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이타님 이글루에서 보고 책이 나온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 놓고 보니, 이거 1980년대에 쓴 글이네요. 부제가 '무라카미 하루키 1980년대를 추억하며 'the scrap''이고 책 뒤에는 서른 다섯의 젊은 작가가 쓴 글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먼 북소리』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글이라고 보면 맞을 겁니다. 거기에 유럽으로 떠나기 전, 잡지 연재분 여섯달치를 미리 써주고 나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이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확인하려면 책을 다시 꺼내야겠네요. 그거 보면 여행 가고 싶다고 다시 몸 닳아 할 것이 뻔히 보이지만.-_-;


하여간 이 책은 여러 종류의 잡지들을 잔뜩 쌓아 놓고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기사나 칼럼 등을 보고 그걸 번역하고 요약하고 감상을 달아서 짤막하게 쓴 글을 모았습니다. 그렇다보니 그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데...그래봤자 옛날 옛적 이야기잖아요. 그냥 재미로 가볍게 읽을만한 이야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이 다 그렇긴 하지만. 아니, 『언더그라운드』같은 책은 예외죠.

기억에 남는 것만 몇 가지 짚어보면..

228쪽.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의 아이스크림회사는 다양한 맛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는데 배스킨라빈스나 하겐다즈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다만 여기나오는 맛들이 버블검, 피너츠버터, 당근케이크, 애플스트루들, 체리주빌레, 칼루아 같은 맛이라는 점. 음, 대체적으로 요즘에는 무난하게 떠올리는 맛 아닌가요? (...) 거기에 일본에서도 매실맛이나 자몽맛이나 유자맛이 나오면 좋겠다, 낫토맛이나 가다랑어맛은 이상하다는 말도 덧붙였고요. 매실이나 자몽이나 유자맛은 이미 나온 걸로 압니다. 낫토맛이나 가다랑어맛은 몰라도 다양한 괴식이 떠도는 건 압니다. 간장맛이나 소금맛도 있으니까요. 지금이 훨씬 더 다양한 맛이다 싶긴 합니다.-ㅠ-;

영국 브리그의 우산 이야기도 기억에 남네요. 이 당시 제일 저렴한 나일론 우산이 15000엔이었다는데 지금은 얼마나 할지 감도 안옵니다. 이게 전형적인 영국신사우산 같더라고요. 다만 우산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는 것, 그리고 그 당시 우산이 천대(!) 받은 것은 칼을 차고 다니던 때에 우산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더군요. 이 외에도 마차나 기타 등등의 탈 것이 있는데 우산이 필요할 일이 드물기도 했을 것 같고.
그래서 과연 칼은 언제부터 안 차게 되었나-라는 점이 궁금하더랍니다. 이건 나중에 찾아봐야지.;


뒷부분에는 디즈니랜드 탐방기도 있습니다. 이제 막 생긴 디즈니랜드에 대한 프리뷰라는데..... 그렇군요. 프리뷰로군요. 있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장소라 그게 생겼을 때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도 안되었습니다. 하하;
덧붙이자면 뒷부분에 실린 몇몇 글은 다른 수필집에서 읽은 것 같기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더 스크랩』, 권남희 옮김. 비채, 2014, 13000원.



미미여사의 에도 방랑기라고 대강 줄여서 부르긴 합니다. 지난 도쿄 여행 목적 중 하나가 이 에도 산책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지금하고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를 겁니다. 그도 그런게 이 책이 나온 것은 90년대 중반입니다. 첫 기획이 94년이고 마지막이 97년입니다. 95년 12월의 황거 편을 보면 미미여사가 서른 다섯이라는데 지금 계산이 안됩니다. 그 당시 저는 뭘 하고 있었지요?; 미미여사가 데뷔하여 열심히 소설 쓰고 있을 그 당시 저는 일본문화를 막 접하기 시작...(거기까지)


하여간 이 기획은 1년에 두 번 나오는 모 잡지의 기획기사였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어떤 프로젝트가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주신구라 이야기가 튀어나오면서 이 특집의 방향은 에도 기행으로 바뀝니다. 첫 번째 발걸음을 어디로 딛느냐에 따라 방향이 휙휙 바뀌는 거죠. 그러니까 만약 이게 "에도 시대의 먹거리를 간접 체험하기"라든지로 갔다면 아마 여러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관광하는..(거기까지)
흠흠. 하여간 첫 테이프를 잘 끊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1년에 두 번, 혹한과 혹서에 맞춰 돌아오는 이 꼭지는 에도 산책이란 주제를 달았습니다. 첫 글이 혹한을 뚫고 주신구라의 충신들이 어떤 길로 칼질(..)을 하러 갔다가 돌아왔는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후세인들은 막판에 다들 체력과 추위와 배고픔(!) 등에 문명의 이기-택시-를 사용한 모양이더군요. 도쿄의 폭서를 뚫고 걷기는 아마 쉽지 않았을 겁니다. 언젠가 8월에 아키하바라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늘어졌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그렇게 고생하고 나니 그 다음에는 조금 편한 걸로 가자 했을 텐데, 이번에는 조리돌리기 코스를 갑니다. 죄인이 사형당하기 전, 일반 시민에게 경고 비슷한 것을 주기 위해 한 바퀴 돌리면서 구경시키는 것이 조리돌리기입니다. 그 코스를 따라 이번에도 걷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폭서가 아니라 혹한입니다. 포근한 겨울이라 안심했는데 걷는 그 당일에는 갑자기 맹 추위가 몰려옵니다. 역시 가는 날이 장날이군요.

