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입니다.
오후 9시 30분이면 제게는 충분히 한밤중입니다. 취침시간이 10시반이니 그럴만도 합니다. 미스터 피자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에 갈 일이 있어 물건을 사들고 나오는데 뭔가 이상한게 눈 앞에 보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놀라서 쳐다보고 있습니다.

무장군인.


어, 그렇다고 딱 잘라 말하기엔 미묘한 부분이 있었지만 일단 총을 어깨에 메고 열을 지어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쳐다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위장복 상의 앞을 완전히 여미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그 사이로는 반팔티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들 철모를 쓰고 총을 가지고는 있지만 등 뒤에 배낭은 없습니다. 완전 군장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500원짜리 명찰케이스에 빨강 종이를 끼워 가슴에 달랑달랑 달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2중대 운운하고 있군요. 그러니 예비군 훈련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한밤중의 군사훈련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고 장소가 대학로다보니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어머니는 주간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모아 야간 예비군 훈련을 시키나보다라고 하던데 참 미묘합니다. 왜 하필이면 대학로에서 저렇게 무장(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로 동성고등학교에서 4호선 방향으로 걸어가냐는 겁니까. 게다가 총과 철모는 반납해야할건데, 그렇다면 집합지는 따로 있겠지요?


처음 그 무리를 보았을 때 기분이 나빴고 급기야는 분개했습니다. 저는 70년대 생이지만 한 번도 그런 격렬한 시위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지방에서 살고 있었던데다 제가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그런 시위도 잠잠해졌거든요. 졸업동기인 남자 선배들은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실감이 안났지요. 하지만 저도 대강은 압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제게 대학로에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은 불쾌한 기억을 불러 일으킵니다. 거기에 행선지는 추정컨대 마로니에 공원. 보통 예비군은 시설 보호 등을 맡고 있는 걸고 아는데-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지만; 추측으로..;-대학로 중심가에 그렇게 예비군의 보호를 받을만한 시설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은 그쪽 방향이 아니지요. 길 건너편입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병원에 접근하려면 그렇게 정문방향으로 가는 것보다는 후문이 사람들의 통행이 적어 훈련에 용이할겁니다. 전경이야 자주 오는데다 언젠가는 창경궁과 서울대학교 병원 후문 쪽에 전경버스 서른 두 대가 서 있는 것도 보았으니 그러려니 싶습니다. 하지만 예비군이라 한들 군복 입은 사람들은 다릅니다. 옛 기억을 불러 일으키니까요. 거기에 총을 들고 있다면 더더욱.


연상은 저정도에서 끝났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로 넘어가도 된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처음 그 사람들을 보고 나서 10분 정도 지나기까지의 불쾌감과 분노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덕분에 오늘 아침은 기분이 나쁩니다.(먼산)


덧붙임.
근데 정체가 뭘까요.
- 밀리터리 매니아? 그런 행진을 요즘 상황에서 그 밤중에 허락할리 없고.
- 예비군? 그 훈련 계획 세운 사람은 싸움쟁이인겁니까. 왠지 논란 거리를 만들고 싶다믄 포~스가 풀풀.
- 북한군? .... 수방사는 뭐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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