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는 잊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정보를 보고, 도서관에 신청하려 했더니 이미 주문 상태더라라는 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경로로 받은 책인데 취향이 확연히 갈리더군요. 저는 꽤 재미있게 보았는데 G는 이게 뭐냐며 투덜거리더랍니다.-ㅂ-;


시릴 헤어라는 작가는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확실히 법적인 인간이라 그런지 문제나 분위기나 트릭마저도 영국적이며 법적입니다. 정말로요. 그렇기 때문에 피가 난무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심심하고 무뚝뚝하며 재미없는 이야기라 생각할 것이고, 영국식 유머나, 2차 대전 이후의 영국 모습은 안 맞는다 싶으시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일단 B님이나 C님은 그럭저럭 무난하게 보지 않으실까 하네요. 같이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윔지 경, 브라운 신부, 애거서 크리스티와 비교하기는 쉽지 않고, 저는 오히려 카랑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윔지 경의 이야기처럼 복잡하거나 이야기가 잘 안풀리는 분위기는 없고, 브라운 신부님의 사건처럼 사람의 맹점과 심리를 파고들어 고찰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로맨스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애거서 크리스티와는 조금 분위기가 닮았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여, 영락한 어느 시골의 영주관에서 벌어진 크리스마스 만찬이 배경이니까요.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참, 이렇게 물과 기름을 한꺼번에 모아 놓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니까요. 한창 이름을 날리는 정치가, 파시스트이자 유대인 혐오주의자인 청년, 청년을 좋아하는 귀족 아가씨, 정치가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물의 아내. 거기에 불청객이 아마도 두 셋쯤...?
탐정역을 누가 할지 보고 있었는데 예상하던 인물이 맡았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쿨하게, 이건 영국식 살인입니다라고 말하는 학자님. 아, 이런 성격 참 좋다니까요. 후후후후후.



하지만 이 소설이 흡족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제가 정말로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이 하나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버릇없는 아가씨가 하나 있어요. 어떻게 저런 아버지 밑에서 저런 딸이 나온 건지. 하기야 그런 성격이니 그 사람과도 살았던 거라 생각합니다만.-_-; 파시스트 청년이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런 여자도 질색입니다.


손자가 부모들 말고, 할아버지들을 닮았으면 좋겠군요.-_-


시릴 헤어. 『영국식 살인』, 이경아 옮김. 엘릭시르, 2013, 11800원.

2차대전 후라고는 하지만 아직 영국의 전통적인 분위기는 살아 있습니다. 집사님이 배가 나온 중년 아저씨(혹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마르고 꼬장꼬장한 타입이었어도 좋았을텐데, 어느 쪽이건 멋진 집사님인 것은 확실합니다.+ㅆ+


리뷰는 쓰지 않겠지만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버트램 호텔에서』의 앞부분에서도 그런 영국적인 옛 분위기는 맛볼 수 있습니다. 연이어 보고 나니 꽤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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