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기다리던 외전편입니다.

BL, 가이드버스(에스퍼), 현대.


리디북스에서 선출간 독점기간이 있었고, 그 출간소식을 보고는 본편인 『가이드의 조건』에 흥미를 갖고 본편 4권을 홀랑 읽었더랬지요. 가이드버스 소설 중에서도 손꼽게 마음에 드는 소설입니다. 본편의 이야기는 에스퍼와 가이드를 중점관리하는 센터에서 10년 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에 얽힌 이야기들이 현재에 와서 다시 불거진다는 점에서는 추리소설과도 비슷합니다. 특히 지난 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이한솔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더욱 추리요소가 강하고요. 이한솔과 아버지의 관계, 다시 최태훈과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추리소설로서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누가 그랬느냐(후더닛, whodonit)가 문제가 아니라 왜 그랬느냐(와이더닛, whydonit)가 중점인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편의 주인공은 에스퍼인 지관영이 아니라 가이드인 최태훈이 주인공입니다.


본편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오연입니다. 그 짝인 박승원도 마음에 들지만, 일단 오연의 이미지 자체가 제가 소설, 애니, 만화 등등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상입니다. 머리 좋고, 무뚝뚝한 인물. 거기에 핸디캡도 갖고 있습니다. 본편에서 오연은 센터의 중심인물이지만 요주의인물이기도 합니다. 10년 전의 사건의 또 다른 주요 용의자인 오진우가 오연의 친동생입니다. 그리고 『가이드의 생활』 첫 번째 외전은 이런 오연과 박승원이 만났던 때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본편으로부터 3년 전이고요. 그 다음 외전은 4년 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연의 이야기는 그 두 사람의 포지션(...)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왜 박승원이 오연의 가이드가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군과 사이가 좋지 않은 센터임에도 장교가 센터 중심 인물의 가이드를 맡고 있는 것이 희한하다 싶었지요. 박승원 외에는 군인으로 언급된 센터 내 가이드는 없습니다. 군 내부에도 에스퍼가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 소화하기도 하겠지요.

박승원의 집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많지 않았다고 기억하는데, 외전에서는 양쪽 집의 이야기가 더 확실히 언급됩니다. 어쩌면 군에서는 위험인물인 그 에스퍼에게 목줄을 채움과 동시에 센터 중심에 우리 편을 하나 박아 놓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요. 페어가 깨졌을 때의 핸디캡은 가이드보다는 에스퍼에게 더 크게 작용할 테니까요. 아니, 이런 내용까지는 나오지 않으니 그저 짐작할 따름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지관영의 건강검진 에피소드입니다. 그 자체는 지관영의 흑역사로 언급할만 하나, 중요한 건 막판에 오연과 지관영이 나누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가이드와 완전한 짝을 이룬 그 두 에스퍼는 자신의 가이드를 보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자세한 이야기를 적으면 지관영이 너무 불쌍하니 슬쩍 접어둡니다. 달달한 이야기라 옆에 커피를 꼭 챙겨두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읽다가 문득 생각난 것은 동성혼 문제입니다.

본편 뒤에 실린 외전에는 박승원과 오연의 결혼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본편 시작에서 최태훈이 스물여덟이라는 언급이 있고, 외전은 그 3년 뒤, 서른하나입니다. 그 일년 반 전에 박승원과 오연은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오연이 프로포즈를 했다더군요. 그리고 거기에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p.234/254

결국에는 끈질기게 살아남는 쪽을 선택한 그이지만, 승원은 아직도 프로포즈를 받았던 순간만큼 제 연인이 근사하게 보였던 날이 없다고 회상한다. 아직 법으로 묶이지 못한다는 것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즉, 이 때만해도 법적인 결속력은 없다는 겁니다. 동반자법이나 혼인신고 같은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가이드의 생활』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혼인신고 언급이 있습니다. 동성 간의 혼인신고이니, 그 사이에 아마도 법이 바뀐 걸까요. 사소한 것이라면 사소한 이야기지만 외전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혼인신고에 대한 최태훈의 언급을 보면 동성간의 혼인신고가 전혀 문제 없는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오연과 박승원은 박승원의 사정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걸까요..? 하지만 그것도 언급이 없었고.


엉뚱한 이야기로 흘렀지만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후기를 보면 오진우가 등장하는 외전편이 한 권 더 나올 모양이니 기다려봅니다.



진램. 『가이드의 생활』(가이드의 조건 외전). 피아체, 2018, 2500원.


가이드버스도 대개는 SF죠.'ㅂ'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현대 +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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