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감상: 재미는 있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그런 식생활로는 안돼!'라고 훈계하는 책.


보충하자면 이 사람의 미식론과 식문화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 번쯤 자신의 식생활과 식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니 볼만합니다.



작가가 추천하는 식생활은 그야말로 고급. 미식의 극의를 향해 달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카이바라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프랑스 요리 풀코스를 좋아하고, 가이세키도 즐기며, 유명 음식점을 방문해 여기가 좋다, 여기는 어때서 싫다라고 즐기는 풍류가라는 느낌입니다. 간단히 말해 서민의 식생활에서 바라보면 저거 뭐야 싶은 사람. 다른 것보다 '라멘집에 줄서가면서 먹는 사람은 이해가 안된다'라든지 '점심을 빵으로 먹는 건 말도 안된다'고 하는 말 때문에 제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죽 끝까지 읽어보니 이 사람의 식생활 철학은 이해하지만 동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책인거죠.


포스트잇을 붙여 가며 적을 부분을 찾았는데 이번에도 수가 상당히 많습니다. 하도 많아서 일부는 그냥 메모하지 않고 넘어가는데 매번 종이 포스트잇을 쓰니 재활용이 어려운데 차라리 비닐로 된 것을 쓸까요. 이것도 매번 고민되네요.



p.17

나한테는 라멘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만큼 맛있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음식 취향이 없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앞부분은 무리 지어 먹기를 다룹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유명한 라멘집에 줄을 선다'는 문장이 있는데.. 도대체 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뭘까요. 앞부분의 무리지어 먹기와 위의 인용을 묶어 보면 ⓐ 다른 사람이 간다는 이유로 유명한 라멘집에 가는 것은 단순히 무리지어 다니기를 좋아하며 먹는 것에 지나치 않는다라는 의미인데, 인용문의 뒷 부분을 보면 ⓑ 라멘이 줄서서 먹을만큼 맛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자신 만의 음식 취향이 없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작가가 지나친 일반화를 한 것일까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고급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기인데, 이 사람도 고독한 방랑식객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고독한 미식가』와는 다릅니다. 그 아저씨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라멘이든 대중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으니까요.


젊었던 시절에 프렌치 식당에 다니면서 술과 담배를 즐겼답니다. 하지만 담배도 그냥 담배가 아니라, 주석 달린 것을 보니 쿠바산 고급 시가. 뒤에도 자주 나오지만 프랑스 음식의 예찬자입니다. 시나리오가 있고 '드라마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음식'은 프렌치라나요.


거기에 맛있는 오야코동을 위해 길게 줄서는 행위나, 3800엔의 저렴한 이탤리언을 위해 석 달을 기다리는 것은 지나치게 비싸다고 말합니다.(p.68-69) 더치페이도 식사에서의 '정치와 경제 문제를 은폐하는 행위'라고 하고요. '세련된 식사 자리에서는 (돈을 내는 것이) 자신의 교양을 드러내는, 자신을 위한 투자와도 같은 것'이랍니다.

근데 이 사람이 말하는 더치페이가 단순한 1/n인건지, 아니면 각자가 먹은 음식값을 각자가 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모임에서는 자신이 음식을 시키고 그 음식값을 지불하니까요. 물론 모든 모임에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모임에서는 돌아가며 내기도 하고, 저도 저보다 훨씬 어리고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과 만날 때는 내기도 합니다. 매번 더치페이를 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결정합니다. 근데 모든 더치페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묘하네요. 이건 일본의 문화 아래서 발생하는건가요. 아니면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경험을 겪지 못한 것일까요. 동료들에게 밥 같이 먹자는 소리 들으면 이래 저래 미꾸라지처럼 도망치기 때문에 회식 경험이 적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식과 미각을 이야기하는 6장에서는 입맛이 상대적이라고 말하며 다나카 가쿠에이의 일화를 듭니다. 장어덮밥을 좋아했는데 먹을 때는 덮밥 위에 간장을 한 번 더 부어서 먹었다는군요.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간간하게 양념된 고기가 찰랑찰랑 잠길 정도로 간장을 듬뿍 뿌려' 먹었답니다. 듣기만 해도 물키고 싶네요.



미각이 변한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어렸을 적 먹은 요리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그건 추억이 있기 때문이고, 미각이나 취향은 자라면서 바뀝니다. 경험상, 이것도 훈련이더라고요. 다만 어렸을 때부터 훈련하면 더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은 합니다.

