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더랍니다. 마신다는 개념보다는 먹는다는 의미에 무게를 두고 말입니다.
어떤 국물이 좋을까 이모저모 생각을 했는데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쌀국수 국물이었더랬지요. 왜 하필이면 쌀국수인가. 그 달달하면서도 살짝 끈적끈적하고, 그리고 진한 쇠고기 국물이 마시고 싶었던겁니다, 그려. 끈적끈적하다는 것은 그 질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우려내면 왜 국물 마시고나서 입술 딱 마주치면 끈적하니 딱 붙지 않습니까. 그런 느낌의 끈적함입지요.
그리하여 쌀국수 파는 곳을 찾아가 고기가 올라간 쌀국수를 한 그릇 시켰더랍니다. 하지만 정작 그릇을 받아드니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무에인고 하니, 숙주입니다. 숙주나물. 쉽게 숨이 팍 죽는다 하여 그 신숙주의 이름을 따서 지은 숙주나물. 뜨거운 쌀국수 국물에 담가놓으면 어느 새 살랑살랑 익어버리는 숙주나물. 밥통이 편치 않아 깨작깨작 먹으려고 한 젓갈 집어 입에 넣으니, 쌀국수 국물이 살짝 돌면서 아작아작한 그것이 참으로 맛나더이다. 아직 숨이 덜 죽은 것들은 국물에 푹 담가놓고, 숨이 죽고 몸통이 투명하게 변한 것을 골라 하나 둘 입에 넣어 아작아작아작아작아작.
으허허허. 그렇게 먹고 나니 정작 쌀국수의 주인공인 국수는 뒷전이오, 오직 숙주와 국물만이 속에 들어가더군요. 거참 맛나다.

쇠고기 국물은 참으로 맛납니다.
겨울에 종종 먹는 무국! 그것도 쇠고기무국은 그야말로 시원 달달하지요. 이게 겨울에 더 맛있는 건 고기보다 물론 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무가 더 맛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겨울에 김장 담그다가 남은 맛있는 김장무를 꺼내 숭덩숭덩 납작하게 썰어서 만드는 무국. 쇠고기를 함께 넣어 끓여내면 그 시원 달달함은 위의 쌀국수 국물에 비할바가 아닙니다. 한 입 들이키면, 국물 위에 동동 떠 있던 쇠기름이 입술에 묻어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것도 참으로 멋지지요. 거기에 후추를 뿌리면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후추의 알싸함 역시 참 별미란 말입니다. 숙주처럼 아작아작하진 않지만 무를 살짝 익히면 또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있고 아주 푹 익히면 혀로 눌러도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그 무의 식감이 참으로 좋습니다.

오늘같이 스산한 날에는 이처럼 따끈한 국물 한 그릇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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