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카페붐이 일기 전, 그러니까 아직 카페 시장이 파란 바다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디자인하우스에서 책이 한 권 나왔지요. 하기야 그 시절도 이미 간당간당하게 색이 파랑에서 빨강으로 변하던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만, 그래도 그 시절에는 카페 만들기에 대한 책이 거의 없었지요.
그 모델이 되었던 것이 대학로의 카페 더테이블이고 그 이후에 홍대 b-hind가 생겼습니다. 비하인드가 생길 때는 아직 홍대 카페 골목이 홍대입구역 주변이었을 때고 이쪽은 덜했던 때였지요. 지금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픈 수준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이 드무니, 비하인드도 아주 오랜만에 갔지요.




카페라떼, 아이스카페라떼, 카푸치노에다가 아포가토를 주문하니 직원이 다시 한 번 주문을 확인하더군요. 인원은 셋인데 메뉴가 넷이라 그랬나봅니다. 하지만 이날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서 디저트 분이 부족했단 말입니다. 치즈케이크를 시킬 엄두도 내지 못하게, 본식을 많이 먹은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지요.





그래서 주문한 아포가토. 아이스크림 정도는 그래도 치즈케이크보다는 덜 부담이 됩니다. 달달쌉쌀한 것이 괜찮지만 당연하게 카페인이 과다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두통이 강화되더군요. 하하하.;ㅂ;


하지만 제일 먹어보고 싶은 프렌치 토스트는 미처 주문하지 못했으니 조만간 다시 방문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프렌치 토스트가 이런 종류가 아니었는데 좀 바뀌었더라고요. 가까운 시일 내에 노닥노닥 즐기다 올 생각입니다.

이날도 오늘처럼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것도 소나기 예보를 못 들었던 지라, 우산 없이 나가 있었지요. 비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는 합정역 근처 카페 거리에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팥빙수를 한다고 써붙인 어느 카페에 들어갔지요. 가격은 8500원이던가.



그릇은 롯데리아랑 비슷하지만 양은 훨씬 많습니다. 롯데리아 팥빙수에 분노한 이야기는 이 다음에 하고, 빙수 위에 아이스크림, 굵게 갈린 얼음에는 우유를 부었고, 그 위에 통조림 팥이지만 팥을 듬뿍 얹었습니다. 거기에 견과류랑 말린 과일, 빙수떡을 올렸네요.
가격을 생각하면 재료는 충실합니다. 하지만 팥빙수에 말린 과일이 들어가니 좀 미묘합니다.T-T; 말린 과일이 얼음이랑 만나 딱딱해진데다, 달콤 새콤한 맛이 팥빙수와는 따로 노는 것 같더군요. 역시 저는 팥빙수에는 견과류나 콘플레이크가 들어간게 좋습니다.-ㅠ- 아니면 아예 팥이랑 우유만 들어가거나?

빙수 다 먹고도 뒹굴거리다가 다른 카페를 찾아갈까 싶어 홍대 돌담길 근처에서 봐둔 카페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홍대부속여고였나, 거기 후문 바로 앞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작은 카페가 있다는 알림판을 보아둔 터였지요. 무엇보다 샤케라토와 아포가토가 있다는데 홀리지 않을 수가..-ㅠ- 아포가토가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아포가토(5천원)를 주문하니 사발같은 커다란 컵에 시리얼과 견과류(혹은 무슬리)를 뿌린 아이스크림이 나옵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한 샷. 호쾌하게 에스프레소를 붓고는 잽싸게 먹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다 녹기 전에 먹는 쪽이 맛있더라고요.>ㅅ<

같이 시킨 치즈케이크(아마도 3500원)는 무난한데, 검은아저씨 치즈케이크나 시노스 치즈케이크에 슈거파우더를 뿌린 것 같은 맛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시킨다면 아포가토만 더 시켜 먹겠습니다. 훗훗훗.

아포가토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갓 내린 에스프레소 한 샷을 부어 먹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달콤하면서도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쌉쌀한 에스프레소의 환상적인 조화가 티라미수 못지 않게 사람을 끌어 당깁니다. 티라미수보다 더 차가우면서도 격정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에 유사 아포가토라고 적었듯이 아포가토와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만든다고 할 것도 없지요.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에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코스트코에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세일하길래 한 통 사서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

과연, 집에 들어가 냉동고를 열어보니 하겐다즈 하프갤런이 들어 있습니다. 하프갤런이라면 1.89리터던가요. 상당히 큽니다. 하지만 이 아이스크림이 바닥을 드러내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집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아포가토를 해먹는 것이 귀결이라고 생각해서 그 주 주말에는 아포가토를 만들 준비를 했습니다. 준비할 것도 없이 에스프레소와 아이스크림만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예전에도 한 번 아포가토에 대한 글을 썼는데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아이스크림이 지나치게 빨리 녹습니다. 게다가 에스프레소는 커피가 많이 들어갑니다. 크레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럴바엔 차라리 진하게 내린 커피를 부어 마시겠다 싶었습니다. 집에는 빈스서울의 탄자니아 AAA가 있고요. 먼저 원두를 가늘게 갈아 가능한 진하게 내립니다. 핸드드립을 했는데 평소에는 칼리타로 했지만 이번엔 메리타를 썼습니다. 포트에 커피를 내려 놓고는 준비물을 한데 모아봅니다.



준비물입니다. 뒤에 보이는 것이 하겐다즈 하프갤런, 앞쪽에는 담아 먹을 컵, 앞쪽에 있는 것은 커피의 양을 가늠하기 위한 작은 컵, 티스푼, 커피. 왼쪽에 보이는 금속제 긴 티스푼은 아이스크림을 그릇에 퍼담기 위한 겁니다.




커피를 따릅니다. 이 때는 커피 내리고 시간이 좀 지났기 때문에 커피가 상당히 식어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멋지게 담고 싶었는데 실패. 냉동고에서 갓 꺼내서 돌돌 말린 아이스크림의 설정샷은 무리였습니다.



커피를 조금 붓습니다. 뜨거운 커피기 때문에 약간 시간을 두고 찍어도 그리 녹지 않습니다.



조금 섞으면 이런 모습. 완전히 섞으면 밀크커피가 되는거죠.-ㅂ-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리 뜨겁지 않은 커피를 부었고 이전에 아포가토 만들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없어서 그냥 포스팅 거리 하나 생겼다는셈치고 시도했는데요, 식은 커피라고 해도 실온의 커피니 아이스크림과는 충분히 온도차가 있습니다. 입에 들어갔을 때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서늘한 커피가 동시에 입안을 자극합니다. 거기에 진한 커피다보니 들어가는 순간 쌉쌀한 커피가 먼저 느껴지고 달콤한 뒷맛은 아이스크림이 녹으면서 나타납니다.

이게 맛있다고 자부하는 이유 하나는, 웬만하면 제가 만든 음식에 손대지 않는 G가 이건 먹었기 때문입니다.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다가 조금 해먹고는 '커피 얼마나 먹어도 돼?'라고 물었으니 말이죠. 결국 커피의 상당부분을 G가 해치웠습니다. 커피카페인에 민감해서 커피음료나 에스프레소 바리에이션 음료도 피하는 G가 이걸 먹다니! 상당히 고무되었습니다.

그러니 아포가토는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밖에서 안 먹고 집에서 챙겨먹는 것이 있으니, 지금까지는 티라미수만 목록에 있었는데 이젠 아포가토도 올라왔습니다. 맛있는 커피가 집에 준비되어 있다면 언제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좋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는 티라미수를 만들어 먹어야 합니다. 지난번에 사온 마스카포네 치즈의 유통기한이 지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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