왜이리 이 사람은 라멘을 미워하는지. 라멘의 세계가 깊은 것은 인정하지만 편협한 미각이라 하는군요.(p.123) 138쪽에서도 라멘줄을 비난하는데 이건 조금 더 원색적이네요.



자신의 기호에 의식적이 되라(p.133)고 하는 것은 동감하지만 점심식사를 빵으로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빵을 즐기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 기저에는 간편하고 빠르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지만 전 빵이 좋습니다. 프랑스 식으로 느긋하고 우아하게 식사를 차려 먹는 것은 제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요. 특히 업무 중에는. 여행 다닐 때라면 즐겁게 점심 식사를 즐깁니다. 그 때도 빵. 그래서 이 장 맨 뒷부분에서

'내가 빵을 좋아한 건 착각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자신의 기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취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p.148)

라는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9장. 쾌락과 건강은 같이 갈 수 없다고 하는데 이건 부분적으로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한 절제는 일탈, 즉 잠시간의 쾌락으로 또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아니면 아예 마음 가짐을 바꿔 절제하는 삶 자체를 쾌락으로 보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릇 이야기할 때는 조금 공감했습니다.(12장 미식과 식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좋은 그릇을 즐기면서 식사를 하는 쾌락은 집에서만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바로 마이센이나 로열코펜하겐 같은 식기를 세트로 사려드는 분이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건 집사와 가정부를 고용하고 난 후에나 할 일입니다. 일상에서 그런 식기를 전부 구비해 놓을 수는 없습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말했나요? 하지만 손님용 그릇을 사기 전에 우선 자신을 충족시켜줄 그릇을 사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고가일지라도 매일 사용하는 물건은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p.217-218)


여기서는 잠시 반성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그릇은 코렐의 대접(우동그릇)과 사은품으로 받은 머그. 그리고 접시는 꽤 좋아하는 선물받은 접시지요.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그릇은 일상으로 쓰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밥그릇부터 바꾸는 것을 생각해야겠네요. 안 그래도 가져다 놓은 나무 그릇이 있으니 그걸 쓰는 쪽이 낫겠습니다.

무엇보다 일상적으로 쓰는 그릇이고, 그 그릇이 저 자신을 대접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좋은 그릇을 묵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써야 하는 것이 맞지요.

이 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릇을 고급으로 맞춰 쓰는 음식점이 드물다는 겁니다. 식기는 일본풍으로 맞춰쓰라고 하는데, 다만 좋은 식기는 보관하지 말고 계속해서 써가면서 감각을 키우랍니다. 확실히 그렇죠. 하지만 그 뒤에 좋은 그릇을 사기 위해서는 요리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나, 그릇을 사기 위해 교토의 도매상에 가서 직접 산 이야기는 저와는 거리가 멉니다. 통일된 감각을 가지고 취향에 맞게 그릇을 사들인다는 것은 좋지만, 그런 이야기는 우유당의 렌에게 듣는 골동품 수업 같은 느낌이..;




이렇게 일일이 투덜거리면서 읽다보니 지쳐서 뒤는 그냥 읽어 내려갔습니다. 진보쵸의 키친난카이는 가보고 싶네요. 카레돈가스......-ㅠ- 그나마 여기 소개된 가게 중에서 가볼 수 있는 것은 이노다 커피 정도?;



맨 뒤에 실린 파리에서 음식점 순례한 이야기는 고이 넘어갑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요.



후쿠다 가즈야. 『나홀로 미식수업』, 박현미 옮김. 흐름출판, 2015, 13000원.


번역은 대체적으로 무난합니다. 걸리는 부분 없이 읽었는데, Dean&Deluca를 두고 딘 앤드 데루카라고 한 것만 체크했네요. 음식용어도 많고, 프렌치 용어도 많아 번역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덧붙임. 여기까지가 2015년 독서목록(書計). 『아이고, 폐하!』는 2016년으로 넘어갑니다.:)

이번에도 두 책입니다. 이건 앞에 올린 두 책보다 먼저 보았는데 리뷰 쓰는 것이 늦어 더 늦게 올리네요. 게다가 가볍고 무난하게 본 책이라 리뷰를 더 늦게 올리게 되는군요.

