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아름다운 그 분. 파일명이 11_WBR_1870_richmond_ionides인걸 보면 이오니데스 마님의 초상입니다. 도쿄의 The Beauriful 전시회에서 보고 홀랑 반한 그 분.)

 

 

 

대결구도로 만들 필요 없습니다. 그저 판타지소설이건 로맨스판타지소설이건 관계없이, 잘 쓴 소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소설이 있을뿐입니다. 세상은 넓고 읽은 소설은 많지만 그 모든 소설이 잘 쓴 것도 아니고, 잘 쓴 소설이 독자의 입맛 혹은 취향에 맞는 것도 아닙니다.

 

 

여름 동안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샀습니다. 알라딘 전자책과 종이책 구매만 보아도 아시겠지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읽어야 되는데... 하면서도 전자책에 먼저 손이 갑니다. 종이책의 독서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그래도 종이책 중 라이트노벨 쪽과 미스테리아, 로맨스는 씹어 먹는 심정으로 읽습니다. 로맨스나 판타지소설은 읽고 싶어 구입했으니까요. 그래, 『메리블루』와 다른 로맨스소설도 그렇게 구입했습니다. 아차. 『매리지B』도 장바구니 담아야지요. 전자책은 재미있게 읽었으니 종이책의 감상도 그러할지 볼 생각입니다.

 

소설 하나는 읽다가 던졌습니다. 로맨스판타지였지요. 그리고 최근 전자책으로 구입했던 로맨스판타지도 상당수가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습니다. 조아라에도 브릿G에도 읽을 소설 많습니다. 사놓고 마음에 안 들면 내려놓아도 된다는 핑계이기도 하고, 내 돈만 버리면 되었지 시간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읽은 소설 A는 로맨스판타지였습니다. 읽다가 '이 소설의 작가는 고등학생일 거야. 그런데 그런 냄새 폴폴 풍기는 소설을 다듬지도 않고, 도대체 출판사는 뭐한거지?'라고 화내면서 포기했습니다. 소설의 완성도를 넘어서, 초반부에서 귀족가에서 환생했다는 애의 말투나 그런 애랑 어울리는 다른 인물들의 말투가 모두 현대, 그것도 현대중고등학교어입니다. 존잘님과 시발을 달고 다니는 그런 말투요. 그런 말투를 쓰는 이가 그 소설의 주인공이며 등장인물들이고 제국의 귀족자제들입니다.

 

 

최근에 읽은 소설 B도 로맨스판타지입니다. 이 소설은 초반에 여주인공에의 감정이입에 실패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면 감상만으로 충분합니다. 아무리 모나리자가 멋있어도, 이오니데스 부인께서 아름다우셔도 손을 대서는 안됩니다. 주인은 따로 있으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주인이 있지요. 자기자신. 아무리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어도, 얼굴을 주물럭 거린다거나 엉덩이를 만진다거나 손을 만지작 거리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하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아니라고요? 주인공이 너무도 아름답고 씩씩하고 멋지기 때문에 당하는 인물들도 좋아한다고요? 읽고 있는 저는 제가 희롱당한다고 느꼈습니다. 성별을 넘어서 저건 용인되어서는 안됩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매우 강한데,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고, 집안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이 안되어 사건이 꼬이는 등등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설정에 인물을 집어 넣고, 원하는 사건을 넣는다고 하여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읽으면서 참 미묘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소설 C도 로맨스판타지입니다. 회귀는 이제 클리셰도 아니라 키워드인가요. 아니, 차원이동빙의라고 부르는 이세계빙의도 이제는 자주 나오는 소재입니다. 최초의 뭐시기를 뽑아 내려면 소설 목록 뒤지는 일부터 해야할 겁니다. 이 소설은 그 중에서도 소설 속 빙의입니다. 요즘에 조아라에서도 많이 나오지요. 악녀로 빙의했기 때문에 여기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는 전개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완성도를 가르지만, 이 소설은 등장인물이 밋밋하더랍니다. 1권 앞부분을 보다가 안되겠다는 생각에 뒤로 넘어갔습니다만, 거기서도 포기하고 내려놨습니다. 앞 전개가 재미 없어서 뒤로 넘어갔다가 뒤도 마찬가지라 놓았습니다. 이런 소재의 이야기는 취향이 아니라 그럴 겁니다.

