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종의 이유로 이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M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천황을 살려라!편입니다. 그리고 보면서 이만 바득바득 갈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종료된 후, 일왕 히로히토는 전범으로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거의 사형확정이었지요. 그러나 그 당시 총사령관으로 일본에 들어온 맥아더는 히로히토를 전범 목록에서 뺍니다.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조작하고 증언을 묵살하여 일본의 전범재판 자체를 축소합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자면 맥아더야말로 (한국입장에서) 친일파의 수뇌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맥아더가 이렇게 일본의 전범재판을 축소한 것은 개인적인 욕망과 관련이 있는 것이니 실제 친일과는 거리가 있지만 외부 입장에서 보면 일본이 전후의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역사의식이 비뚤어진채 남아 있는 것도 맥아더 때문입니다.
다 맥아더 때문이야~ 싶더라니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다큐멘터리를 보는 쪽이 이해가 잘 가실겁니다.'ㅅ'

일본의 천황제-일왕에 대해 미국이 오판한 것도 이런 뒷 이야기가 있었다는군요. 맥아더는 일왕을 죽일 경우 일본인들이 폭동을 일으킬거다라고 했다는데, 그 기반 조사는 미국에서 이루어진거랍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미국과 기타 연합국에서는 자국내의 일본인들을 모두 수용소에 모읍니다. 미국에서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그리고 미국에서는 수용소에 있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인류학 조사를 실시합니다. 이 조사에서 일본인들의 일왕에 대한 충성심이 굉장히 높게 나왔기 때문에 맥아더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진 겁니다. 그러나 미국이 간과한 것은 미국내에 있는 일본인들은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들은 수용소에 갇혀 있었을뿐이고 실제 전쟁은 겪지 않았으며, 이들이 충성을 바친 존재는 쇼와가 아니라 메이지입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은 근대화를 겪고 점차 발전해나갔겠지요. 그러니 그 당시 일본을 떠난 사람들은 일왕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쟁을 겪고 공습을 겪고 물자부족을 겪었던 쇼와시대의 일본인과 메이지시대에 일본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간단히 이야기해, 1960년대에 하와이나 미국 본토에 이주한 한국인들은 지금도 1960년대에 살고 있답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해 설명해주신 분이(위의 인류학조사 이야기도 그 분께 들었습니다) 예로 들었던 것이, 재미교포들은 파티장에서 여자가 먼저 가서 음식을 집으면 경을 칠 일이라고 한답니다. 남자가 먼저 집어야지 여자가 먼저 집는다고요. (...) 뭐,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훗. 그러니 미국의 오판과 착각, 그리고 그런 착각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을 불어 넣은 맥아더가 일왕을 살린겁니다.

그나저나 일왕을 살리는 것에 대해 끝까지 반대한 국가가 영국, 소련, 호주였는데요 소련이야 일본에게 당했으니 그랬고, 영국도 전쟁을 겪었으니 그랬다 치지만 호주가 끝까지 전범재판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이 왜 그랬나 싶습니다.



* 일본에서는 대동아전젱이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태평양전쟁이라 부르지만 양쪽 다 옳은 명칭은 아닙니다.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저 허여멀건 인종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전체가 하나로 일치 단결해야하고 그 우두머리는 제일 잘난 우리가 한다고 주장하며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으니 그리 부르는 것일테고, 미국에서는 진주만 습격으로 인해 참전하게 되었으니 아시아는 알바 아니었을 것이니까요. 실제 영상을 보다보면 미국은 아시아인들의 피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저런 영상 자체가 영상의 목적에 맞게 선택적으로 자료를 선택하여 만드니 확신은 하지 못합니다. 그 당시 미국이 정신 팔려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를 어떻게 막아내느냐였으니까요.


덧붙임.
일왕이라 안쓰고 내내 히로히토라고 이름을 불렀는데 기분나쁘겠다 싶어 표현을 고쳤습니다. 히로히토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부를 수 없는 그 이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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