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참 슬펐습니다. 미니멀라이프책은 아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골라서, 취향에 맞게 아름다운 삶을 살자는 것이 주 내용인 책을 보면서, 이런 생활을 하려면 무조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돈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취향이 있어야 좋아하는 것을 고를 안목이 생긴다고요. 하지만 그 안목도 당연히 돈이 필요합니다.


트위터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것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보고 겪어야 합니다. 살림이나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건을 구입해서 써보고, 이 물건은 나와 잘 맞는다, 이 물건은 자와 맞지 않는다를 스스로 알고 판단합니다. 어떤 물건은 때에 따라 몇 년 더 지나서 맞을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은 쓰다가 안 맞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걸 확인하려면 물건을 다양하게 사서 쓸 수 있는 재정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재정적 여유가 있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시험할 시간이 없어 타성적으로 물건을 구입할 것이며, 시간적 여유가 있다한들 물건을 구입할 자금이 없으면 다양하게 써볼 수 없겠지요. 결국 안목도 그걸 향유할 수 있는 자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안목이 있어도, 지금의 내가 돈이 없으면 좋아하는 것은 천천히 구해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금적 여유가 있다면 좋아하는 것도 다양하게 갖출 수 있고,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시험해볼 수 있습니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겠지요.


저자는 아주 작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남편과 같이 삽니다. 집이 고베라 주말 등에는 오카야마까지 널리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고 즐깁니다. 고베 다보니 디저트 등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기도 하고, 그런 생활을 즐기기도 합니다. 점심시간이 두 시간이나 된다는 것을 보면 직장도 꽤 괜찮고 집에서도 가까운 모양입니다. 도시락을 쌀 심적 여유도 있고, 집에 와서 간단하게 밥을 챙겨먹을 여유도 있습니다. 직장이 있고, 가족이 있고, 집이 있고, 재정적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 보이는 것들이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날의 일일 수도 있지만 계절을 느끼고 삶을 챙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여유 있는 부유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을 한 뒤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자체는 무척 좋습니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물건들을 소개하고 그렇게 보내는 자신의 비법도 함께 씁니다. 정갈하게 놓인 가구들이나 식기 등을 보면 따라해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이것이 쇼케이스에 놓인 남의 삶 엿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픕니다. 예전에는 이런 삶도 즐길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런 삶을 누리는 것 자체가 ‘나는 가난하게 사는데 당신은!’이라는 질시의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십이국기에서 봉왕이 말했듯, ‘나만 배부르게 먹으면 배부르지 않아요.’. 여유롭지는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함께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어야 마음 놓고 이런 삶을 즐길 수 있는 겁니다.


책을 읽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슬펐습니다.



오쿠나카 나오미. 『내가 좋아하는 것과 단순하게 살아가기』, 박선형, 진선북스. 2017, 10800원.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 책에서 소개한 브랜드도 궁금한 생각이 들어 책 사둘까 싶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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