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나온 책이라 저 두께에, 저 크기에, 저 편집에, 가격은 달랑 18000원입니다. 1만 8천원의 책을 두고 싸다고 말하게 되었으니 서글프군요. 하지만 정말 학술도서라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합니다. 정말로요.

네트워크 이론은 바라바시의 『링크』덕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뒤에 『버스트』를 빌리면서 관련 이론으로 또 유명한 던컨 와츠의 책, 『Small World』를 빌렸습니다. 바라바시의 책보다는 상당히 어렵지만 그래도 볼만합니다. 네트워크 이론이나 네트워크 공학, 네트워크 분석 등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고요.

네트워크 이론을 다룰 때 와츠는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와츠의 지도교수인 스트로가츠와 함께 '좁은 세상(혹은 작은 세상)의 약한 연결' 이론을 만든 사람이거든요. 네트워크 공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론입니다. 하지만 몰라도 상관 없습니다. 이 책은 네트워크 이론이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찬찬히 보여주면서 와츠가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다루고 있으니까요. 이론적이나 수학적인 부분은 모르셔도, 여러 예시로 등장하는 네트워크들의 그림을 보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 좁은 세상 네트워크에 대한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냐는 건데, 출처가 아이작 아시모프입니다. 아시모프의 위대함을 여기서 다시 깨달았지요. 허허허.;ㅂ;


아무래도 사회과학 서적이다보니 읽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버스트』를 읽고 나서 바로 집어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다 읽었으니 꽤 걸렸지요. 거의 일주일은 걸린 듯합니다. 이제 다 읽었으니 마음 놓고 다른 책들을 읽을 수 있다며 좋아했는데, 맨 뒤의 관련 문헌 목록을 보다가 제가 관심을 두고 있었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고 홀려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도 빌려올 것 같습니다. 근데 기왕이면 이런 참고문헌들은 한국 번역서가 있을 경우 같이 좀 달아주지, 그냥 원서만 표기했더군요. 참고문헌이라 그냥 원문 그대로 실어두었다봅니다.


막판에 있어 그럴지도 모르지만 끝부분에 나온 도요타의 비상 체제는 배울 점이 많더군요. 엊그제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만, 도요타가 예전의 대규모 리콜 사태를 넘어서서 지금 다시 도약하고 있다지요. 그 기사에서는 현대기아차를 놓고 귀족노조니 어떠니 하면서 비판하던데, 양쪽의 기업구조가 어떻고 방향이 어떤지 모르니 귀족 노조 여부는 넘어가지요. 제가 가진 귀족 노조의 이미지는 사실 예전의 대한항공 기장들의 노조였습니다. 파업하면서 어디 산골 펜션으로 들어갔던가요. 연봉이 억 단위인데 파업한다고 그 당시 엄청나게 말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연봉은 둘째치고 항공사 내에서 항공노선 배정도 '라인' 따라 간다는 이야기 듣고도 어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1998년인가, 도요타의 중요 부품을 생산하는 아이신이라는 회사에서 불이 납니다. 몇 시간만에 공장이 모두 불에 타고, 해당 부품을 제조하기 위한 중요 도면, 전용 도구, 기계 등등의 설비가 모두 사라집니다. 문제는 그 부품이 자동차 조립과정에서 필수 부품이며, 해당 부품은 아이신에서만 만들 수 있었다는 겁니다. 즉, 이 부품이 없으면 도요타의 자동차 생산 라인 자체가 멈춰 버립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사흘만에 거의 정상 수준으로 돌아옵니다. 이해할 수 없지요. 중요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하나 통째로 사라진 건데 어떻게 그것이 원상 수준으로 단 사흘만에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그 자세한 이야기는 앞서 다룬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 나온 모양입니다. 하여간 이 사태를 네트워크적으로 분석하면 대강 이렇습니다.
도요타는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여러 하도급(혹은 중소) 기업들의 집합체입니다. 도요타 자체는 완제품을 생산하지만 각각의 공장들은 부품들을 공급해 납품합니다. 그리고 해당 부품 중에는 아이신처럼 다른 누군가가 대신 생산할 수 없는 중요부품도 있습니다. 이 부품 공장 네트워크는 도요타라는 회사 아래에 존재하지만 각각의 공장들은 서로 기술과 인력을 교환하여 상호작용합니다.
그런 상호작용을 돕는 것은 중간관리자입니다. 이 책의 표현을 빌면 TV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전화기를 들고 바쁘게 통화하며 여기저기 움직이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혹은 기업이나 부서)의 네트워크를 서로 연결합니다. 중간 관리자니까요. 이 사람과 이 사람이 연결되면 바로 문제가 풀리겠거니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이신의 경우도 비슷하다더군요. 다른 부품공장들은 아이신이 만드는 부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 쪽의 지시가 없어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스스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움직여서 결국 사흘만에 상처를 복구한겁니다. 치명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사흘만에 복구한다라. 대단하지요.

그래서 더 도요타라는 기업이 궁금합니다.+ㅆ+


가장 마지막에 실린 것은 9.11 테러입니다. 맨하탄의 심장부를 격돌한 테러로 인해 그 지역이 마비되지만, 하부구조에서부터 서서히 지체현상은 풀리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상처 입은 곳에 흉터는 남습니다. 수 많은 감원과 수많은 가게들이 사라지는 모습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네트워크가 치명상을 입어도 움직일 수 있고 기능은 하지만 완전히 복구되는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 의외로 그 후유증이 커서 놀랐습니다.


