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울음은 보통 좋지 않은 징조로 해석합니다. 까마귀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문화권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해석하는 일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 소설은 나름 해피엔딩입니다.


나름이라는 부사를 붙인 것은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말 감상이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A의 입장에서 보느냐, 아니면 D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감상은 갈립니다. 또 등장인물 중 남자가 많다보니 BL로 오해할 소지도 있지만, 그렇게 본다면 해피엔딩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런 감상을 다 떠나서, 이 소설은 투박하지만 또 매끄럽게 잘 빚은 동양풍 판타지소설입니다.



현(玄)은 저승사자입니다. 저승사자들은 원래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활동했지만 지금은 각자의 활동 영역을 두고 그 안에서 업무를 처리합니다. 현이 원래 팀을 이뤘던 이들 중 한 명은 대구에, 한 명은 신촌 일대에서 업무를 봅니다. 저승사자라지만 인세에 섞여 일을 하기 때문에 핸드폰을 사용하며 옷을 입고 음식을 먹기도 합니다.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람들은 저승사자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습니다. 특히 스스로 명을 끊을 생각을 하는 이들은 저승사자를 잘 보기 때문에 그런 이들을 꾸준히 관리하면서 연을 맺고 지내기도 합니다. 현이 특히 그러는군요. 뭐, 신촌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은 요즘에는 아예 인터넷으로 쇼핑을 한다니까요. 저승사자들도 세월이 변함에 따라 활동 방식도 점점 변하는 겁니다.



일이 있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다는 철을 맞이하러 가다가 현은 한 청년을 만납니다. 이정운. 소년일 적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자살위험군이라서 자신이 보였지만 지금은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자신이 보입니다. 희한하네요. 그 자리에 있던 이가 지나치게 친화력이 높은 동료 철이어서 이정운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가게 되고 그 뒤에도 매우 자주 마주칩니다. 물론 철은 그 뒤에 다른 동료인 한에게 엄청 야단 맞습니다.

참 희한하지요. 저승사자는 이승의 인간들과 어울려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짓을 저지르면 당장에 명부전에 끌려가 야단맞을 것인데, 정운과 어울릴 때는 한 번도 그럴 일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과 만나면 밥 시켜먹기도 좋고 이것저것 물건 사기도 좋으니 철은 매우 자주 어울리지만, 그리고 얼결에 제일 안 그럴 것 같던 한도 함께 어울리지만 그런 때도 문은 안 열립니다. 이렇게 어울리면 분명 징계받을만하지 않나 고민하던 와중에, 이번엔 정운이 선녀도 봅니다. 현과 이전에 연이 있어서 알게 된 해당선녀는 모종의 사유로 잠시 인간세계에 내려왔다가 정운을 만났고, 자신이 보인다는 것이 어떤 사건을 예고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종종 함께 어울립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현에게서 시작해, 저승사자 동료인 철과 한,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정운, 현의 업무와 관련된 이들, 현의 지인인 해당까지 넓어집니다. 그리고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까마귀의 울음은 소설의 절정에서 폭발합니다. 수수께끼는 풀리고 저승사자들은 좌충우돌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소설 내내 1인칭이어서 제대로 엿볼 수 없었던 현의 이야기가 엮입니다. 앞서 조금씩 풀렸더랬지만 본인의 이야기를 본인의 입으로 하고 있으니 제대로 엮이지는 않았지요. 그것이 절정의 길목에서 하나로 묶입니다. 쉽게 말해 여러 복선들이 회수됩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남은 것들을 주워 모아 정리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승사자를 보는 인간을 만나면서 생긴 현의 비일상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 비일상의 잔재는 살짝 남아 여운을 남깁니다. 그렇기에 읽는 사람도 이야기를 놓기 참 아쉽지만 이정도면 알맞게 딱 되었다는 감상과 함께 내려 놓습니다.



길지 않지만 딱 좋게, 딱 적절하게 맛있는 이야기였습니다.+ㅅ+



거룩한몽상. 『까마귀가 울다』. 노블오즈, 2017, 3500원.



『레무리안』 덕분에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제 전용 추천도서로 올라왔기에 장바구니에 담았다 털었는데 말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알라딘의 추천알고리즘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덕분에 좋은 소설 잘 보았습니다.


그러니 잊지말고 다른 책들도 챙겨봐야지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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