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감상: 재미는 있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그런 식생활로는 안돼!'라고 훈계하는 책.


보충하자면 이 사람의 미식론과 식문화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 번쯤 자신의 식생활과 식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니 볼만합니다.



작가가 추천하는 식생활은 그야말로 고급. 미식의 극의를 향해 달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카이바라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프랑스 요리 풀코스를 좋아하고, 가이세키도 즐기며, 유명 음식점을 방문해 여기가 좋다, 여기는 어때서 싫다라고 즐기는 풍류가라는 느낌입니다. 간단히 말해 서민의 식생활에서 바라보면 저거 뭐야 싶은 사람. 다른 것보다 '라멘집에 줄서가면서 먹는 사람은 이해가 안된다'라든지 '점심을 빵으로 먹는 건 말도 안된다'고 하는 말 때문에 제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죽 끝까지 읽어보니 이 사람의 식생활 철학은 이해하지만 동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책인거죠.


포스트잇을 붙여 가며 적을 부분을 찾았는데 이번에도 수가 상당히 많습니다. 하도 많아서 일부는 그냥 메모하지 않고 넘어가는데 매번 종이 포스트잇을 쓰니 재활용이 어려운데 차라리 비닐로 된 것을 쓸까요. 이것도 매번 고민되네요.



p.17

나한테는 라멘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만큼 맛있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음식 취향이 없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앞부분은 무리 지어 먹기를 다룹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유명한 라멘집에 줄을 선다'는 문장이 있는데.. 도대체 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뭘까요. 앞부분의 무리지어 먹기와 위의 인용을 묶어 보면 ⓐ 다른 사람이 간다는 이유로 유명한 라멘집에 가는 것은 단순히 무리지어 다니기를 좋아하며 먹는 것에 지나치 않는다라는 의미인데, 인용문의 뒷 부분을 보면 ⓑ 라멘이 줄서서 먹을만큼 맛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자신 만의 음식 취향이 없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작가가 지나친 일반화를 한 것일까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고급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기인데, 이 사람도 고독한 방랑식객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고독한 미식가』와는 다릅니다. 그 아저씨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라멘이든 대중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으니까요.


젊었던 시절에 프렌치 식당에 다니면서 술과 담배를 즐겼답니다. 하지만 담배도 그냥 담배가 아니라, 주석 달린 것을 보니 쿠바산 고급 시가. 뒤에도 자주 나오지만 프랑스 음식의 예찬자입니다. 시나리오가 있고 '드라마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음식'은 프렌치라나요.


거기에 맛있는 오야코동을 위해 길게 줄서는 행위나, 3800엔의 저렴한 이탤리언을 위해 석 달을 기다리는 것은 지나치게 비싸다고 말합니다.(p.68-69) 더치페이도 식사에서의 '정치와 경제 문제를 은폐하는 행위'라고 하고요. '세련된 식사 자리에서는 (돈을 내는 것이) 자신의 교양을 드러내는, 자신을 위한 투자와도 같은 것'이랍니다.

근데 이 사람이 말하는 더치페이가 단순한 1/n인건지, 아니면 각자가 먹은 음식값을 각자가 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모임에서는 자신이 음식을 시키고 그 음식값을 지불하니까요. 물론 모든 모임에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모임에서는 돌아가며 내기도 하고, 저도 저보다 훨씬 어리고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과 만날 때는 내기도 합니다. 매번 더치페이를 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결정합니다. 근데 모든 더치페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묘하네요. 이건 일본의 문화 아래서 발생하는건가요. 아니면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경험을 겪지 못한 것일까요. 동료들에게 밥 같이 먹자는 소리 들으면 이래 저래 미꾸라지처럼 도망치기 때문에 회식 경험이 적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식과 미각을 이야기하는 6장에서는 입맛이 상대적이라고 말하며 다나카 가쿠에이의 일화를 듭니다. 장어덮밥을 좋아했는데 먹을 때는 덮밥 위에 간장을 한 번 더 부어서 먹었다는군요.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간간하게 양념된 고기가 찰랑찰랑 잠길 정도로 간장을 듬뿍 뿌려' 먹었답니다. 듣기만 해도 물키고 싶네요.