던컨 와츠. 『Small Sorld(스몰 월드)』, 강수정 옮김. 세종서적, 2004, 18000원.


네트워크 이론 이야기를 더 써야했는데 써도 이야기가 쉽지 않지요.; 사실 굉장히 좋아하는 분야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많은 책이 나오지 않긴 했는데, 교양서로 본다면 위의 책들이 읽기 편하겠지요. 네트워크 분석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링크』에서 다루었으니 패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에서 이 책을 보실 분이 있을라나 모르겠습니다..^^;


덧붙임. 제목의 '세상 참 좁아요?'는 부제 때문에 붙여 놓은 겁니다. 부제가 '여섯 다리만 건너면 누구와도 연결된다'입니다. 밀그램이 말한 여섯 단계의 분리이지요. 하지만 SNS를 가지고 따지면 여섯 다리보다 가깝다는게.-ㅁ-;


덧붙임 2. 저 밀그램의 편지 실험을 두고, 편지를 보낼 사람을 어떻게 선정하나 했더니 '내가 이름을 부르는 정도로 가까운 사람' 중에서 선택하는 거였답니다. 한국이야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미국에서라면 성을 주로 부르지, 이름을 부르는 것은 가까운 사이지요. 그런 경계가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라면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 많지는 않네요....-ㅁ-;;;
지난 번에 A. L. 바라바시의 『링크』를 다시 읽고는 관련 검색을 하다가 다른 책이 나온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책의 제목은 버스트. 영문으로는 Burst라고 씁니다. 단어가 무슨 뜻인지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다 보고 나서 막판에야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습니다. 사전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막무가내로 읽었지요. 하지만 다 끝날 때 쯤되면 찾아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해가 됩니다.


근데 막상 감상을 쓰려고 보니 재미있다! 바라바시 교수님 사랑합니다!
....
라는 말 외에 떠오르는 것이 없지 뭡니까. 보는 내내 책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아끼고 또 아껴가며 보았거든요. 책이 두껍지 않았는데도 지난 주 내내 읽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기야 하루나 이틀에 한 권씩 읽었던 아야츠지 유키토랑은 또 다릅니다. 그쪽은 추리소설이니 적당히 건너 뛰어가며 보아도 되고, 이쪽은 사회과학 서적이니 곰씹어 가며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씹으면 씹을 수록 맛있습니다. 되새기는 것이 참 행복하더군요.

책의 부제는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the hidden pattern behind everything we do)'입니다. 왜 부제가 그런지는 읽다 보면 압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옛날 옛적, 헝가리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그 이야기를 전개하는 도중 여기저기 샛길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샛길들은 모두 하나로 귀결 됩니다. 헝가리의 그 역사적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그런 결과를 낳았는지 등등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역사학도가 역사적 사건을 파헤치면서 그 과정에 발생한 여러 일화까지 자세히 설명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떠올린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다르긴 다릅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얇은 실을 엮어 카페트를 짜는 것이라면, 『버스트』는 굵은 동아줄을 중심으로 하나씩 색을 첨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쪽은 굵은 줄거리가 하나 있거든요. 네트워크 분석에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역사적 이야기가 말입니다.

아무래도 중심 이야기가 헝가리 역사이다보니 몇몇 이름 번역은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바라바시가 자기 조상이라고 밝힌 Barlabasi(a는 그냥 a가 아니라..;)를 버를러바시라고 적었는데, 그렇다 보니 저자 이름인 바라바시와 안 맞습니다. 차라리 버를러바시가 아니라 바를러바시라고 했다면 l을 뺐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버러바시가 아니라 바라바시와 바로 연결 지을 수 있었겠지요.

중간에 등장한 아인슈타인과 칼루자의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아, 그 편지 답장의 지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 또 한 학문의 역사가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참 아깝다니까요. 하지만 그 덕분에 선입선출이 아닌 우선순위를 배웠습니다. 지난 주에 이 부분을 읽고 깊이 감명을 받아, 요즘에는 할 일을 주르륵 적어 놓고 그 중 중요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거든요. 하다보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빨리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대신 할 일을 적어 놓으니 적어도 그건 다 끝마쳐서 좋습니다.-ㅂ-

알바트로스는 이전에 읽었던 자연과학 연구 관련 책들이 떠오릅니다. 아, 제목을 홀랑 잊었다는 것이 문제로군요. 하지만 자연 과학 연구나 사회과학 연구나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또 재미있게 보았고요.

헝가리의 문서관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상당히 극적이던걸요.

그리고 해리 포터와 응급실 환자와의 관계도 재미있네요. 잠시 짚고 넘어가는 이야기들이지만 그게 또 맛깔납니다. 아, 언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작은 마을, 작은 공동체는 그 나름의 문제가 있다는 부분. "외부 관찰자가 보기에는 작은 마을의 삶이 유유자적해 보일지 몰라도,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부분은 마플 여사님께 물어보시면 확실히 답을 주실 겁니다.(...)




A. L. 바라바시. 『BURST(버스트)』, 강병남, 김명남 옮김. 동아시아, 2010. 18000원.


그런데 여기 오시는 분들 중에는 재미있게 읽으실 분이 있을지...; 관심 분야에 따라 재미가 갈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행동이라든지 사회과학, 네트워크 분석 등에 관심이 있으시다면야 재미있겠지만, 아니라면 중심 이야기인 세케이의 이야기만 읽고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요.'ㅂ';
아마도 프님이라면 재미있게 보실지도..? 티이타님도 관심 가지실지 모르겠지만;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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