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tany란 단어는 어디선가 종종 들었는데, 이게 식물학을 가리킨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아니, 처음 인지했습니다. 식물과는 별 연관이 없어보이는 철자라 전 패션이나 의상디자인 쪽인줄 알았지 뭡니까.ㄱ-;

하여간 이 책의 원제는 『The naming of names』로, 넓게는 식물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마무리는 린네나 그 시대 사람들로 끝난다 생각하시면 얼추 맞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만만치 않아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로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소요학파를 이끌었던 테오프라스토스가 주역입니다. 과학적으로 식물에 접근해, 식물을 어떤 식으로 분류하고 나누어야 하는지, 약초학이 아니라 식물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뒤 몇 천년 간 묻혔습니다.(...) 대부분 약초에만 관심이 있지, 그 분류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어떻게 식물학자나 식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식물을 제대로 묘사하고 그에 대한 책을 썼는가에 대해 다루면서 식물학이라는 학문이 자리잡기까지를 다룹니다. 원서 제목이 왜 저런지는 직접 보시면 아실겁니다. 그러니 설명은 넘어가지요.
하여간 이런 내용이라 이 책의 한국 번역 제목이,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 고대 희귀 필사본에서 근대 식물도감까지 식물인문학의 모든 것』인 것도 당연합니다. 이 제목이 이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자, 일단 저격(!) 대상은 B님과 C님과 T님. T님은 식물학에 관심이 있으시니 재미있게 보실겁니다. 물론 재미없으시면 뒷부분에 집중해서 보셔도 좋습니다. 식물학의 역사 전반을 다루고 있으니 꽤 괜찮거든요. 번역도 이 무지막지한 주제분야를 생각하면 상당히 훌륭합니다. 몇몇 인물 명에서는 걸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대단합니다. 그리스어부터 시작해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기타 등등을 망라한 이름을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번역하고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거기에 각 인물명 옆에는 철자도 함께 달아놓았습니다. 물론 한 번만. 처음 등장한 인물에 대해서는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원래 이름을 놓았으니 위키백과든 사전이든 뭐든 찾기 편하겠더군요. 거기에 책 뒤에는 아예 성의 알파벳 순으로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합니다. 간략하게 나왔지만 이해하는데는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이들에 대한 연표도 따로 다뤘고요. 만세! 이런 멋진 책이라니.;ㅂ; 입문서로는 그만입니다!

C님을 낚을 최적의 요소는 제목에도 나오지만 필사본입니다. 그러니까 이 저자, 대단해요. 유럽 각지의 유명 도서관에 들어가 식물과 관련된 여러 고서들을 열람신청해 일일이 보고 있었나봅니다. 사진과 그림이 풍부한데, 그 절반 정도는 그런 고서들에 실린 그림과 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C님께도 추천. 고서 보는 것만해도 눈이 호강합니다. 예를 들면 케임브리지의 고서도서관에서 감시자의 눈길을 받으며 책을 보고 있었다거나... (부럽다.;ㅂ;)

B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식물학이라고는 하지만 과학 전반의 이야기이고, 처음부터 저자는 '초기 식물학 서적의 그림 은 개판이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그림의 역사도 얼추 얽혀 있습니다. 초기에는 식물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았고, 이게 실제 있는 식물이 맞는지 아니면 상상으로 그려 넣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랬는데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점차 식물 그림이 세밀하고 섬세하게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 최고봉은 알브레히트 뒤러. 뒤러의 그림은 이 책에도 실렸는데, 정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저자에게는 '그 어디(식물학 서적)에도 없었던 환상적인 그림'이겠더라고요.


기본은 교양서지만 꼼꼼하게 읽으면 유럽 지성사에 가까울지도 모르며, 그 식물학자(나 관련학자)들의 네트워크도 함께 다루고 있으니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 네트워크 이야기를 왜 꺼내냐 하면 웃지요. 그 이야기는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껍데기는 못 보았는데 이런 거였군요. 예쁩니다. 하지만 속표지도 참 예쁘다능!


애너 파보르드.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 구계원 옮김. 글항아리, 2011, 38000원


덧붙임.
가격이 상당하지만 아깝지 않습니다.


0. 옛날 옛적, G의 생일날, G는 기프티콘으로 케이크 쿠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까맣게 잊고 있다가, 쿠폰 만료 3일 전에야 떠올려서 후다닥 케이크로 바꿔 왔습니다. 파리바게트의 고구마 케이크인데 맛은 그럭저럭입니다. 음, 하지만 전 파리바게트에서 제일 좋아하는 빵은 카스테라류입니다. 본델리슈 카스테라도 맛있지만 옛날 카스테라도 맛있고 이번에 나온 달걀맛 많이 나는 카스테라도 좋습니다. 그건 나중에 감상기를 따로 올리지요.


1. 팀장이 넷 있습니다. 나이는 다들 많지 않나봅니다. 갑을병정이라는 이 네 팀장 중에서 갑이 일은 제일 잘합니다. 하지만 갑은 현재 다른 팀장들과 아랫사람들에게 백안시 당하고 있습니다. 그게 말이죠...

