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아래 시체가 있다는 것은 사카구치 안고의 단편에서 나왔는데, 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먼저 보았습니다.

1.채소밭 비료
아마 C님은 기억하실 것 같은데, 예전에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중 『11인이 있다』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것으로 백신을 찾아 헤매는 어느 우주인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첫사랑을 구하기 위해 전 우주를 돌아다니는 것인데, 아마 원작이 만화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비족이었나, 탈피하는 종족에게 가는 이야기였고-그 에피소드의 조연이 아주 잘생겼다고 기억합니다ㄱ--다른 하나는 첫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그러니까 우주 콜로니에 들어갔더니 아주 싱싱하게 잘 자란 채소밭만 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는 거죠. 그리고 이유는 '채소밭을 잘 가꿔라'라는 명령이 입력된 로봇이 비료가 부족하자 사람들을 하나하나 비료로 썼다는 것. 하하하하. 그 애니메이션이 전체적으로 스릴러물에 가까웠지만 그 편은 특히 더 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로봇에게 당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2.국화 화단 비료
삼국지였나, 하여간 어느 전집을 사러 청계천에 갔다가 덤으로 따라온 것 중에 오왕과 월왕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있었습니다. 그 앞부분에 등장하더군요. 왕을 죽이려고 벼르던 신하가 왕을 정원에 초대합니다. 국화가 아주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데, 왕이 감탄하지요. 이런 크고 아름다운 국화는 어떻게 키우냐고요. 그러자 정원 주인이 답합니다. 좋은 비료를 주어서 그렇다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왕을 비료™로 삼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꺼내냐면, 요즘 읽고 있는 소설 하나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M님은 좋아하실 이야기.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 신간입니다.


p.212
 "(중략) 그러다 보니 요코하마 쪽에서 이렇게 크게 자란 건 극히 이례적인 모양이더군요. 식물학자들도 큰 수수께끼라고들 했습니다."
 "그렇군요. 처형된 죄수들의 선혈을 쭉쭉 빨아 먹었기 때문이라는 사람들 말이 그래서 나온 거로군요?"
(중략)
 "아, 그런데 재미있는 게, 도쿄의 미나토 구 다카나와의 다카마쓰 중학교에 있는 메밀잣밤나무도 아주 큽니다. 밑동 쪽은 작은 산 같지요. 어떻게 그렇게나 크게 자랐을까 가만 생각해봤더니, 그 나무가 심겨진 장소가 에도 시대 때 호소카와 저택 자리였더라고요."
 "호소카와 저택이라면?"
 내가 물었다.
 "그러니까, 주신구라가 있었던 곳이지요. 아코번의 무사들이 주군의 복수를 한 뒤 할복한 사건 말입니다."


그래서 저 나무를 보러 가고 싶습니다.(...)
시마다 소지 책은 가뭄에 콩나듯 출간되는 지라 마음껏, 양껏 읽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이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였다고 기억하는데, 트릭은 기억나지만 내용은 기억나지 않네요.-ㅁ-; 이 빈약한 기억력이라니. 덕분에 이전에 읽었던 추리소설을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는 점은 좋지만, 읽었는지 아닌지 기억도 안난다는 점은 문제입니다. 허허허.
여튼 이 책도 다시 읽긴 읽어야 하는데, 아마 『마신유희』랑 『점성술 살인사건』을 먼저 읽지 않을까 합니다. 『점성술 살인사건』은 같은 트릭을 『소년탐정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에서 썼기 때문에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던 데다 『마신유희』는 맨 마지막의 풀이가 워낙 기억에 남아서 말이죠.

『이방의 기사』를 읽고 나서 미타라이가 등장한 다른 소설들이 보고 싶어진 건 이 소설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첫만남이 아니라 미타라이와 누구씨의 첫만남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 후기를 보니 쓰긴 맨 처음에 썼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아주 나중에, 쓴지 9년 가까이 만에 공개된 거랍니다. 발표가 늦은거죠. 그래도 시마다 소지의 모든 소설 중에서 가장 앞에 위치한 것이고, 작가가 그 뒷 이야기들을 쓰면서는 이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니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조는 다른 추리소설이나 시마다 소지의 다른 이야기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마신유희』나 『점성술 살인사건』보다 해결부분이 조금 깁니다. 70% 정도일까요? 지금 옆에 책이 없어서 다시 확인은 못하지만 대강 그쯤 분량에서 이야기가 급박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대망의 '그 장면'도 그 즈음에서 나오고요. 그러니까 왜 이 책 제목이 『이방의 기사』이 되었는가는 그 장면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초성체 웃음 소리를 남발하고 싶을 정도로 멋있는 장면이지요.

바꿔 생각해보면, 미타라이 입장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은 거의 처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맛없는 걸(그거슨 커피가 아님!) 마셔주고 자주 놀러와주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 말입니다. 그런 희귀종이 눈 앞에 있는데, 위험에 처해 있다니 당장에 날아가야죠. 『마신유희』나 『용와정 살인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어미새(..)의 곁을 떠나 자립해서 저 멀리 날아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두 사람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은 아니겠지요. 『용와정 살인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두 사람의 시작, 시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한 책이고, 둘의 끈끈한 인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책입니다. 그러니 '치료해줘고맙다는나미에게그런거필요없다고말하며엉덩이춤을추는쵸파'같은 미타라이의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꼭 읽어보세요. 앞서 언급한 그 장면에서 뒤로 넘어가 굴러다니게 될겁니다.



시마다 소지. 『이방의 기사』, 한희원 옮김. 시공사, 2010,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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