가볍고 무난하다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괜찮습니다. 여타 다른 음식, 부엌 관련 책들보다 낫습니다. 최근 보았던 여러 음식 관련 책들 중에서도 괜찮다고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하지만 두 책의 방향은 조금 다릅니다. 아무래도 편집이라든지 기술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집과 부엌』은 본제가 아니라 수식어가 따로 붙습니다. '타니아의 독일 키친 여행'이 앞에 들어가고 부제는 '작은 집에 딱 맞는 독일식 주방 라이프'입니다. 이 책은 일서가 원본이고 제가 본 것은 번역본입니다. 일본의 음식 관련 서적을 찾다보면 한 두 번은 만나게 되는 것이 이 타니아란 사람입니다. 앞서 다른 책도 읽었는데 그 때는 그냥 무난하게 넘어갔거든요. 이 책은 꼭 짚고 넘어갈 부분이 하나 있더군요. 딱 집어 말씀드리자면 F님 취향이실 겁니다.
책의 저자인 타니아는 성이 가도쿠라로, 독일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 보니 독일과 일본의 양쪽 모습을 다 보여주고 있지요. 본문을 읽다보면 남편은 일본인이랍니다.'ㅂ' 시댁이 일본 시골이라는 언급이 있거든요.

책은 독일의 식사, 베를린의 부엌, 독일과 관련된 음식 이야기 등으로 나뉩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독일의 식사인데 발효빵 만드는 법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호밀을 써서 효모를 만들고, 그걸로 빵반죽을 1차로 만들고 그걸 써서 빵반죽을 합니다. 로러 잉걸스 와일더의 『실버 호숫가』를 보면 비스킷을 만들 때 전날 반죽을 남겼다가 섞어 쓰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여기 나옵니다. 발효종을 써서 만드는 반죽인데, 나중에 뭐라 부르는지 찾아 올리겠습니다.OTL
하여간 그 반죽 만드는 법이 아주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F님이 관심을 가지시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지요. 그 1차 빵반죽은 냉장고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답니다.

어쩌면 『아빠는 요리사』에서 나오는 효모만들기도 이와 비슷하게 시작하는지도 모르지요. 물론 만드는 방법은 상당히 다릅니다. 거기서는 다양한 재료를 다져 섞어서 효모를 만들거든요. 어떤 빵집에서는 특정 과일이나 특정 말린 과일을 발효시켜 효모를 키웁니다. 어느 것이 맛있는지는 잘모르지만 저는 아마 도전하지 않을 겁니다. 독일빵 특유의 신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ㅁ-;
(커피 신맛도 그렇지..;...)



알렉스의 스푼은 클래지콰이의 멤버이며 몇번 음식 관련 프로그램도 찍었던 그 알렉스가 쓴 책입니다. 음식에 대한 옛 기억들과 회상, 거기에 해당 음식들을 만드는 법까지 달아 놓았는데, 글이 꽤 마음에 듭니다.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글이거든요. 게다가 가수 데뷔를 하기 전에는 요리사로 경력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요리사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데는 놀랐습니다. 사실 몇 번 TV 프로그램에서 보았을 때 굉장히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요리사였다는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하하하;

신기한 먹거리보다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음식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향수어린 음식, 소울푸드 말입니다. 집밥 이야기도 많아요. 제일 마음에 드는 먹거리가 앞부분에 나오는 고추장 불고기 주먹밥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한식과 일식, 양식을 넘나듭니다. 따라하기도 꽤 쉬워보이고요. 가볍게 읽을만 하지만 또 몇몇 부분은 참고할만 합니다. 특히 홍콩음식에 대해 언급한 몇 이야기는 같은 작업실을 쓰는 분이 조만간 홍콩여행 가신다고 하기에 슬쩍 가르쳐 드렸습니다. 훗훗훗. 홍콩 딤섬 참 맛있지요-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은 다이어트 관련이었지만..(먼산)

하여간 연예인이 썼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가도쿠라 타니아. 『(타니아의 독일 키친 여행)집과 부엌: 작은 집에 딱 맞는 독일식 주방 라이프』, 조우리 옮김. 홍시, 2012, 13000원
알렉스. 『알렉스의 스푼』. 중앙북스, 2009, 15000원.


하지만 저 책가격은...ㅠ_ㅠ
책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오릅니다. 물론 인터넷 서점에서 할인받을 테지만 그래도.....;;
밥먹으면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영혼의 음식-머릿 속 깊이 각인된 음식의 기억을 불러 오는 내용의 책입니다.-ㅁ-