1.1 얼마전 회사의 대우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팀장 여럿을 포함해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같이 회사에 탄원(?)을 하려고 했더랍니다. 하지만 거의 일주일 가까이를 논의해 결정해서 갑이 회사쪽에 이야기를 하기로 했는데 이게 틀어졌습니다. 갑이 그 역할을 하기로 해놓고는 안 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말이죠...
1.2  회사의 대우가 부당하다고 맨 처음 말하고 다른 사람들을 '들쑤셔' 놓았던 것이 바로 갑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본인이, 어차피 회사를 떠날 상황이니까 괜찮다며 자기가 이야기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막판에 뒤집었는데 그게 말이죠...
1.3  회사에 '찍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먼산)

1.4 일은 잘하지만 사람 부리는 것은 못한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도 안해주고, 일 시키는 것도 잘 안되고, 일을 잘 가르쳐주지도 못한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일 진척이 잘 안되면 또 버럭 화를 낸다나요. 아래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 않네요.

1.5 하지만 갑은 속으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내가 회사에 나서서 말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야'라고 하고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자기에게 십자가를 지운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6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인데 아주 공감이 되었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제가 아는 또 다른 상황과 상당히 닮았거든요.(먼산)



2. 이번에 프랑스에서 강화도의 외규장각 도서가 일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돌아올 예정이랍니다. 거기에 일본에 약탈당했던 왕실 의궤들이 하나 둘 돌아온답니다.

2.1 그러자 강원도가 말합니다. 그거 우리 오대산 서고에서 약탈당한 것도 있다능. 그러니 우리에게 달라능!
2.2 뉴스를 보니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끌어 들여 이야기하는 모양이더군요. 동계올림픽에 구경오는 외국인들이 볼 수 있게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종교계 이야기도 나온 것을 보니 오대산 월정사나 상원사에서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게 강원도청까지 합류했나봅니다. 인터뷰는 강원도청쪽에서 했더군요.
2.3 말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그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130억을 들여서 서고를 짓든 말든, 그건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연구의 편의성와 보존 관리의 편리성, 보존 관리의 적합성 문제입니다.
2.3.3  연구의 편의성. 아주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 있다가 귀환하는 자료입니다. 기존의 자료들과 비교하여 어디가 다르고 어떻게 차이가 생겼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서지학적 연구 및 역사학적 연구가 아주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그게 강원도에 있다면? 비교 연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강원도에 가더라도 최소 몇 년 간은 서울에서 연구를 충분히 마친 뒤에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3.4 보존 관리의 편리성. 있잖아요, 그거 아주 귀중한 자료입니다. 들어오면 아마 국보, 혹은 보물로 지정될겁니다. 그런 자료를 오대산 산골짝에 놓기는 좀... (하기야 오대산 월정사에도 국보급 문화재가 있을겁니다. 기억이 맞다면 진신사리가 있지 않던가...)
그리고 산골짝에 가져다 놓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입니다. 그렇다고 강원도 도청소재지인 춘천에 가져다 놓는다면? 아니, 저 문화재를 가져가겠다는게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겠다는 이유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춘천이 아니라 당연히 오대산에 들어가야죠. 그것도 옛 서고 자리를 찾아서 그대로 복원 + 현대적인 시설을 갖춰야 할테고요.
2.3.5 보존 관리의 적합성 문제야 뭐, 산골짝에 있으니 산사태나 눈사태나 폭우 같은 천재지변에 괜찮을까 싶은 것도 있고, 만약 산불이 나면 어쩌나 싶은 것도 있고. 하기야 그건 서울에 있어도 마찬가지겠지요. 거기에 항온 항습 방범 체제도 갖춰야 할테고. 끄응. 그거 130억 들여서 시스템 갖추는 것보다 유지하는게 더 문제일 겁니다.;


근데 옛날에 있었다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건 약간 미묘합니다. 특히 책인데. 연구해야하는 자료인데 말이예요. 연구 자료를 단순히 '관광용 상품'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평창에 맞출 것이 아니라 조금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연구자들이 차근차근 연구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뒤에 오대산에, 옛 서고의 모습을 재현하고 첨단 방범방재 시스템을 겸비한 서고를 만들어 가져다 두어 박물관처럼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면 좋겠지요.
다만 책이라는 특성상,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정도의 조도에 둔다면 아무리 항온항습을 유지한다 한들 빛에 상할 것이라 생각합니다.-_-; 이모저모 생각할 수록 어렵네요. 

여행 글 마지막이지만 분류는 책으로 넣습니다.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이라고 자타 공인을 받은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같이 여행간 G도 저를 보고 '제일 잘한 일이 일본어 배운 것과 예술장정 배운 거네'라고 할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였지요.

