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는, 그러니까 비유하며 요약하자면.

 

 

갑자기 회의를 소집해서 왜 그런가 하고 쫓아가봤더니, 윗분이 그러십니다.

 

"메인업무 담당자들이 신입들이라 다들 힘들어 하니까,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쉴 수 있도록 각 메인업무의 백업 지정자들이 업무 시작과 업무 종료 때만이라도 대체로 들어가시면 어떨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메인업무 하는 사람들이 힘드니까 한 달에 한 번 너희가 업무 일부만이라도 백업해줘라는 겁니다. 그리고 백업하는 동안, 백업자들은 본인들의 담당(메인)업무를 미뤄야 하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제 메인업무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짚을 수도 있고요. 나름 중요한 업무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미뤄둬도 괜찮지 않나? 라는 속내가 보인듯하여 불쾌했습니다.

그렇다고 불쾌하다고 그 자리에서 엎을 수도 없는 거고. 뒤돌아 생각하니 엎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요. 그런 걸로 메인업무 담당자들에게 생색내려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_-

 

 

무엇보다.

그런 내용에 대해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셈이라 더 불쾌합니다. 끄응.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은 내일 출근해서 약간의 항의를 해둬야겠습니다. 하하하.-_-

『월궁항아 프로젝트』는 표지도 그렇고, 아무래도 고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며 집어 들었지만, 웬걸. 현대판타지입니다. 고전이 아니고요. 주인공들의 머리카락을 보면 현대배경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지만, 이 배경은 대한제국입니다. 물론 현실 역사선의 고종이 어땠고 순종이 어땠으며-하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둡시다. 이 배경이 대한제국이 개혁에 성공한 현대판타지의 시간선을 달리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복장 복식. 후기에도 언급이 있지만 초반에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복 이야기를 하려다가, 한복 이야기를 마음껏 펼치기 위해 다른 시간선의 한국, 대한제국을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매우 탁월합니다. 소설 내내 펼쳐지는 '일상한복의 이야기'는 현대와는 사뭇 다릅니다. 명절에도 한복 입는 일이 드문 지금의 한국과는 달리, 대한제국의 한국은 과거급제처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양반이 되며, 양반이 되면 직계가족과 가까운 친척까지는 양반이 되어 여러 혜택을 받습니다. 그리고 일상복도 한복과 양장 중에서 선택하여 입습니다. 그래도 한복이 입기 불편한지라 서서히 양장이 세력(?)을 넓히고 있더군요.

 

한복점의 입지가 줄어드는 시대, 한복은 특별한 명절을 위한 복식이지만 일상복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대한제국의 서울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서울에 홀로 올라와 자취하던 단아영은 들어가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항아주단에 출근하다가 웬 남정네와 정면 충돌합니다. 알고 보니 사수의 오라비이며 항아주단의 주인과도 연이 있어 일을 도와주러 왔다네요. 그건 좋은데 사수는 오라비와 사이가 안 좋은 건지, 코깨진 아영에게 보상을 하라며 오라비를 들들 볶아 노비(...) 계약서를 쓰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사수의 오라비인 한태정과 단아영은 붙어 다니게 됩니다.

 

한태정은 외국에 나가 오랫동안 일을 하다 왔지만 그 경력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동생이 일하는 항아주단에서 잡무를 돕습니다. 동생인 한유정은 항아주단의 사장님인 신나정의 수제자이자 오른팔입니다. 한유정과 신나정이 함께 항아주단의 한복 주문을 소화하지만 그래도 여러 잡무는 남기 마련이지요. 그런 일을 하던 직원들이 갑자기 그만두면서 단아영이 고용된 겁니다. 초반에는 한복대여업무를 인수인계받고 진행하지만, 일솜씨가 좋다보니 아영이 조금씩 한복점 내의 이런 저런 일을 맡습니다. 함싸는 것은 둘째치고 다과 준비하고 처리하는 일까지도 다 맡아 합니다. 서비스직의 애환과 노고, 그리고 보람을 맛보면서 아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태정은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일을 돕다가, 아영에게 시나브로 반하여 작업을 펼칩니다. 가장 큰 훼방은 여동생에게 들어오고, 그 가장 큰 이유가 '오빠한테는 아영씨가 아까워!'라는 점은 이게 현대판타지(...)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만. 어쨌건 로맨스인만큼 이들 둘의 연애담이 이야기를 끌어 갑니다.

 

 

아. 다 적으면 재미 없으니 슬쩍 빼놓은 이야기도 여럿 있습니다.'ㅂ' 그건 읽어보시면 알아요.

 

 

다른 것보다 한식 다과와 한복의 색조합은 글로만으로는 정말 아쉽습니다. 솔직히 이걸 드라마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지만, 어렵지요. 이 책을 한창 읽고 있을 때 마침 『흑요석이 그리는 한복 이야기』도 나왔던 터라 번갈아 보면서 화보의 부족함을 달랬습니다. 가능하면 한복 관련 책이든 그림이든 미리 한 번 훑어 보고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래야 소설에서 묘사되는 여러 한복의 자태가 머릿속에서 더 잘 그려지니까요.

 

 

한복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축을 잡아가는 건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단아영과 한태정의 가정사입니다. 아니, 가족사. 한태정과 한유정의 사이가 앙숙인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모습을 보며 단아영도 자신과 가족의 거리를 돌아봅니다. 멀리 있어 애틋한 가족이 있고, 멀리 있어야 애틋한 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도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가족내에서 희생역을 도맡는 이들도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걸 보는 다른 가족의 입장도 나름의 타당성을 갖습니다. 한태정과 단아영의 위치는 닮았지만 또 다릅니다. 그래서 각자가 바로 서고 돌아보기 위해 서로를 거울처럼 비춰보고 반성하는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손을 잡다가 둘이 가족을 이루는 건 로맨스소설이라 그런 겁니다. 로맨스소설이 아니었다면 동족상잔이 아니라 동족혐오의 유혈사태가 일어났을지도요. 그렇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양쪽은 같고 또 다릅니다.

 

정연주. 『월궁항아 프로젝트 1-2, 외전』. 러브홀릭, 2019, 1-2권 각 3천원, 외전 500원.

 

 

뭐라해도 읽고 있노라면 한복점을 방문해 근사한 한복 한 벌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절에만 입더라도, 입기 불편하고 돌아다니기 불편하더라도, 특별한 때 입을 한 벌을 마련하고 싶다며 검색을 시작하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더더욱 무서운 소설입니다.

거기에 한과 간식과 떡을 주문하게 만든다는 점도 무섭지요. 하여간 지름을 부르는 책이었습니다. 종이책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쉽네요. 나왔다면 당장 여기저기 도서관에 신청했겠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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