이 책은 옛 동화와 고전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리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리뷰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e가 붙은 앤양이 처음으로 레이어 케이크를 만들었다가 대박 실패한 사건 등을 다루는 거지요. 그게 아니라면 세라 크루의 미트 파이나 로러가 가지고 놀았던 돼지방광 축구공(!)을 떠올리며, 각각의 소설이 담고 있는 그 당시의 문화와 그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언급합니다. 가장 감명을 받았던 것은 소금에절인라임의 정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정말, 저도 그 소금에 절인 라임이 궁금했다니까요. 물론 지금 이라면 제이미 올리버가 사랑해마지 않는 소금절임레몬 비슷한 절임이겠거니 하겠지요.-ㅂ-; 실제 만드는 법도 소개가 되어 있던데 여기서는 키라임을 이용합니다. 한국에서 가끔 구할 수 있는 라임보다는 더 작은 종이라네요. 하지만 저는 키라임이라고 하면 가장 최근에 접한 걸로는 『키라임파이 살인사건』이 떠오르지 뭡니까. 슬레이더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한나가, 키라임을 써서 레몬파이 계통의 파이를 만든 거였지요. 한국에서는 아예 구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나봅니다. 플로리다였나, 그 쪽에서는 구하기 쉽다고 했던 것 같지요. 지금 책이 옆에 없어서 확인은 못합니다.

하여간;
앞부분은 제가 알고 있는 책이 많았지만 뒤로 갈 수록 모르는 책이 많이 나옵니다. 여행자의 식탁, 모험자의 식탁, 탐식가의 식탁, 치유자의 식탁, 생존자의 식탁 중에서 치유자나 생존자의 식탁은 안 본 책이 많습니다. 권정생 씨의 책은 내용의 무게 때문에 차마 건드리지 못했지요. 『몽실 언니』의 암죽과 치킨은 지금도 생각납니다만. 그러고 보니 이 책도 두 번까지는 읽었지만 그 이상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토지』도 그렇지만 시대의 막막함을 제가 견뎌낼 수 없더라고요. 분명 친구 B양도 『토지』는 신분차이를 극복하는 로맨스다라고 했지만 시대가...가...;ㅂ;
위다의 『뉘른베르크 스토브』는 제목은 기억 못했지만 그 대강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본 건지는 전혀 모르겠네요. 아마 금성이나 계몽사 등에서 나온 옛 세계문학전집 중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스토브를 아버지가 팔았다는 건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아래는 각 편을 읽다가 떠오른 것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입니다.

- 앤과 길버트. 번역본을 읽으면서 제일 불만이었던 것은 어투였습니다. 분명 결혼 약속 하기 전까지는 서로 말을 놓았던 두 사람이 약혼하자마자 당장 존대 + 반 하대로 바뀝니다. 앤은 길버트에게 해요체를 쓰고, 길버트는 앤에게 하오체를 씁니다. 이거 상당히 차이 나지요.-_-; 아, 미묘해.
앤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앤을 닮은 것이 막내인 마릴라라는 것이 제일 웃깁니다. 이건 앤의 사소한 복수?

- 『작은 아씨들』...이 아니로군요. 그 후편인 『착한 아내들』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의외로 포도젤리입니다. 메그가 시집가서 만드는 걸 실패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지요. 조가 결혼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도 저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로리가 왜 에이미랑 결혼해야 했냐는 점도. 하지만 조는 그 성격 때문에 기회를 놓쳤고,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에이미였으니까요. 그리고 대고모님과 함께 있으면서 사교공부도 많이 했을 걸요.
베스가 죽은 것은 참..ㅠ_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베스가 살아 있었다고 하면 현숙하고 차분한 가정주부나 수녀(...)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왠지 테레사 수녀 같은 이미지라...

- 청량음료 사이다 말고 사과주스 사이다를 처음으로 안 것은 『초원의 집』 시리즈인 『소년 농부』입니다. 거기서 사이다 만드는 법도 함께 소개하더군요. 겨울날 난로가에 모여 팝콘을 튀기며 시원한 사이다와 함께 ......;ㅠ; 그 때는 영화가 없었으니 신문을 낭독했지만 요즘이라면 영화나 TV겠지요. 아, 부럽다.
『초원의 집』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참, 그래요. 일단 로라는 대책없이 낙천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요. 남편이 서부를 동경했기에, 동부 상류층(혹은 중산층 이상) 출신이었던 엄마는 고생을 엄청나게 했지요. 딸들도 그랬습니다만. 덕분에 로라는 생활력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떠올려보면 부모님 사이에서는 네 명의 딸이 나왔지만 손자(녀)는 한 명만 있었으며, 증손자는 단 한 명도 없답니다. 맏이 메리는 시각장애가 있어 결혼을 하지 않았고, 캐리나 그레이스도 결혼을 안했던가, 했는데 아이가 없었던가 그랬다네요. 로라한테만 딸 하나가 있었는데 로즈라는 그 딸은 미혼.OTL
그러고 보면 그 작은 마을에는 알만조의 형제 넷 중 셋이 있었습니다. 로라와 사이가 나빴던 이지, 알만조의 형 로열. 앨리스만 부모님 곁에 남아 있었던 걸까요. 그 건 알 수 없습니다.(먼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큰 숲 작은 집』, 『소년 농부』입니다. 그 기준은 가장 맛있는 것이 많이 나오는 책...(...)

