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를 둘러보다가 이즈미 교카의 단편집이 보이길래 집어 들었습니다. 이즈미 교카는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한국에 소개된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작가의 이름을 들은 것은 하쓰 아키코의 단편집에서였습니다. 옛날 대원에서 냈던 하쓰 아키코-그 때는 하츠 아키코라 표기했습니다-의 단편집 중에 이즈미 교카의 단편을 소재로 한 것이 몇 편 있었습니다. 모란 등롱 같은 건 아마 전설을 차용했을 테지만, 산속 호수의 주인과 제물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즈미 교카의 단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예 하쓰 아키코 원화 전시회 때는 이즈미 교카의 단편과 관련된 것을 같이 모아 두었더군요.(링크)

이 책은 두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제목에 표기한 「고야산 스님」, 「초롱불 노래」라는 이야기인데, 「고야산 스님」은 이즈미 교카라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 그대로입니다. 괴기, 기이한 이야기, 설화. 그런 느낌의 이야기더군요.
「초롱불 노래」는 그와는 다릅니다. 어, 이전에 『외과실』에 실린 표제작 「외과실」이랑 조금 닮았어요. 하지만 그보다는 더 극劇적입니다. 이런 느낌의 이야기는 종종 일제시대의 변사풍(!) 소설에서 보는 것 같습니다.

「고야산 스님」은 사카구치 안고나, 일본 괴기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취향에 맞을 겁니다. 이것도 극중 극, 다시 말해 누군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동행자에게 말하는 구조입니다. 스님이 산길을 잘못 들었다가 하마터면 홀릴뻔한 이야기지요.
「초롱불 노래」는 조금 이상한 할아버지 두 사람에서 시작해서 같은 시간, 비슷한 장소에 있는 어떤 떠돌이 악공의 시선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그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고백으로 넘어갑니다. 거기서 고백과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할아버지들의 진짜 모습과 거기서 과거를 고백하는 어느 유녀遊女의 술회로 바뀌지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하나로 겹칩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의 철 없는 것 같은 모습에 투덜대며 보았는데, 읽어갈 수록 절묘하게 배치해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걸 보고 감탄했습니다. 역시 이즈미 교카예요.;;;


이즈미 교카. 『고야산 스님/초롱불 노래』, 임태균 옮김. 문학동네, 2010, 10500원.

번역은 나쁘지 않았는데 가끔 지나치게 친절한 주석이 눈에 걸렸습니다.-ㅁ-


이즈미 교카, <외과실>, 생각의나무, 2007, 9800원


가끔 묘하게, 우연히, 특정 이름이나 단어를 계속적으로 만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즈미 교카의 이름은 7월 말의 사천여행 때 처음 들었습니다. 카시아파님이 "하츠 아키코는 이즈미 교카의 천수각이야기 때문에 샀다"고 하면서 처음 이름을 들었습니다. 대원에서 나온 하츠 아키코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 하던 도중 나왔고, 그 시리즈는 대체적으로 일본색이 강하면서도 기담이나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였기에 대강 그런 느낌인가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천수각 이야기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연못 옆의 종지기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시 떠올려보니 그게 아니라 아름다운 요괴들이 등장하고 매를 부리는 젊은 사무라이(종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나봅니다. 집에는 그 시리즈가 없어서 확인해볼 길이 없군요. 하여간 그 천수각 이야기가 하츠 아키코에 의해 만화로 그려졌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며칠 뒤, 도서관에 갔다가 외과실이라는 책을 발견합니다. 작가가 이즈미 교카. 이전에 이름도 들어봤으니 호기심에 집어 들었다가 내용이 어떨까 싶어 조금 망설였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작가의 연보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니 외과실이 외과의사(...) 타입의 공포소설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나왔던 해부 관련 공포영화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호기심이 이겨서 책을 빌려 왔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읽고 나서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천수각 이야기와도 닮은, 짧지만 강렬한 분위기의 일본색 풍부한 괴담입니다. 생각의나무에서 나온 <<기담문학 고딕총서>>인 이유를 알만합니다.
(그나저나, 생각의 나무에서 이런 시리즈도 내는군요.'ㅂ';)

그 뒤에 이즈미 교카의 이름을 어디서 봤냐 하면, 온다 리쿠의 <호텔 정원에서 생긴일>에서 였습니다.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묘사하면서 이즈미 교카의 이름을 잠깐 언급합니다. <초콜릿 코스모스>를 보고, 양쪽의 등장인물이 겹친다는 이야기에 다시 꺼내 들어 읽었는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 이름이 턱 눈에 들어온겁니다. 하하하. 짧은 시간 동안에 이름을 세 번 만났군요.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읽을만합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것은 <되돌이 고개>입니다. 혹시 <내일의 왕님>이라는 옛날 만화 아시는 분이 있을까요. 생협분들이라면 금방 아실텐데, 그 <내일의 왕님>에서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연극이 <되돌이 고개>였다고 기억합니다. 얼굴만 잘생긴 배우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남자주인공(아마도?)이 선택한 연극입니다. 점점 젊어지는 할머니를 연기하기 위해 꽤 애쓰고, 결국 연기파배우로도 인정받는 내용이었을건데, 그 <되돌이 고개>가 떠올랐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 연극도 이즈미 교카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느낌이 닮아 있습니다. 이 책도 지금은 절판이라 만화를 찾아볼 수없으니 진짜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외과실> 덕분에 이즈미 교카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했고 덩달아 <내일의 왕님>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왕 생각난 김에 헌책으로라도 구해볼까요.'ㅂ';
(더 덧붙이자면 거의 번역이 안나온 이즈미 교카의 책을 원서로라도 구해볼까 하고 있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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