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고서가 아니라 가죽제본 책입니다. 서양 서재를 보면 한켠에 유리장이 있어 그 안에 가죽제본을 한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서재의 로망에도 그런 고풍스러운 장정의 책들이 들어 있을테고요. 한데 이런 책들은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죽제본이라면 적당히 성경을 채워도 되겠지만 성경은 제 취향에서 많이 벗어나는 책입니다. 라틴어 성경이나 베리공의 성무시도서, 그도 아니면 구텐베르크의 초판 성경 쯤 되면 두말 않고 덥석 받아들겠지만 그냥 성경은 정말 취향에 안 맞습니다. 한국에서 나온 성경은 더하고요.

기존의 책이 마음에 안 든다면? 만들면 됩니다. 물론 그럴 능력이 있어야겠지요.



이번 도서전에 나간 책입니다. 3권 세트로 케이스도 만들었습니다. 생협 분들 중 몇 분은 도서전 모임 뒤에 보셨습니다. 도서전 마지막 날이라 뒷 정리 도우면서 제 책은 챙겨왔지요.



랜달 개릿의 로드 다아시-다아시 경 시리즈 세 권입니다. 왼쪽부터 <셰르부르의 저주>, <마술사가 너무 많다>, <나폴리 특급 살인>입니다. 가죽 색은 행복한책읽기에서 나온 책 표지 색을 그대로 두고 했습니다. 셰르부르가 지금 붉게 나왔는데 니콘이라 그렇습니다. 실제는 저것보다 한 톤 다운되어 있는, 예쁜 홍매색입니다. 그냥 원래 책 표지 색을 떠올리면 거의 맞습니다.



솔직히 셰르부르의 저 마블지는 마음에 안들지만 어쩔 수 없지요. 딱 이거다 싶은 마블지가 없어서 아예 다른 색으로 가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저 가죽과 저 종이는 나중에 따로따로 써서 다시 적당한 조합으로 만들어봐야겠습니다. 저대로는 가죽도 아쉽고 종이도 아쉽습니다.
이전에 북하우스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다섯 권은 1/2제본으로 했지만(책 표지 귀퉁이를 가죽으로 싼 것임) 이번에는 민소매 제본입니다. 가죽이 붙여지는 면적이 넓을 수록 갈아야 하는 면적도 넓어지기 때문에, 가죽 가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민소매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가죽 가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초점이 날아갔지만, 작가 이름과 제목은 금박입니다. 외부 업체에 맡겨 찍어오는 거죠.



책 하단의 붉은 도장 자국은 아시는 분만 아실겁니다. 으허허허; 나폴리 특급 살인에 그런 것이 없는 이유는 인터넷 주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술장정은 책을 복원하거나 튼튼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기존의 표지도 다 넣어줍니다. 앞표지는 따로 잘라서 책 앞부분에 넣고 뒷표지와 책등은 책 맨 뒤에 넣습니다. 혹시 작가 소개가 있다면 그것도 맨 뒤에 넣습니다.
(그런데 니콘. 나폴리 특급 살인의 표지 색을 저렇게 핑크로 잡다니 원...-_-)



여기서부터는 본문이지요.


위에서 말한 뒤표지. 중심에 약간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띠 같은 것이 책 등입니다. 접어 넣는데 대개는 책 중심부에 물려들어가는 부분이 많아 보기 쉽지 않습니다.-ㅁ- 책이 두껍다면 잘 보이겠지요.


망치질 잘 못해서 책등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 배면을 보면 알지요. 특히 마술사는 책이 두꺼운 편이라 다른 책들보다 아치 모양이 두드러집니다. 원래 이 사진은 헤드밴드를 찍으려고 한 것이었는데 생각만큼 잘 나오지는 않았군요. 케세라세라. 나중에 공방에서 사진 찍는다 했으니 그 때 다시 올리겠습니다.


로드 다아시 시리즈는 손이 꽤 많이 갔습니다. 원래 예술 제본을 하려면 책이 실제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떡제본(본드제본) 책은 과정이 복잡합니다. 실로 꿰메어야 하기 때문에 본드제본 책은 뜯어서 대수라는 것을 만들어 줘야하는데, 페이지를 맞춰 두 장씩 한지로 이어 붙이는 겁니다. 행복한책읽기의 SF총서는 다 본드제본 책이기 때문에 모두 뜯어서 한지로 이어붙였습니다. 저 세 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권 합하면 1천쪽이 넘을건데-장으로는 500장 정도?-그걸 두 장씩 이어붙인 것이니 손이 많이 갔지요. 그래도 좋아하는 책들-판타지 소설이나 추리소설들은 모두 본드제본이니 그걸 가죽 제본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합니다. 그것이 애정인 것을요. 좋아하는 책을 만지며 흐뭇하게 작업하는 것이야 말로 행복 아닙니까. 후후후.

솔직히 말하면, 싫어하는 책보다 좋아하는 책을 만질 때의 작업이 빠릅니다. 읽고 싶으면 빨리 만들어서 완성해야 볼 수 있으니까요.-ㅁ-;;;



덧붙임. 제목에는 고서라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저 책들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고서의 의미와는 떨어져 있지요. 그냥 가죽 제본책을 말한다고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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