 

 

 

다른 소설 D도 로맨스판타지입니다. 이 책은 1권 열심히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2권 끝부분으로 갔다가 접었습니다. 가스라이팅하는 인물이 나오고, 전체 분위기가 스릴러나 첩보소설 같은 느낌을 주지만 지나치게 주인공들에게 그 역할을 강하게 부여합니다. 주인공들에게 강한 시련을 부여하고 싶었던 김에 능력자를 만든 것은 좋으나, 합이 안 맞습니다. 그러니까, 왜 꼭 이들이 가야했는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니어도 되는데? 다른 인물이어도 되는데? 왜?

 

등장인물을 많이 만들면 각자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리고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기 쉽지 않습니다. 인물간의 균형을 만들고,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개성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며, 각자의 위치에서 빛을 내도록 하면서 줄거리에는 위화감이 없이 잘 짜인 소설은 많지 않지요.

 

 

소설 E는 판타지입니다. 로맨스냐 아니냐 물으면 아리송하지만, 이쪽은 무협 느낌이 폴폴 풍긴다고 할 정도로 주인공 1인극입니다. 다른 인물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매력적인 인물도 있어요.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이 사람만 남습니다. 그래도 전체 구조가 좋고, 조연들이 각각 살아 있습니다. 설정 몇몇은 홀딱 반할 정도로 빛납니다.

 

 

소설 F는 판타지입니다. 이쪽은 로맨스가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물론 읽다가 도중에 던져서 뒤에는 나올지 어떨지 모르지만. 초반은 좋았지만 주인공이 성장하며 재미를 주던 것이, 주인공이 스스로가 아니라 주변의 말을 건드려 사건을 진행시키면서는 맛이 떨어집니다. 이 소설의 맛은 주인공이 점차 성장하면서 자신을 극복하고 이전에 가지 않은 길을 보여주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는 자신의 성장보다는 주변의 사건, 정치적 상황을 꼬아냅니다. 게다가 심각한 폭탄이 내부에 있다는 걸 소설 중반에 본 이후로는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 내려 뒀습니다. 결말 확인할 생각도 안듭니다.

 

 

소설 H는 제목을 공개하지요. 『요리의 신』입니다. 아직 한창 읽고 있어 정확한 평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올해의 책으로 꼽아도 될만큼 멋집니다. 주인공을 포함한 인물들이 탄탄하고, 이들이 각자의 길을 걷고 성장하는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판타지이지만 그건 게임시스템이 도입되었다는 몇몇 판타지적 설정 때문이고, 이를 제외하면 요리를 소재로한 소설입니다. 아니, 요리가 소재가 아니라 주제이기도 합니다. 요리와 음식, 조리, 그리고 레스토랑과 식문화. 이 전반을 아우르면서 함께 끌고 나갑니다. 조리방식을 세밀하게 소개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각자가 성장하는 방향이 같으면서도 또 다릅니다. 1회성으로 인물을 소비하지도 않으며 영원한 악당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악역 같다가도 이들 역시 감화하고 성장하며 또 다르게 변합니다. 사람의 성향은 불변이지만 다른 것은 바뀐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하도 재미있게 읽다보니 상대적으로, 조아라에 연재되었던 여러 로맨스판타지들에 대한 불만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평면적이고 어디서 많이 보았던 이야기, 세밀하지 못하며 주제가 없고 복수극이나 단순한 성장담에만 치중한 이야기. 성장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짜임새가 엉성한 전개, 개연성이 없고 주인공을 띄우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건들. 투데이베스트의 소재에 휩쓸려 비슷한 이야기만 나오는 복제품들.

 

 

아니, 꼭 이게 판타지와 로맨스판타지를 가르는 건 아닙니다. 단권이지만 『구원자의 레시피』 같은 소설도 있으니까요. 『패스파인더』도 전자책으로 나온다면 즐거이 맞이할 겁니다. 하지만 한동안은 로맨스판타지보다, 최근 몇 년 간 손 안대고 있던 판타지소설들을 꺼내볼겁니다. ... 장담은 못하지만,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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