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날, 집에서 뒹굴거릴까 고민하다가 햇살이 너무 좋아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가니까 홍대까지 가기는 더욱 귀찮아져서 아주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놀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학림은 이전부터 가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로에서는 놀 일이 없으니까 이제껏 미루고 있다가 가본 겁니다. 두 번 정도 커피콩을 샀던 적이 있고 맛은 무난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G가 친구에게서 학림의 치즈케이크가 맛있다는 말을 듣고는 직접 커피도 마셔보겠다고 결심했더랬지요. 그래도 가겠다고 생각한지 두 달 만에 갔으니 나름 빨리 간겁니다.



치즈케이크 주문이 되는지 확인하고, 블렌드 커피와 치즈케이크, 아이스 카페라떼를 시켰습니다. 흰 접시도 그릇도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위기야 옛날 다방 분위기이고, 음악은 클래식이라 말 그대로 고전적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런 찻집도 분위기는 괜찮더군요. 다만 흡연석과 비흡연석의 구분이 확실하게 되어 있지 않고 그냥 자리만 정해두어서 담배연기가 들어오는 것은 걸렸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카운터 바로 앞이라 그런지 금연석이더군요. 커피 내릴 때 담배연기가 섞이는 건 안 좋을테니 그런가봅니다.



곁들이는 잼은 오렌지와 블루베리의 두 종류입니다. 넵. 전형적인 저장용 잼입니다. 설탕이 딱 반 들어갔겠다 싶습니다. 집에서 만들 때는 설탕이 그보다 적게 들어가잖아요.
치즈케이크는 정작 받아보고는 실망했습니다. G 친구도 입맛이 꽤 까다롭다는데 척 보기에 무스타입이고 뭔가 식욕이 당기지 않는 분위기인데, 맛도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3천원이라 가격은 싸지만 입맛에 따라 갈릴 맛입니다. 고운 입자의 무스가 아니라 거품과 비슷한 식감을 주는 무스입니다. 아마도 젤라틴으로 굳혔을 것 같은데 치즈 무스는 맞지만 입맛에는 잘 안맞았습니다. 너무 기대를 하고 가서 그런걸까요.



반대로 커피는 괜찮았습니다. 가격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략 4천원.
그 가격에 마실 수 있는 손흘림커피 치고는 맛이 괜찮습니다. 그야말로 커피맛입니다. 블렌드 커피라 어느 한쪽 맛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는 찾아가 한 잔 홀랑 비우고 커피부족분을 만족스럽게 채울만합니다.



카페라떼는 상대적으로 무난. 무난하다기보다는 그냥 그랬다라는 느낌입니다. 맛있다고 하기에는 그렇고, 맛 없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맛이 꽤 쓰더군요. G는 그냥 시럽을 들이 부어 달달하게 마시더니 결국 포기하고 남겼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았더라면 더 뒹굴 수도 있었지만 담배연기도 그렇고 해서 커피를 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디서 더 놀까 고민하다가 길 건너편의 파리크라상으로 갔습니다. 그 즈음 케이크가 부족하다고 울부짖고 있어서 그랬지요. 하지만 여기서도 딱히 먹어보고 싶은 케이크는 발견하지 못했고, 그냥 적당한 빵으로 대신했습니다.



자몽에이드와 소시지 바게트. 소시지가 간간해서 저는 빵만 골라 먹었습니다. G는 제가 소시지만 빼 먹을까 걱정했던 모양인데 반대로 빵만 먹었다니까요. 3500원이었나, 그 보다 조금 비쌌을건데 간식으로 먹을만은 합니다. 하지만 저라면 그냥 바게트를 먹겠어요.-ㅠ-
자몽에이드는 사이다를 꺼내놓고 만들길래 실망했는데 들어간 자몽이 의외였습니다. 냉장고에서 무슨 액을 컵에 담고 거기에 사이다를 부었는데 마셔보니 그 액이 자몽을 으깬겁니다.; 분홍색 자몽 과육이 그대로 있네요. 쌉쌀하니 좋습니다. 사이다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다른 걸 넣었다면 또 지나치게 맛이 시고 쓰겠지요. 그러려니 합니다.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을 위키와 씨름했습니다. 제출해야하는 건이 있어서 그 때문에 추석 내내 이리 저리 들여다보며 헤맸거든요. 이럴 때는 이과쪽 공부를 더 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뒤늦게 후회해야 소용 없습니다. 후회하는 시간에 영어를 한 단어라도 더 봐야죠. 참고 서적이 영어라...-_-;

파리크라상은 시끄러운데다-이날은 석사도 인플레이니, 공부를 더하니 어쨌느니, 비용이 어떠느니라는 혼성 그룹의 대화를 그대로 듣고 있었습니다-빵도 비싼편이니 그리 자주 갈 것 같진 않습니다. 맛은 P5도 안되면서 가격 수준은 P5더군요. 허허. 차라리 근처의 파리바게트를 가는 쪽이 선택의 폭은 훨씬 좁지만 쌉니다. 학림은 뭔가 종이를 잔뜩 펼쳐 놓고 머리 맞대고 의논하는 것이 어울릴 장소더군요. 나중에 시간 나면 담배연기 신경 덜 쓰는 친구와 함께 놀러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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