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세베유의 상토노레카라멜을 먹고 케이크의 대왕마마를 만났다고 한지 어언 3년. 이번에는 다시 가보겠다 생각했지만 가겠다고 하고는 정보를 찾아보는 사이에 맛이 변했다는 정보가 있어 좀 슬펐더랍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확신을 못하고 있습니다. 변한 것이 나인지, 아니면 케이크인지 말입니다.

여행 가기 전날부터 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막판에 여행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가기 전날에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지요. 그런고로 오늘의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았습니다. 화요일 밤과 수요일 밤, 이틀 연속으로 잠을 설쳤으니까요. 그러니 오늘 G와 H가 약속을 깼을 때 분노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먼산)

본론으로 돌아가, 잠이 부족하니 몸 상태도 안 좋은 것인지 이번 여행의 입맛은 참 희한합니다. 단 것을 거의 못 먹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푸딩을 달고 살고 보이는 케이크마다 맛있겠다고 군침을 흘릴터인데, 빵만 봐도 가슴이 뿌듯한 것이 참으로 행복할 터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단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케이크 보기는 돌 같이 하고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책...? 그릇...? 아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구입하려고 목적했던 것은 거의 다 구입했지만 하고서도 뭘 산 건가 싶기도 한걸요.

그런 상황이니 파리 세베유에 가서도 제대로 케이크 맛을 느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느꼈든 아니든 간에 저는 파리 세베유에 다시 갈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베유가 있는 지유가오카 자체가, 아마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것도 있고 말입니다.

지유가오카는 이번 여행 첫 일정이었습니다. 혼자서 여행에 대한 감동이나 그런 것 전혀 없이, 와치필드와 루피시아를 들리고 파리 세베유를 가기 위해 왔습니다. 입맛은 없었지만 엘릭서를 복용해서 기운을 되살리고, 쇼핑을 다 끝낸 다음 파리 세베유에 갔습니다. 와치필드를 마지막 일정으로 놓으면 찾기가 참 쉽습니다. 그냥 그 길을 따라 건널목이 나올 때까지 죽 걸어가면 되니 말입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찾아가서 케이크를 고르고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케이크를 고르고 나니 점원이 와서 음료 주문을 받고, 음료와 케이크가 같이 나옵니다. 바빠서 그런건지 테이블이 비어도 치우지 않고, 음료 나오는 것도 늦고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오직 케이크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케이크 맛은 제 입에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사진을 비교하면 이전에 먹었던 케이크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외형은 그대로인 것이지요. 하지만 맛이 변한 것인지 제 입맛이 변한 것인지, 이전에 느꼈던 감동은 없었습니다.
크림은 쌉쌀하고 그리 달지 않지만, 단맛과 쌉싸름한맛은 따로 놉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러멜의 맛이 강하니, 속 안에 들어 있는 커스터드 크림은 거의 맛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나씩 분해하면서 재미있게 먹었지만 맛은 그리 즐겁지 않았습니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케이크가 간절히 생각나거나 하지 않아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걸까요. 아니면 케이크의 맛이 이전과 달랐던 걸까요. 500엔(세금 미포함)이란 가격은 한국에서도 비할바 없는 가격이긴 합니다. 아니,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케이크도 보기 어렵지요. 슈를 하나하나 구워내서 맨 아래의 슈에는 크림을 채우고 바닥으로 하고, 그 위에 크림을 채운 작은 슈를 올리되, 하나 하나 캐러멜을 묻혀서 올리고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비슷한 것은 본 적 있습니다. 크로캉부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지, 패션파이브에서 비슷한 타입의 큰 케이크를 본 적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은 케이크에 이렇게 정성을 들이기는 쉽지 않을겁니다.

모양이나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격 대비 성능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그 맛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케이크를 먹고 나서 몇 시간 뒤에 키타야마 커피점을 갔기 때문에 케이크가 왕대비로 격하된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분명 그 때의 케이크는 정말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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