- Anne's 시리즈로 나온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다른 책에서는 버터가 굉장히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꼬꼬마 아가씨가 별 생각 없이 만들었던 버터는 최상질의 버터였습니다. 허허.

- 자우어 크라프트, 혹은 슈크르트는 맛있습니다.-ㅠ- 예전에 어떤 모임에서 호텔 뷔페를 먹으러 갔다가 굴라시(구야쉬) 비슷한 음식에 자우어 크라프트를 곁들여 먹었습니다. 시큼시큼한 양배추를 섞어먹으니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먹겠다 싶더군요. 이 맛이 어떤가에 대해서는 신이현의 『알자스』를 보시면 리얼하게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을 보면 오밤중에 지갑을 들고 간식 사러 나가게 되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 『장미의 이름』은 소설가인 움베르트 에코보다 번역자인 이윤기 씨가 먼저 떠오릅니다. ;ㅅ; 대한민국 번역대상이었나, 1회 수상자가 이윤기 씨였지요. 2회는 이세욱 씨.

- 그 외에 몇 가지 음식과 관련된 책이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감한 선장』. 이거 계몽사에서 나온 『世界의 文學』 전집 중 한 권입니다. 저자가 누구인지 찾으려면 소파 뒤를 들여다 봐야하는지라 패스. 하여간 이 책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창 미국에 철도가 놓여 동부와 서부가 철도로 연결될 때의 이야기지요. 그 당시 백만장자를 아버지로 둔 하비라는 꼬마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여객선에서 온갖 추한 꼴을 다 보이며 거들먹 거리다가 바다에 홀랑 빠집니다. 정신차려보니 대구잡이 어선에 타고 있었고요.ㄱ-; 새우잡이 어선이 아니라 다행인가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배는 만선이 되어야 항구로 돌아가거든요. 그리하여 하비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 대구잡이를 거듭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하비는 훌륭한 어부가 됩니다.(...)
성장소설에 모험소설인데, 아이가 정신적으로 커 나가는 모습이 참 멋집니다. 게다가 대구예요! 대구! 하비가 탄 배는 아주 운 좋게도 훌륭한 요리사가 타고 있어서 식사도 아주 훌륭합니다. 그렇다 보니 절로 군침이 돌아요.-ㅠ-

- 『구리와 구라』에 등장하는 팬케이크 혹은 달걀 케이크는 참 좋습니다.-ㅠ-

- 질 버클렘의 찔레꽃 덤불은 들장미잼이라든지, 빵이라든지, 기타 등등의 음식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백미는 역시 그림이지요.

- 다얀이 등장하는 『와치필드』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등어 태비) 다얀의 친구인 (턱시도 고양이) 지탄은 다얀의 생일에 맞춰 친히 돌화덕을 만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구운 빵은...(이하 생략)
고양이인 다얀이 친구인 윌(쥐)을 볼 때마다 사냥 충동을 느끼다못해 생쥐빵을 만들지요. 그 맛은...(이하 생략)

- 『반지의 제왕』에서 갈라드리엘 마님께서 호빗에게 선물하신 과자는 어린 마음에 참 맛있어 보였습니다.;ㅠ;

- 미하일 엔데의 책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모모』의 코코아, 『마법의 수프』에서 만들어내는 수프, 『짐 크노프』 시리즈에 등장하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케이크. 지금 생각하면 구겔호프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루 사탕(설탕)을 듬뿍 뿌렸다고 했거든요.

- 『폭풍우 섬 오누이』는 마치 캠핑하는 것 같아서, 거기서 등장하는 딸기 사탕도 인상 깊습니다.

- 『바렌랜드 탈출작전』, 『로빈슨 크루소』, 『15소년 표류기』. 모험기지만 왜 먹는 장면만 떠오르는 거지요.ㄱ-; 심지어 『15소년 표류기』에서는 단풍나무 설탕도 만들었어요.



...
이 이상 쓰다가는 글 쓰다 말고 지갑 챙겨 뛰쳐나갈 것 같습니다. 하하; 여기서 멈춰야겠네요.;ㅠ;

정은지. 『내 식탁 위의 책들』. 앨리스(아트북스), 2012,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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