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님의 우동 한그릇...?에서 연결.

우동 한 그릇이 아니라 소바 한 그릇이라고 확인(?)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ㅂ' 몇 년 전부터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요. 그 사이에 해넘이 국수는 우동이 아니라 소바라고 하는 걸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거든요. 다만 좀 둔하기 때문에 해넘이 소바를 먹는다는 글을 보고서도 우동 한 그릇이 아니라 소바 한 그릇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해넘이 국수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세노 갓파의 책에서였으니 이것도 이미 90년대 후반쯤의 일이로군요.-ㅁ-;

여튼 저는 개인적으로 메밀국수 한 그릇이나 소바 한 그릇이 아니라 우동 한 그릇이라고 한 것은 로컬라이징(...)이라는 관점에서 탁월한 번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체적으로 일본 원서 번역에 있어서는 직역에 가까운 것을 선호하지만 이 경우는 예외입니다. 의역, 혹은 지역에 맞는 번역이 필요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이 이렇게 뜰리가 없었으니까요.


아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 소바와 우동의 이야기입니다.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전 시골, 아니 변방도시, 아니 ... 하여간 도시 출신은 아닙니다. 도시에 온 것은 10대 중 후반 경으로, 도시라고 해봤자 강원도의 도시이기 때문에 서울이나 서울 주변, 혹은 부산 같은 대도시와는 온도 차이가 있습니다. 만화책을 사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서울까지 상경을 해야했으니까요. 만화책 뿐만 아니라 외국 음식에 대한 것도 접하는 것이 늦었습니다. 처음으로 홍차를 만난 것은 1998년 12월, 쿠켄 창간호의 부록이었던 립톤 티백을 통해서였으며 아주 맛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두 커피 같은 것도 마실 기회가 많이(거의) 없었지요.

본론으로 돌아가; 소바=메밀국수는 언제 처음으로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먹었다면 서울 큰집에서 명절 동안 머무르면서 사촌언니가 시골에서 자란 사촌동생들에게 맛있는 걸 먹여주기 위해 돌아다녔을 때거나, 그게 아니면 초등하교 6학년 때쯤, 읍내(...)에 생긴 '장터국수'라는 체인점에서 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제 인식은 소바=메밀국수는 찬 음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뜻한 메밀국수가 있다는 건 비교적 최근에야 알았고 그것도 나름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소바는 광화문 '미진'에서 나오는 것처럼 장국에 찍어먹는 차가운 음식이지 않을까 합니다. 뜨끈한 국물에 말아 먹는 것은 아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제목을 소바라고 번역을 했다면 뜨끈한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 상상하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번역이 탁월했다고 하는 것은 또한 우동이라는 음식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 한창 우동을 가락국수로 순화하자는 운동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한글 전용 운동의 일환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뭐, 우동이든 가락국수든 이미지는 간장 베이스의 짭짤하고 뜨끈한 국물에 파를 조금 얹고 그... 튀김 하고 남은 것 같은; 동글동글한 알갱이를 띄우고 뜨끈하게 데운 굵은 면발을 넣은 겁니다. 따뜻하지요. 온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짜장면 같은 중국식과 비슷하게 특별식이라는 생각도 조금은 있습니다. 외식할 때 한 그릇 먹는 그런 음식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사견일지도..^^;)

그렇기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는 세 모자가 특별한 날, 한 해를 마무리 하기 위해 뜨끈한 우동을 나눠 먹는다는 이미지가 먹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소바 혹은 메밀국수라고 번역되고 거기에 주석이 붙었다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동 한 그릇 책 뒤에 붙은 짧은 이야기-어느 과자집 이야기는 한국 이미지에 비춰서는 그리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음, 떡집이었다면 조금 달랐을까요. 한국에서는 오미야게-선물 문화는 거의 과일 상자 위주로 이루어졌고 한과 같은 건 이렇게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요. 한과가 조명 받은 것도 90년대 후반 넘어서였다고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한 줄로 요약해봅니다.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지역 사정에 맞는 의역이 있었기에 이 책이 더 읽힐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길게 길게 쓰는 것은 어제 다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래도 막힘없이 술술 읽히고 즐길 수 있다면, 그 번역은 번역의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 내가 원작자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p.258

... 그래서 김난주씨라도 상관없는건가? (어?)




결론은 하늘로 날아갔군요.;




덧붙임.
그래도 요즘에는 일본에 대한 잡지식이 많이 늘다보니, 의역보다는 직역에 가까운 쪽을 선호합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보았던 번역 중에서 제일 투덜거리는 건 『빨강머리 백설공주』입니다. 제목은 그냥 두더라도 주인공 이름을 백설이라 하지 말고 그냥 시라유키라고 적어주지.=ㅅ= 읽을 때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 기업 브랜드가 떠오른단 말입니다. 거기에 가끔은 백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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