 한데,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은 황제를 위에 둔 전제군주적인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그건 르네상스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복식이나 분위기를 보면 - 하기야 준 근대적인 시스템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 말입니다.

아직 중세의 정치체제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나오진 않았는데, 앞서 슬쩍 짚고 넘어간 부분에서는 일반인과 왕의 거리가 아주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나봅니다. 시민들은 뭔가 일이 있으면 왕을 만날 수 있다 생각했고, 왕은 자신을 신과 시민들의 중개자 정도로 여겼다나요. 흐음. 이 부분은 다른 책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보았던 모 소설은 조아라에서 들여다본 소설 중 처음으로 정치 체제를 비롯한 전체 분위기를 러시아 풍으로 그린 걸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제정 러시아요.; 성골-진골의 사례처럼 왕위계승권을 가진 황족이랑만 결혼해야 왕위를 이을 수 있고, 남녀 상관없이 왕위를 이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더군요.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이긴 한데 여주인공이 앞부분에서 고생하는 것이 보여서 고이 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세나 근대의 모습이 다른 유럽과는 많이 다르지요. 제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일반적인 중세의 모습은 독일이나 프랑스 것이고, 영국이나 이탈리아는 또 다른 모습이니까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배우는 중세의 이미지는 어쩌면 독일이나 프랑스에만 적용되는 건지도 모릅니다.'ㅅ'



(아직 읽는 중)
자크 르 고프, 장-모리스 드 몽트르미. 『중세를 찾아서』, 최애리 옮김. 해나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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