미각이 변한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어렸을 적 먹은 요리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그건 추억이 있기 때문이고, 미각이나 취향은 자라면서 바뀝니다. 경험상, 이것도 훈련이더라고요. 다만 어렸을 때부터 훈련하면 더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은 합니다.

왜이리 이 사람은 라멘을 미워하는지. 라멘의 세계가 깊은 것은 인정하지만 편협한 미각이라 하는군요.(p.123) 138쪽에서도 라멘줄을 비난하는데 이건 조금 더 원색적이네요.



자신의 기호에 의식적이 되라(p.133)고 하는 것은 동감하지만 점심식사를 빵으로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빵을 즐기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 기저에는 간편하고 빠르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지만 전 빵이 좋습니다. 프랑스 식으로 느긋하고 우아하게 식사를 차려 먹는 것은 제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요. 특히 업무 중에는. 여행 다닐 때라면 즐겁게 점심 식사를 즐깁니다. 그 때도 빵. 그래서 이 장 맨 뒷부분에서

'내가 빵을 좋아한 건 착각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자신의 기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취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p.148)

라는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9장. 쾌락과 건강은 같이 갈 수 없다고 하는데 이건 부분적으로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한 절제는 일탈, 즉 잠시간의 쾌락으로 또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아니면 아예 마음 가짐을 바꿔 절제하는 삶 자체를 쾌락으로 보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릇 이야기할 때는 조금 공감했습니다.(12장 미식과 식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좋은 그릇을 즐기면서 식사를 하는 쾌락은 집에서만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바로 마이센이나 로열코펜하겐 같은 식기를 세트로 사려드는 분이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건 집사와 가정부를 고용하고 난 후에나 할 일입니다. 일상에서 그런 식기를 전부 구비해 놓을 수는 없습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말했나요? 하지만 손님용 그릇을 사기 전에 우선 자신을 충족시켜줄 그릇을 사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고가일지라도 매일 사용하는 물건은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p.217-218)


여기서는 잠시 반성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그릇은 코렐의 대접(우동그릇)과 사은품으로 받은 머그. 그리고 접시는 꽤 좋아하는 선물받은 접시지요.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그릇은 일상으로 쓰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밥그릇부터 바꾸는 것을 생각해야겠네요. 안 그래도 가져다 놓은 나무 그릇이 있으니 그걸 쓰는 쪽이 낫겠습니다.

무엇보다 일상적으로 쓰는 그릇이고, 그 그릇이 저 자신을 대접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좋은 그릇을 묵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써야 하는 것이 맞지요.

이 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릇을 고급으로 맞춰 쓰는 음식점이 드물다는 겁니다. 식기는 일본풍으로 맞춰쓰라고 하는데, 다만 좋은 식기는 보관하지 말고 계속해서 써가면서 감각을 키우랍니다. 확실히 그렇죠. 하지만 그 뒤에 좋은 그릇을 사기 위해서는 요리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나, 그릇을 사기 위해 교토의 도매상에 가서 직접 산 이야기는 저와는 거리가 멉니다. 통일된 감각을 가지고 취향에 맞게 그릇을 사들인다는 것은 좋지만, 그런 이야기는 우유당의 렌에게 듣는 골동품 수업 같은 느낌이..;




이렇게 일일이 투덜거리면서 읽다보니 지쳐서 뒤는 그냥 읽어 내려갔습니다. 진보쵸의 키친난카이는 가보고 싶네요. 카레돈가스......-ㅠ- 그나마 여기 소개된 가게 중에서 가볼 수 있는 것은 이노다 커피 정도?;



맨 뒤에 실린 파리에서 음식점 순례한 이야기는 고이 넘어갑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요.



