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감상은 그 날 그날의 감정 상태에 따라 갈리는군요. 지금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으니 아무래도 박한 평가가 나갈 수 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가 재미없는 영상을 지지부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니 순환오류인지도 모르겠네요.

박한 평가를 유도한 드라마는 『자상한 시간』. 원제는 やさしい時間 인데 1화에 등장한 내용을 보면 자상하다기 보다는 상냥하다는 단어가 어울립니다. 대강 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절로 やさしい 기분(인지 분위기인지)이 된다는 대목이 있었거든요. 제목도 거기서 따온듯합니다.

원래 일본 드라마는 잘 안 봅니다. 드라마 취향이 NCIS로 맞춰져 그런지 일본 드라마는 뭔가 미적지근하네요. 그래도 이 드라마는 홋카이도-특히 비에이와 후라노의 풍경이 잘 나온다 하여 보았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은 아니었고, 그나마 홋카이도 다운 풍경을 제대로 음미한 것은 8화였나, 눈보라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우와, 진짜 대단하더라고요. 시베리아의 블리자드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그 근처는 됩니다.;

한창 보고 있을 때 ㄹ의 평가를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끝까지 다 본 것에 대한 보람보다는, 내가 왜 이런 드라마를 여기까지 봐야해라며 화를 내게 된다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ㄹ의 평가를 볼 때는 몰랐는데 다 보고 나니 은근 살심(-_-)이 들더군요. 중간중간 빨리 감아가며 봤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다 봤으면 자괴감이 들었을 겁니다. 하하하.

이유는 간단합니다. 드라마 대사도 대체적으로 너무 '극적'이예요.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방식이, 특히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의 대사들이 문어체입니다. 마치 연극무대에서 독백을 하며 대사를 내뱉는 것 같더라고요. 말과 말 사이의 텀도 그렇고 말하는 내용도 그렇고요. 거기에 주인공 세 사람 중 두 사람에게 감정 이입이 전혀 안되다 보니 다른 한 사람마저도 나중에는 싫어집니다. 이 드라마는 아빠와 아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그 사이에 이런 저런 불화를 일으키는 여자아이 하나가 있습니다. 나중에 G에게 듣고 알았지만, 드라마 보는 내내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보게 되었던 이 여자아이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주인공이랍니다. 이번에 마스터님 이글루에서 그 애가 나온 포스터를 보고는 허허허 웃기만 했지요.(맨 위의 포스터는 아들인 니노미야가, 맨 아래 포스터는 이 여자아이-마사미가 있었습니다)
여주인공인 아즈는 외곬수 성격에, '그런 사건'을 겪고 나서는 자존감이 지나치게 떨어지고 자학하고 사람의 말(주로 어른)을 듣지 않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전체 70%가 지나갈 때까지의 트러블 메이커로 온갖 사건을 일으킵니다. 하하하. 정말 싫어요.-_-;
남주인공인 타쿠는 그나마 낫지만, 예전에 사고 친 경력이 있어 조금은 소심한 성격입니다. 문제는 이 사고인데, 저는 다 보고 나서도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당위가 안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은 앞 뒤 안 맞는 생각을 자주 한다지만-저는 지금도 그렇습니다.OTL-묘하게 앞 뒤 안 맞고 사고치고..-_- 여튼 이상합니다, 이상해요. 드라마 장면에도 앞 뒤가 안 맞는 곳이 몇 군데 떠올랐고요.
메인 주인공인 유키치는 '카페에 이런 마스터가 있으면 단골합니다'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아..;ㅂ; 멋져요.;ㅂ; 하지만 더 멋진 분이 있으니 타쿠의 스승인 로쿠. 이런 터프한 아저씨(할아버지)도 좋습니다. 이 두 인물이 없었다면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유키치는 막판-11화에서 성격이 바뀐 것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대면신이 정말로 마음에 안 들어서, '이걸 보기 위해 이 드라마를 여기까지 봤는가!'라며 화냈습니다.-_-

