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행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장 여름에 가까운 때 간 것이 6월 초, 9월 말이었으니 이렇게 일부러 여름을 피한 것은 피서 기간의 혼잡을 피하고 싶다는 점과 항공기 가격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여행 때 항공권 결제하면서 손이 덜덜 떨렸으니까요. 국외 여행은 패키지로만 갔으니 그거야 그렇다 쳐도, 제가 단독으로 끊은 항공권 중 가장 비쌌습니다. 지금이야 유류할증료가 더 올라서 더 비싸겠지만 도쿄가는 항공권이 50만원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훗.

(하지만 애초에 충동'구매'였으니 어쩔 수 없...-_-)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별 생각 없이, 정확히는 쇼핑에만 별 생각 있던 곳이 가마쿠라입니다. 종이를 사러 일부러 가마쿠라까지 다녀온 것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또 사진 안 찍었네요. 조만간 찍어야 하는데 날씨가 이래서야 원.

종이만 사러 가기 민망해서 몇 군데 둘러보고 싶은 곳을 넣었는데 첫 방에 워낙 크게 마음에 들어 놓으니 다른 곳이 아예 눈에 안 들어올 것 같아 호케이지와 호고쿠지는 피했습니다. 호케이지는 지난 겨울의 감상이 너무 쓸쓸해서 여름에 가면 분위기가 다를까 싶어 갈까 했는데 츠루가오카 하지만구에서 홀딱 반한 것이 있어서 머릿속에서 지워졌습니다. 호고쿠지의 대나무 숲도 마찬가지고요.



츠루가오카 하치만구는 들어가면 양 옆으로 연못이 있습니다. 겨울에 갔을 때는 그냥 물이었는데 여름에 가니 분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이것이 왼쪽편.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를텐데...




온통 연, 연, 연입니다. 왼쪽편에는 백련만 있더군요.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시면 아시겠지만 연잎 높이가 사람 키만합니다. 꼬맹이들은 저기 서면 꽃이 안 보이겠다 싶더군요.




빽빽하게, 밀림처럼.




나무가 아니라 숲이 아니니 밀림은 아니고. 그렇다면 밀련.




그러고 보면 부여에 갔을 때, 군림지인가에서도 연꽃이 이렇게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과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건 그냥 연꽃인데 이건, 뭔가 느낌이 다릅니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나 여행의 차이 같은 것 말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가장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줌으로 당겨서 찍었지요.




저 앞에 보이는 하치만구 따위(!)는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꽃입니다. 연, 연, 연.




이쪽은 오른쪽.
왼쪽이 좁아보인다면, 이쪽은 넓은 것도 그렇고 좀 키가 작은 것 같습니다?
아뇨, 사진이 그래서 그래보일뿐, 키는 비슷합니다. 다만 이쪽은 홍련도 섞여 있더군요. 홍련하니까 흑의 기사단이..(탕!)




저기 저쪽에서 사람이 일하는 것이 보여서 뭔가 했더니, 작은 매점 근처에 있는 연잎을 잘라내고 있더랍니다. 긴 가위로 자르던데, 자른 잎들은 모두 건져 올립니다. 썩으면 안되니 그런걸까요.




매점에 가기 전, 가는 도중에 잠시 의자에 앉아 연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이런 연못 하나 가지고 싶은데 취득세가...(이봐;)

열심히 지금 있는 연꽃을 키워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더 큰 화분이 필요할까요.




매점에서 찍은 것. 옆에서는 연잎을 자르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연만 하염없이 바라볼뿐이고.




보고 있다가 깨달았습니다. 왜 이쪽의 연이 다르게 보이는지를. 배경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부여의 연꽃은 논에다 심었습니다. 가운데 숲이 있지만 연꽃을 심은 논(혹은 얕은 연못)이 그 숲을 둘러싼 형상이고 허허벌판에 외따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다르지요. 숲 한가운데 연못이 있고, 연못을 오래된 나무들이 둘러싼 것 같습니다. 고급 병풍으로 둘러쳤는가 아닌가의 문제랄까요. 빽빽한 연못이라는 것은 같지만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물론 그늘이 많은 쪽이 연 구경하기에 좋습니다. 아우. 씨앗 하나 받아가고 싶은데, 안되겠지요? ;ㅂ;




돌아나오면서 그늘 아래서 사진을 찍었더니 이모양입니다. 이쪽은 홍련이 많이 보이네요.




아버지, 연꽃 봉오리는 이렇게 생겼답니다. (내용설명 생략)




여튼 덕분에 연꽃 구경 실컷 하고 왔답니다.>ㅅ<





(덧붙임)

여행가서 뭐하고 왔냐고 물으면 지금까지는 '서점 가서 실컷 돌아다니며 책 구경 했어요'라고 대답했는데 원체 대답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하더란 말이죠. 다음에는 '가마쿠라에 가서 연꽃 구경도 실컷 했어요'라는 것도 덧붙여야겠습니다.

솔직히 이번 여행에서 한 것은?
놀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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