후쿠다 가즈야. 『나홀로 미식수업』, 박현미 옮김. 흐름출판, 2015, 13000원.


번역은 대체적으로 무난합니다. 걸리는 부분 없이 읽었는데, Dean&Deluca를 두고 딘 앤드 데루카라고 한 것만 체크했네요. 음식용어도 많고, 프렌치 용어도 많아 번역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덧붙임. 여기까지가 2015년 독서목록(書計). 『아이고, 폐하!』는 2016년으로 넘어갑니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
앞서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한 권 보았는데,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식견문록>쪽이 먼저입니다. 이 책을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보다 늦게 주문한 다른 책들은 다 들어왔는데도 들어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다른 책을 먼저 본 거죠. 그러다가 포기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미식견문록>이 들어왔습니다.

요네하라 마리는 이력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도쿄 출생이지만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동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면서 언어의 영역이 넓어집니다. 러시아어를 통역하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언어를 보면 다른 언어에도 꽤 재능이 있던 모양입니다. 본인이 몇 개국어를 하는지 정확히 이야기 하진 않았거든요.
어쨌건 언어를 다양하게 하면 읽을 수 있는 책의 영역이 훨씬 더 넓어집니다. 그러니 똑같은 소재로 잡학을 늘어 놓더라도 더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미식견문록은> 그런 잡다한 이야기의 모음집입니다.식재료와 음식, 전통음식, 역사 등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섞어서 글을 쓰는데, 대개는 앞서 나온 이야기의 반전이 뒤에 등장합니다. 그렇게 뒤통수를 맞은 이야기 중 하나가 보드카와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가 보드카의 주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은 아니라고 합니다. 보드카에 대해 연구한 것은 맞지만 보드카의 도수에 그렇게 많이 관여한 것은 아니었다나요.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식재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가볍게 읽어볼만하지만 가벼운 이야기 수준이기 때문에 가격을 생각하면 추천하기 조금 망설여집니다. 에세이인지라 아주 깊이 있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로쿰, 터키젤리, 터키시 딜라이트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꼭 권하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할바라고 하는 전통과자에 대한 이야기가 죽 이어지는데 보고 있자면 절로 혈당치가 올라가면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입니다. 어렸을 적, 친구에게 얻어 먹은 터키꿀엿에 대한 환상 때문에 이것을 다시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궁금증에 대한 해결을 읽으면 무릎을 탁 침과 동시에 이란으로 가는 항공편을 찾아보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충동은 충동대로 놔두고 실제 결제는 하지 말아야겠지만 말입니다. 첫비행님이 챙겨주신 로쿰도 떠오르면서 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후후후.


원래대로라면 주말에 읽은 다른 책들도 몰아서 같이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미식견문록 감상이 길어지면서 따로 뺐습니다.'ㅂ'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이현진, 마음산책, 2009, 12000원

        

강봉조, <나는 오후에 탐닉한다>, 갤리온, 2008
카를로 페트리니,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이후, 2008
피터 멘절, <헝그리 플래닛>, 월북, 2008

작은 탐닉 시리즈인 나는 오후에 탐닉한다를 먼저 읽고, 헝그리 플래닛을 읽고, 슬로푸드 맛잇는 혁명을 나중에 읽었습니다. 하지만 책 크기도, 작가도, 분위기도 다른 책들임에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강봉조씨는 사진작가입니다. 하지만 사진뿐만 아니라 공사도 하고, 집 인테리어도 하고, 직접 페인트칠도 하며 집 수리도 잘 합니다. 시카고에 예쁜 집을 한 채 사놓다 보니 예산이 부족해서 집 수리는 직접 몸으로 뛰어가며 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마음에 안드는 부분을 조금씩 고치며 아기를 키우며, 집 옆에 텃밭을 만들고 마을 공동 채소밭도 가꾸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맛있는 채소를 직접 키웁니다. 농약도 화학비료도 쓰지 않고, 바둑이의 배설물과 여러 가지를 모아 퇴비를 만들어 채마밭에 줍니다. 검은색의, 비옥해보이는 토양에서 기른 채소는 밥상에 올라 식구들의 입을 즐겁게 합니다.