홋카이도의 풍경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조연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중심 연애노선은 정말로 취향에 안 맞아서 나올 때마다 빨리 감았습니다. 최종 결론은 추천할만한 드라마는 그다지 아니라는 점.;


타쿠에 대한 호감이 떨어진 것은 드라마 보던 도중 G에게서, '드라마 촬영 후 남녀 주인공이 사귀었다. 그러다가 몇 년 뒤 깨졌다. 그 이유가 니노미야의 외도였다'라는 걸 들었기 때문입니다. 외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둘이 동거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바람이 아니라 외도라고 해도 틀리진 않다고 봅니다만. 여튼 그 때문에 호감도가 확 떨어졌습니다.

한줄 결론: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으며 적어도 내게는 맞지 않았음.


이걸로 드라마 감상은 끝! 아래는 최근에 읽은 책 두 권입니다.



위로의 레시피는 표지가 맛있어서 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대강 훑어보고는 미진하다 싶었지요. 그 느낌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제 입맛에 안 맞는 책입니다.-ㅁ-;

황경신씨의 책은 여러번 찾아보았는데 그 때마다 묘한 맛이 돕니다. 외려 PAPER에서 연재하던 때의-여기 실린 글 중에 PAPER에서 본 것도 있습니다. 카레이야기-글맛이 더 좋았다고 기억합니다. 모아서 보는 것과 다른 글과 섞여 보는 것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뒷부분에 있는 소설과 수필의 경계에 있는 글들은 정말로 제게 안 맞더라고요.;
다만 386세대라면 그 당시 대학다니면서 먹었던, 추억에 젖은 음식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련하게 옛 기억을 되살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386도 아니고 술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술마신 기억도 없고-이건 트라우마 때문-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하며 놀던 귀가파였기 때문에 맞아 들어가는 기억이 없네요. 내륙 출신이라 바닷가 음식에 대한 기억도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공선옥씨의 『행복한 만찬』에 더 공감하는 걸겁니다. 세대는 많이 차이나지만 부모님의 어렸을 적 이야기와, 제 경험이 혼재되어 여러 기억을 떠올렸거든요.

한줄 결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세대가 같다면 공감할 가능성도 높겠지요.-ㅂ-



『안나리사의 가족』은 사진에 낚여 보았습니다.-ㅁ-
핀란드 출신으로,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그것도 양평의 한적한 마을에 사는 안나리사의 이야기입니다. 글을 쓴 사람은 남편이고 사진도 남편 혹은 본인이 찍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체적으로 무난무난한 이야기인데 글이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아내가 쓴 글을 번역한 것도 있고 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애들의 사진이나, 유리 공예 사진 등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기에 핀란드에서의 모습도. 북구유럽의 이야기, 아이 키우기, 집 꾸미기 등의 이야기가 쏠쏠하더군요. 티이타님이 보시면 마음에 들어하실 것이 좀 있을 듯.^^;

양평도 춥다고 알고 있는데 난방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털실양말도 그렇고 뜨거운 물통(탕파)으로도 충분하다네요. 아마 집 공간이 넓어 전체 난방 돌리기가 쉽지 않아 그런건가 싶은데, 워낙 추운 지방에서 살다온 부부이니 어쩌면 이정도 추위는 괜찮은지도 모르죠.
책 말미에 핀란드 여행기가 있습니다. 딸 둘과 아내가 핀란드 친정에 다녀온 내용인데, 아이들의 이모나 외숙부가 나이차이가 얼마 안나니 재미있겠더라고요. 막내 이모는 큰딸이랑 두 살 차이랍니다.-ㅁ-; 그러니 그냥 놀이친구인셈..;
솔직히 부럽기도 하고, 언젠가는..이라고 기약도 해봅니다.'ㅂ'

한줄 평가: 글이 2% 부족하지만 읽고난 느낌은 괜찮았음. 핀란드 하악하악!(...)



황경신. 『위로의 레시피』, 권윤주 그림. 모요사, 2011, 13000원
홍성환. 『안나리사의 가족』. 시드페이퍼, 2011,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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