이렇게 두 번 도쿄를 걷고 나면 그 다음엔 휴양을 하고 싶어지지요. 그래서 핑계를 대며(!) 간 곳이 하코네. 독부 미유키가 에도를 탈출해 하코네에 갔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그리고 하코네에서 유람을 한.. 것만은 아니군요. 옛 길을 따라 걷는 장면도 나옵니다. 역시 취재를 하다보면 유람만 하게 되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네 번째 편이, 이번에 제가 따라서 다녀온 황거 한 바퀴입니다. 저는 굉장히 간략화해서 한 바퀴만 돌고 끝났는데, 실제 들여다보면 주변의 공원이나 정원도 함께 다닌 모양입니다.

그렇게 에도 산책은 죽 이어집니다. 막판에는 현재 리조트로 이용되고 있다는 유배지도 소개되고요. 그러고 보니 제주도도 지금은 관광지에 휴양지지만 예전에는 유배지였지요? 귀양을 간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미미여사의 수필집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은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 2권으로 나왔는데, 한국에 소개되기로는 아마 첫 수필일거예요. 거의 소설만 소개되었으니까요. 번역 문체가 그래서인지 읽다보면 소근소근, 조근조근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도쿄 여행을 가기 전에 읽으신다면 아마도 하나 쯤 정복(!)하고 싶으실 겁니다. 그러니 여행 전에 읽다가는 코스가 늘어날 위험이 있어 독서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2013, 15000원.


사실 제일 걷고 싶은 것은 후카가와의 7대 불가사의였습니다. 미미여사 에도 시리즈 첫 책이 이것이라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외딴집』은 그보다 뒤에 읽었다고 기억하고 말입니다. 하여간 그 때문에 더 뇌리에 깊게 남았는데, 문제는 후카가와를 그냥 한 두 시간만 돌아보고 나올 수 없었다는 겁니다.ㅠ_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후카가와 7대 불가사의를 돌고, 호쿠사이사보에 가서 잠시 쉬어가고 싶네요.
읽은 것 같다 했더니 2판이군요. 1판은 1996년에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이거 집에 있는 책 같아요.

하여간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보다 수필이 훨씬 더 잘 맞는다고 생각을 했고, 이 책이 도쿄여행 전 마지막으로 읽은 책입니다. 이번 여행은 수하물 무게 제한이 무서워서 다른 책은 하나도 안 챙겨갔고, 거의 전자책만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담아갈 걸 그랬나 조금 후회도 했는데 비행시간이 짧으니까 제대로 못보았을 수도 있고요. 애니메이션이 없어서 대신 일기는 그간 열심히 다 썼습니다. 3일간의 일기가 6장 정도던가? 하루에 2장씩이라면 얼추 맞네요.

『슬픈 외국어』는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의 기록입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지요. 지금의 미국하고는 상당히 분위기가 다르지만 그건 제가 알고 있는 미국이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이기 때문일 겁니다. 직접 부딪치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요. 그래서 책 속의 미국이 더 생생한지도 모릅니다. 90년대 후반, 경기침체에 들어간 미국의 모습, 그리고 거품이 꺼지기 직전의 일본이 같이 보이네요. 각 편 뒤에 짤막하게 이후에 덧붙인 글이 있는데, 그 글은 거품이 꺼진 뒤의 일본 이야기를 다룹니다. 확실히 거품경제시기의 일본은 미국에서 공적이었나 싶더군요.


이 책에서는 조깅이나 마라톤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틀째 황거를 돌면서 만난 마라토너들이 그냥 보이지 않았습니다. 묘하게 상황이 겹치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오랜만에 다시 읽는 책이라 그런지 새로 나온 책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하하. 기억력이 나쁘다는 건 이럴 때 좋은 건가요.'ㅂ';


무라카미 하루키. 『이윽고 슬픈 외국어』, 김진욱 옮김. 2판, 문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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