슬로푸드에서 말하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들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유를 대량생산하는 홀스타인종이 아니라 토착종으로, 적지만 진한 우유를 생산해 마을 특유의 치즈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소들의 이야기와 재래종의 다양한 옥수수를 키우려 하는 인디오들의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 닿아 있겠지요. 세계은행의 추천대로 해안가에 참새우 양식장을 만들었지만, 새우에게 주는 먹이가 부패하고, 대량의 항생제를 투여하며 해안은 망가지고 망그로브 숲은 사라집니다. 그 결과는 쓰나미로 돌아옵니다. 2005년의 대 지진으로 인한 대형 해일은 해안을 덥쳤고, 파도 완충판 역할을 하는 망그로브 숲이 사라진 그곳은 엄청난 피해를 입습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이 그 지역을 "조금 더 잘 살게"하겠다며 돈을 벌기 위한 참새우 양식장을 만들었고 남은 것은 쓰나미의 피해뿐입니다. 만약 원주민들이 하던대로 작물 재배를 했다면 휴경기간에 참새우를 길러 여분의 수익을 올리고 땅은 또 잠시 쉴 수 있었을 거랍니다. 참새우 양식은 했습니다. 다만 대량이 아니었고 환경친화적으로 했다는 것이 달랐을 뿐입니다.

인디오들이 재배하는 대부분의 옥수수도 다국적 종자회사에 특허권이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물도 아마 그 종자회사들이 특허 취득을 했을겁니다. 미스김라일락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헝그리 플래닛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식문화를 보여줍니다. 평균적은 아닐지 몰라도 그 나라를 다니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가족들의 집을 방문해 그들의 1주일치 식량을 구입하고 사진을 찍고 함께 생활합니다. 북쪽으로는 그린란드, 적도 근처의 나라들, 그리고 차드의 난민촌, 미국 텍사스, 일본의 오키나와, 중국의 농촌과 도시 근교 마을. 하여간 다양한 여러 나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식문화는 그리 다양해보이지 않습니다. 절반 정도의 국가에서는 청량음료와 맥주와 콜라가 빠지지 않습니다. 특히 콜라! 일주일 마시는 콜라를 모아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무섭습니다. 4인 가족이 저렇게 많은 콜라를 마신다니, 그 여분의 칼로리는 어디로 갔을까 싶습니다. 아이들의 입맛은 인스턴트로 향하고 있고 좋아하는 음식의 상당수가 패스트푸드랍니다. 점차 지구촌의 입맛은 하나로 모아지고 있는 걸까요. 슬로푸드와 헝그리 플래닛을 읽는 동안 서로의 글이 번갈아 떠오릅니다.



무거운 이야기는 이정도.
헝그리 플래닛은 책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그래서 읽는 도중에 몇 번은 들고 나가기 무겁다면서 슬로푸드를 들고 나갔습니다. 슬로푸드는 판형이 헝그리 플래닛보다 크지만 두께는 얇고 무게는 훨씬 가볍습니다. 지질의 차이입니다. 헝그리 플래닛은 전면 컬러화보에 아트지를 썼으니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고로 치한이 달려든다 싶으면 주의하세요. 이 책을 휘둘렀다가는 과실치사일겁니다.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잘못 맞으면 살인 미수까지도..? 하지만 헝그리 플래닛의 매력은 그 생생한 사진들입니다.
보고 있는 내내 집안의 일주일 식량을 몽창 꺼내 찍어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일주일치 식량(간식)을 한 번에 사두면 하루면 없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특히 아이스크림은 이틀이면 동이 날겁니다. 그런 무서운 일은 못하죠.

.. 그러고 보니 하겐다즈가 사진에 한 번도 등장을 안 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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