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동물들의 겨울나기』를 『핀치의 부리』보다 먼저 읽었다고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그건 기억이고 실제로는 『동물들의 겨울나기』를 읽지 않았거나 읽다가 도로 반납한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었거든요.

제목에도 적었듯이 이 책은 겨울철 동물들의 겨울 보내는 방법에 대하여 다루고 있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연구 논문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책 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금관상모솔새를 예로 들면, 금관상모솔새는 몸집이 작은 텃새다보니 겨울을 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몸집이 작을 수록 열은 빨리 도망가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겨울철에는 에너지원이 많지 않지요. 게다가 밤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 작은 몸집에서 열을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라는 내용을 앞에서 차근차근 기술한 뒤에 이 새들을 숲속에서 관찰하여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추적합니다. 겨울철 숲에서 보이는 거의 모든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새의 주 식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밤을 보내는지, 겨울잠을 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어떤지, 겨울을 대비하여 다른 계절은 어떻게 보내는지 등등에 대해 어렵지 않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 책을 읽는 동안 별로 졸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면 글도 잘 썼고 번역도 괜찮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읽고 있노라면 연구자들이 참 안된게....ㄱ-;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어떻게 화장실을 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곰의 피를 채취하려 합니다. 그런데 곰은 얕은 잠을 잡니다. 그러니 맨몸으로 피를 뽑으려 하다가는 연구자가 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진정재를 놓아 잠을 재운 다음 피를 뽑는 방법을 씁니다. 그 덕분에 곰의 혈액에서 요소(암모니아)가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를 밝힐 수 있었지요. 이것도 동면의 기술을 밝히는데는 굉장히 유용한 연구가 될 것이고요.
그러고 보니 비글을 데리고 숲에 갔다가 곰 둥지에 비글이 떨어졌는데, 빠져나오려 하니까 곰이 자기 새끼인줄 알고 끌어 당겨 놓질 않더랍니다. 그래서 진정제를 쏘고 나서야 비글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본인의 체험담도 있군요.

새의 먹이를 확인하기 위해, 새가 자주 드나드는 나무를 두들깁니다. 거기서 여러 벌레가 나오는데, 유충만 가지고는 무슨 벌레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몇 번의 실패 끝에 우화를 시켜 나방의 종을 확인합니다. 실패를 세 번인가 했으니 햇수로는 3년인 셈인가요. 결국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 모든 것은 연구 논문 감...;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가 쉽게 읽히진 않습니다. 겨울철의 동물 생태는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많이 인용했고, 그렇다는 것은 그 많은 논문을 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워낙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다보니 곤충, 조류, 동물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논문을 다방면으로 읽었더군요. 이야아아. 관찰도 중요하지만 그 바탕에는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깔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나저나 어떤 장면은 읽다가 정말로 폭소를 터뜨렸는데...


p.301
(생략)
그러다가 2000년 2월 23일에 그 미스터리가 풀렸다. 80-100마리 정도 되는 황여새가(이곳에서는 겨울에만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덩굴월귤 관목 숲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사탕단풍나무에 내려앉았다. 한 마리가 덩굴월귤로 내려갔고 일부가 그 뒤를 따르더니, 전체가 다 함께 무리를 지어 열매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렇게 30분이 지나자 가지가 늘어지도록 주렁주렁 열렸던 열매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이하 생략)


이 장면을 읽고 이걸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하하하.;ㅂ;


같은 황여새겠지요? -ㅂ-;;;;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구사하는 무시무시한 새입니다. 출처는 『토리빵』4권. 홍여새(히렌쟈)가 먼저 나오고 황여새는 그 다음에 나오더군요. 철새랍니다.


베른트 하인리히. 『동물들의 겨울나기』, 강수정 옮김. 에코리브르, 2003, 16500원.


생태관찰이나 동물들의 행동이 궁금하신 분, 자연과학 및 동물학에서는 어떻게 연구하는지 궁금하시는 분들은 찾아보시어요. 『핀치의 부리』도 같이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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