고서라고 하면 옛 책을 말하지만 저는 19세기에 출판된 이 책들도 오래되긴 했으니 고서로 부르겠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고서를 나눈다는 것도 무리라고 보니..'ㅂ';
진보초에서 구입한 책 네 권은 다 공방에 넣어두고 왔기 때문에 사진은 그 다음 공방에 간 날, 햇빛 아래서 찍었습니다.


맨 왼쪽은 파스칼의 팡세, 가운데와 맨 오른 쪽 두 권은 빅토르 위고의 책입니다. 공방에서 다음 과정을 진행하려면 반드시 빅토르 위고의 책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번에 일부러 진보쵸까지 갔던 겁니다.
한국에서 출판된 빅토르 위고의 책은 많지 않습니다. 애들용 책을 다시 제본하기엔 너무 시간과 노력이 아깝고, 제대로 나온 책 중에서는 제 취향의 책이 없습니다. 사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책을 제본하고 싶었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은 본드 제본입니다. 도저히 그걸 실제본으로 만들 생각이 안나더군요. 쳇. 그렇게 다섯 권짜리 시리즈로 낼 거면 기왕이면 실제본으로 해주지.-_-+ 개인적으로 민음사와 한길사 책에 대해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모 출판사 회장님이 아무리 책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그런 배려가 엿보이지 않는걸요? 거기에 다른 쪽은 괜찮은 책을 잘 뽑아 내면서도 다 본드 제본으로 내고 있으니... 차라리 일본 소설은 실제본이 종종 보이니 낫지만 영미 추리소설계는 희망이 안보입니다. 행복한 책읽기 책은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다른 큰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아요.

잡담은 이정도로 하고 다음 사진.;;



파스칼의 팡세입니다.


사실 뜯어 만들기가 조금 아깝기도 하지만....



거기에 번역서도 안 읽은 팡세를 프랑스 원서로 보고 있으니 감개 무량이지요. 누군가의 상저여던 모양입니다. 장서인 오른쪽의 한자 알아보기가 쉽지 않네요. 하지만 저렇게 장서인을 직접 만들어 찍을 정도라면 꽤 사랑받았던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당연히 실제본이고 프랑스어 책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책이라 가장자리의 황변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자리 여백이 거의 없어서 이걸 어떻게 저리해야하나 싶긴 하군요.=_=

아. 가장 중요한 가격! 200엔입니다. 0하나 빠진 것 아니고, 세 자리 맞습니다. 가격 물어보고 되려 제가 당황했습니다. 오래된 책이고 낡아서 그런 가격이 매겨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점 밖에 나와 있는 상자에서 찾아 집고 가격을 물었는데 200엔이라 해서 말이죠.



이번의 최대 수확물인 빅토르 위고 책. 사실 무슨 소설(이 아니라 운문이지만;)인지도 모릅니다.; 그도 그런게 책 자체의 내용보다는 실제본 책인가에만 주목을 했으니까요. 작가분께 많이 죄송하지만 전 빅토르 위고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요.;ㅅ;



속은 이렇습니다. 나중에 공방에서 잠깐 듣고 깨달았지만 이 책들은 예술제본으로 다시 만들어질 것을 어느 정도로 염두에 두고 출판된 책이라 합니다. 표지가 다른 책보다 약한 편이거든요. 그래야 뜯고 다시 가죽 제본을 할 때 편하니까요.


책 등은 많이 상해있습니다. 그래도 책 만드는 데는 문제 없습니다. 근데 보고 있자니 사람의 손이 많이 탄-누군가 많이 읽은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저 갈라진 선 하나하나가 종이 묶음(대수) 위치니 말입니다.

아, 그리고 이 책에서 빼먹은 사진이 하나 있군요. 이 책은 인쇄본이 아니라 활자본입니다. 책을 펴 보면 종이에 활자를 눌러 찍은 올록볼록한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활자본을 만져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요. 와아....;;;



이쪽은 그렇게 예술제본으로 만든 책입니다. 책등 부분은 가죽이 아니라 천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마블지가 붙은 것을 보면 민소매 제본으로 만든 책입니다. 역시 빅토르 위고지요.


<발라드>라는 제목의 책이고 1845년 책입니다. 이 책은 뜯지 않고 놔두는 것이 낫지 않냐는 공방 분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일단 제 손에 들어온 이상 .... 음훗훗훗훗.............



약간 물에 젖은 듯한 자국이 남아 있지요. 오래된 책이니 폰트(라고 해야하나 활자라고 해야하나;)의 느낌도 다릅니다. 이런 옛 글자들도 좋아요.


옛날 책을 보면 이런 글씨를 다시 복원해서 폰트로 써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아니, 지금 모 책을 재 편집해야하는 상황이라 폰트나 출판 편집에 관심이 많아져서요. 아는 분께 윤명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긴 들었는데 아직 출력해보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직접 편집해보고 출력해서 봐야겠습니다. 후훗.



자아. 이제 슬슬 천 자르러갑니다. 위키 주머니 만들 천은 골랐으니 잘라야죠.>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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