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데니어. 「베이트릭스 포터의 집」. 갈라파고스, 2010, 15000원

제목에 낚여 산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만족했습니다.'ㅂ'

베아트릭스 포터는 피터 래빗의 창조자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전개자로 더 기억하고 있습니다. 존 러스킨을 비롯한 당대의 유명인들에게 감화를 받아 자연보호와 중요 유산들, 공예들, 전통들의 계승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걸 실천한 사람이니까요. 보통 그렇게 감화를 받으면 받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피터 래빗 시리즈가 생각보다 잘 팔려서 그걸 통한 수익으로 가능했지요. 덕분에 지금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영국의 호수지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엉망진창으로 파괴되지 않았을까요.

이 책에서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꿈꾸었던 '나의 집'을 이룬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글과 그림으로 남긴 '꿈의 집'을 어른이 되어 차근차근 꾸며 나가는데, 이건 피터 래빗의 작가로서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집이었던 모양입니다. 실제 살았던 집은 따로 있다더군요. 사후에는 그쪽 가구들을 가져와서 더 꾸몄던 모양입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19세기 한국 고가구들을 사다가 한옥에 실제 사는 것처럼 꾸몄달까? 오래된 집을 한채 사서 여기저기 고쳐가며 방 하나하나를 완성해가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조각상 하나, 가구 하나도 그냥 들어온 것이 아니더군요. 친척에게서 받은 것이나 친구에게서 받은 것, 어디 경매에서 구한 것, 벼룩시장에서 찾은 것까지 다양합니다. 그 당시에도 고가구였고 빅토리안 시대의 가구들이었으니, 지금 수준에서 보면 영국 안티크지요.^^;

집을 꾸밀 때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나와 있는데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보여줍니다. 피터 래빗의 출판과정과 그 판매 상황도 나오고 주변의 집을 어떻게 매입했는지도 보여주고요. 결혼 사정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있었는테 미스 포터를 보신 분이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년에는 피터 래빗 시리즈를 더 그리기 보다는 농부로 살아가는데 만족했나 봅니다. 특히 지역에 독특한 품종의 양이 있어서 그걸 되살려 내고 나중엔 출품까지 했다니까요.-ㅁ- 그 협회장에도 선출되었지만 취임식 전에 사망해서 공식 인정(?)은 못 받나봅니다.


하여간 사진이 풍부하기도 한데,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두 사람이 바로 타샤 튜더와 윌리엄 모리스입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같은 시대 사람이지만 타샤 튜더는 그보다 더 뒤의 사람이지요. 성이 튜더라 왠지 이쪽이 더 오래된 사람 같지만 말입니다.(튜~더스~) 이광주 씨의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와도 비슷한 구성이기도 하고, 월북에서 나온 타샤 튜더 시리즈도 비슷한 느낌이니까요. 타샤 튜더 시리즈는 뭐랄까, 코스프레 + 다큐멘터리 느낌?; 인형 놀이의 느낌도 조금 받긴 합니다만...; 타샤 튜더는 지금 시대 사람이지만 혼자만 저 멀리 역사속 생활을 끄집어 내어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현실감이 덜하다는 느낌입니다. 유명한 작가라서 용인된 것이지 보통의 할머니였다면 왠지,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곳에 등장할 것 같은...ㄱ- 뭐, 시대를 100년 쯤 늦게 태어난거죠.;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와 타샤 튜더 시리즈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합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빅토리아 시대의 고가구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볼만 하고요. 피터 래빗을 좋아하신다면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보실 수 있으니 재미있을 겁니다.


박홍규, <윌리엄 모리스 평전>, 개마고원, 2007

출간 직후에 보고 나서 언젠가 꼭 읽겠다고 결심한 책을 이제야 보았습니다. 구입할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도서관에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잽싸게 가입한 후 빌려왔지요.

그리고는 이 책을 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제 취향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아니 굉장히 많이 멀리 떨어진 책입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산만하더군요. 뭐, 읽은 사람이 좀 산만한 상태였던 것도 이유는 이유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제 입장에서는 너무나 유토피아적인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라서요. 사회주의자였다는 것은 대강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이쯤 되면 "당신, 너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어!"라고 절규하고 싶은 수준인거죠. 아마도 그의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것은-이 책에서 많이 과장한 건지 어떤 건지 사회주의쪽에서는 꽤나 유명한 모양인데 말입니다-그런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노동자에 의한 일치 단결, 혁명보다는 중세시대(14세기경)와도 같은 길드를 통한 노동계급의 성장을 바란달까요. 공장을 거부하고 중세시대의 길드를 통한 수공예 제작, 그리고 길드 안에서의 끈끈한 유대를 꿈꾸는 겁니다. 하지만 중세의 길드는 그렇게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지요. 수평적인 느낌의 길드가 아니라 수직적인 도제제도로 뒷받침 되는, 그리고 충분히 상하 관계로 인한 "착취"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었지요. 저는 인간이 인간인 이상, 저것은 꿈의 세계라고 봅니다. 거기에 윌리엄 모리스의 회사에서도 저런 길드적인 수공예 제작은 불가능했지요. 그러니 꿈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요.

그의 사생활이 (겉으로 보기에는. 속은 어땠을지 제가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굉장히 불행했다는 것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아내와의 불화는 알고 있었지만 큰딸의 지병과 작은 딸의 이혼문제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결국 그는 후손이 끊어진 셈이지요. 그의 형제들이 낳은 다른 아이들을 밴다면...

윌리엄 모리스는 그 자신이 너무도 순수했기에 인간세상에서 오래 살지 못한게 아니었을까요. 원조 호빗(...)이라는 생각도 드는 그의 모습이 아련해보입니다.
(톨킨이 윌리엄 모리스의 제자였다는 이야기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진짜, 호빗의 모델은 윌리엄 모리스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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