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면 굉장히 딱딱할 것 같은데, 절대 아닙니다. 과학 전반을 좋아하신다면 추천하고, 그림을 좋아하신다면 더 추천합니다. 과학자라고는 하지만 이게 인류학자의 글도 있으니 과학적 연구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라 해도 틀리진 않습니다. 애초에 이 책의 원제는 Field Notes on science & Naure입니다. 이쪽이 더 빨리 다가오는 분도 있겠네요. 이 책은 필드 노트 작성법을 다룬 책입니다.

필드 노트의 존재를 인식한 것도 비교적 최근입니다. 『핀치의 부리』에서 기록하는 방법에 대하여 조금 듣긴 했고, 다른 경로로 필드 노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이렇게 구체적인 것은 처음입니다. 총 12명의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자들은 그만큼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필드 노트를 작성합니다. 노트는 물리적 형태가 노트인 사람도 있고, 아니면 카드인 경우도 있고, RDB-관계형 데이터베이스인 경우도 있습니다. 글 게재 순서는 동물학자, 동물행동학자, 조류학자, 생태학자, 고생물학자, 인류학자, 동물학자, 삽화가, 식물학자, 곤충학자, 생태학자, 생태학자 순입니다. 대체적으로 생태학자가 많지요. 생태학자라고 적긴 했는데 대학에서 생태학을 가르치는 학자의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읽었던 과학책들의 저자들도 모두 기록을 남겼으니 필드 노트가 있을 법한데 그 건 다 어디로 갔을까요?

고생물학자인 애나 케이 베렌스마이어의 필드 노트는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영구 보존된답니다. 아예 어떤 생태 조사단은 이전에 보관해왔던 생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00년 뒤의 상황을 비교 분석하기 위해 이전 노트를 참고해서 다시 노트를 작성했지요.(11장) 이런 필드 노트도 전부 보관된다는 겁니다.

이런 필드 노트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한 쪽은 그야말로 현장의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로저 키칭이 쓴 것처럼 그 날에 있었던 특기 사항을 기록하는 겁니다. 현장의 기록은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항을 기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기록은 남기지 않으며 연구 대상에 대한 스케치나 메모, 수치 등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서 사적인 기록도 남길 필요가 있겠지요. 같은 학문 분야라도 학자마다 필드 노트를 쓰는 방법이 제각각이다보니 필드 노트와 사적인 기록을 분리하고, 일지도 분리하는 경우가 있더랍니다. 필드 노트를 연구의 바탕으로 쓴다면 사적인 기록은 빠져야 할 것이고, 그것과 별개로 그날 그날의 연구단 전체 일지를 기록할 필요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중에 내가 다시 필드 노트를 훑어 본다면 필드 노트를 통해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그 날 그 날의 사적 기록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게 기억을 되살리는 방아쇠가 되니까요.


제니 켈러는 아예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도 자세히 보입니다. 에릭 그린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필드 노트 작성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방법을 구축하도록 합니다. 재미있는 건 에릭 그린은 그야말로 초보를 위한 작성법을 소개한다는 겁니다. 그게 맨 뒤에 실려 있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거죠.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걸 보고 직접 필드 노트-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관찰 일기를 쓰게 하려는 건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좋지요.
..
그 핑계 삼아 만년필을 구입한다든지, 색연필 같은 채색 도구를 꺼낸다든지.-ㅂ-;


필드 노트는 아닌데 관찰 일기로 꽤 흥미롭게 본 것 중에는 와치필드의 저자인 이케다 아키코도 있습니다. 같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그런지 제니 켈러-과학 일러스트레이터가 쓰는 도구와 상당 부분 겹치더군요. 그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보고 있는 동안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림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같이 오더군요. 거기에 평소 여행 가서 이것 저것 기록하는 것도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할까 싶기도 하고요. 하기야 요즘에는 작은 수첩을 가계부와 시간 적는 용도로 쓰고, 그 자세한 기록은 일기장에 적어 놓으니까요. 그리고 사진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나중에 블로그에 다시 정리하고요. 이렇게 하면 사진 기록까지 포함해서 4증으로 기록하는 건가요? 하지만 필드 노트 만큼 체계적이고 재미있는 기록은 아니지요. 그래서 이걸 조금 더 보강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것도 다 경험이니까요.+ㅆ+




에드워드 O. 윌슨 등.『과학자의 관찰노트: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12가지 방법』, 김병순 옮김. 휴먼사이언스(휴머니스트), 2013, 23000원.

가격이 비싸지만 절대 아깝지 않습니다. 전자책으로 있었다면 당장에 구입했을 책입니다. 하지만 종이책은 지금 보관할 공간이 없어요.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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