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어 쓰는 책은 대체적으로 마음에 덜 와닿은 책입니다. 그런 거예요...-ㅂ-;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지나치게 직설적이라 읽기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뭐, 제가 속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주제는 제게는 많이 버겁더랍니다. 먹는 것이나 애완동물 관련은 재미있게 보았는데 속옷의 역사를 아주 직설적으로 파헤치는 이 책을 보고 있노라니 막판에는 두 손 들고 휙휙 장을 넘기게 됩니다.

전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팬티가 먼저? 바지가 먼저?'이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러시아와 서양과 일본의 속옷 역사와 차이입니다. 문제는 그 속옷의 역사가 화장실 예의의 문화적 차이와도 연결된다는 겁니다. 아니, 가장 쇼크였던 것은 역시 러시아에서는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지 않았고 팬티도 비교적 최근에 입기 시작했다라는 겁니다. 셔츠에 해당하는 겉옷 자락 끝부분이 진한 노랑 혹은 갈색으로 물들었다는데서 두 손 들었습니다. 거기에 훈도시 이야기까지 넘어가면 더더욱. 허허허.;ㅂ;

하지만 재미있었던 것은 생리용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도시대의 생리용품이 어땠을 거라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한국은 어땠나 싶더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조선시대 말입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자료는 거의 없겠지만 조선이라면 있지 않을까요? 가랑이가 훤했던 에도의 속옷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잠방이라는 것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속곳이라 부르지요. 이전에 배웠던 걸 떠올리면 두 세 개 정도는 겹쳐 입었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게 고정형은 아니고 벙벙한 바지였으니까 기저귀 타입의 생리대는 고정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런 종류의 책은 본적이 없으니 학술 논문으로라도 있나 찾아볼 생각인데 없을 것 같아요.ㄱ-; 점잖빼는 학자들 성격에 이런 적나라한 이야기는 안 나올 것 같아...;


다른 책 두 권은 그냥 읽고 넘어갔습니다.
『세상의 모든 넛츠 레시피』는 음식만드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견과류를 이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모아 나열한 건데, 제 취향은 없었습니다.
『계절의 선물』도 마찬가지. 여기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맨 앞에 나온 비스코티라, 이건 제가 집에서 쓰던 레시피랑 비슷하더군요. 뭐, 제가 만들면 기름이 한 방울도 안 들어가긴 합니다만 이쯤되면 진짜 비스코티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괴식이 나오긴 하지요. 하하하;


요네하라 마리. 『팬티 인문학』, 노재명 옮김. 마음산책, 2010, 12000원.
닥터넛츠. 『세상의 모든 넛츠 레시피』. 영진미디어, 2013,15000원.
문인영. 『계절의 선물』. 북하우스엔. 2012, 12800원.

원래는 본문을 참고하면서 적으려 했는데, 책을 홀랑 반납했네요. 출처는 아래에 따로 적습니다.
봄하고 아주 잘 어울리는 유쾌한 이야기라 말이지요.

어느 해인가, 요네하라씨는 실연했습니다. 그리고는 방에 틀어박혀 내내 울뿐,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지요. 거기에 무시무시한 독감까지 찾아왔습니다. 휴지를 펑펑 써가며 눈물 콧물 닦아 내던 와중에 창 밖을 보니 창 밖에 휴지가 날아가 있더랍니다. 여기 관리인이 상당히 엄격한지라 휴지는 모두 잘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창 밖 나무에 휴지가 걸려 있는 거죠. 흰 휴지인데 매달려 있는 모습이 얼핏 봐서는 축제나 행사 때 매달아두는 종이 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보고 있는 와중에 동료 통역사가 병문안을 옵니다. 손에는 분홍색 꽃이 핀 복숭아 나무 가지가 들려 있었다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

"복숭아꽃을 들고 왔는데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서 … (하략)"

순간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작가는 속으로 마구 웃으며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글을 읽은 다음부터 내내 목련을 볼 때마다 크*넥스~ 이러고 있다는거죠. 하하하;;;


요네하라 마리. 『문화편력기』, 조영렬 옮김. 마음산책, 2009, 12000원

요네하라 마리씨의 책 답게 세계의 문화를 잡다하게 다루며-그 때문에 조금 맥락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가볍게 읽기에 괜찮네요./ㅅ/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아마 티이타님 취향에 잘 맞을 거예요.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
앞서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한 권 보았는데,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식견문록>쪽이 먼저입니다. 이 책을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보다 늦게 주문한 다른 책들은 다 들어왔는데도 들어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다른 책을 먼저 본 거죠. 그러다가 포기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미식견문록>이 들어왔습니다.

요네하라 마리는 이력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도쿄 출생이지만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동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면서 언어의 영역이 넓어집니다. 러시아어를 통역하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언어를 보면 다른 언어에도 꽤 재능이 있던 모양입니다. 본인이 몇 개국어를 하는지 정확히 이야기 하진 않았거든요.
어쨌건 언어를 다양하게 하면 읽을 수 있는 책의 영역이 훨씬 더 넓어집니다. 그러니 똑같은 소재로 잡학을 늘어 놓더라도 더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미식견문록은> 그런 잡다한 이야기의 모음집입니다.식재료와 음식, 전통음식, 역사 등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섞어서 글을 쓰는데, 대개는 앞서 나온 이야기의 반전이 뒤에 등장합니다. 그렇게 뒤통수를 맞은 이야기 중 하나가 보드카와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가 보드카의 주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은 아니라고 합니다. 보드카에 대해 연구한 것은 맞지만 보드카의 도수에 그렇게 많이 관여한 것은 아니었다나요.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식재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가볍게 읽어볼만하지만 가벼운 이야기 수준이기 때문에 가격을 생각하면 추천하기 조금 망설여집니다. 에세이인지라 아주 깊이 있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로쿰, 터키젤리, 터키시 딜라이트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꼭 권하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할바라고 하는 전통과자에 대한 이야기가 죽 이어지는데 보고 있자면 절로 혈당치가 올라가면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입니다. 어렸을 적, 친구에게 얻어 먹은 터키꿀엿에 대한 환상 때문에 이것을 다시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궁금증에 대한 해결을 읽으면 무릎을 탁 침과 동시에 이란으로 가는 항공편을 찾아보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충동은 충동대로 놔두고 실제 결제는 하지 말아야겠지만 말입니다. 첫비행님이 챙겨주신 로쿰도 떠오르면서 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후후후.


원래대로라면 주말에 읽은 다른 책들도 몰아서 같이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미식견문록 감상이 길어지면서 따로 뺐습니다.'ㅂ'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이현진, 마음산책, 2009, 12000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