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하는게 이런 연구도 속도와 시간운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직장이나 시험응시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운 중에 관운이 있지요. 연구에도 관운처럼 또다른 운이 따라붙는다 생각합니다. 치열한 노력이 있지만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 우리 팀보다 아주 조금 일찍 발표하면 그때까지의 운이 날아가니까요.


그 때문에 이 책은 굉장히 치열한 이야기로 읽혔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더니 아하하하하. 漁夫님 이글루에서 리뷰를 보고 도서관에 신청해서, 그래서 보게 된 책이더라고요. 일단 그 글을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이 재미있을 겁니다.:)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Svante Pääbo: http://fischer.egloos.com/6561094



원래 게놈 서열 밝히는데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특히 연구는 속도전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누가 더 빨리 결과를 발표하느냐가 누가 더 재료를 많이 확보하는가 또는 누가 더 효율적으로 재료를 사용하느냐에서 갈리더군요.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발표하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미토콘드리아 DNA까지는 괜찮았는데 전체 게놈을 발표하기에는 재료가 부족합니다. 그도 그런게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추출하는 것은 뼛속의 여러 재료들입니다. 그걸 쓰려면 뼈를 톱질해 갈라서 속에서 채취해야하는데, 이미 DNA가 다 분해되고 없는 경우도 많고 박테리아가 침투해서 그 DNA만 남아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인간의 DNA가 있고요. 뼈를 얻으러 갔다가 큐레이터의 행동을 보고 기암했던 건... 허허허허허허.


아, 저자는 고생물 DNA 분석으로 유명한 스반테 페보랍니다. 이름이 독특한데 스웨덴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직장은 독일에 있는 막스플랑크인류학연구소고 직위는 소장입니다.(...)



p.39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mtDNA 발표는 『셀』이었지요. 게놈 발표는 『사이언스』에다 했네요. 아무래도 같이 연구하는 박사후 연구원들은 연구가 널리 알려지길 원하니까요.


p.40

peer review를 동료검토라고 하나요? 제가 들었던 단어는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학계마다 번역하는게 다른지도 모릅니다.


p.54

시료를 찾은 곳이 독일민주공화국...ㄱ-; 통일전에는 그랬군요. 하기야 뒤에 나오지만 라이프치히 연구소에 자리잡은 것도 동서독의 균형 발전을 위해 일부러 각 지역에 연구소를 배분해서 그랬답니다.


p.77

그리고 얼마 뒤 잘나가는 진화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네이처』에서 우리 연구를 극찬한 것을 보고 기뻤다.

이 때의 연구는 캥거루쥐의 DNA 분석연구입니다. 박물관에 수집된 몇 십 년 전의 캥거루쥐와 그 당시의 캥거루쥐의 DNA를 비교해서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진 않았다고 밝힌 거고요. 그 자체보다는 DNA를 분석하는 기법이 중요했더군요.


p.96-97

(중략) 우리는 이에 대한 짧은 논문 한 편을 『네이처』에 발표했고, 이 논문에서 그 곰들이 먹은 식물의 DNA를 회수해 그들의 식생활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그 전까지는 야생동물의 DNA는 피에서만 얻었답니다. 그래서 마취총을 쏴서 피를 채취했다는데, 그 뒤에 이어진 문장에도 나오지만 야생동물학과 보존유전학에서 배설물 수집이 흔한 일이 되었답니다. 마취총을 쏘면 마취가 풀릴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조절하는 것도 어렵고 총맞는 동물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요. 이제는 채변 봉투를 들고 다니면 됩니다.(...)


p.140

과학에 대한 내 발표 외에, 독일에서 인류학이 했던 일을 감안할 때 막스플랑크협회가 그 주제에 손을 대도 될 것인지와 관련한 여러 비공식적인 논의들도 있었다.(중략) 우리는 역사를 잊어서도 안 되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해서도 안 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50년 전에 죽은 히틀러가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했다.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분석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했을 때 저런 논의가 있었답니다. 하지만 오히려 독일인이 아니었고 연구소의 상당수도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자유로웠다는 말도 하는군요. 히틀러가 우생학을 이용해 인종청소를 자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독일에서 인류학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앞서 漁夫님의 포스팅에도 나오지만 가족사와 개인사, 그러니까 사생활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본문도 재미있지만 이 사생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더군요. 이야아아아.... 북유럽 출신이라 이런 생각이 가능한가요. 이쯤되면 설마 공동육아를 하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분야가 달라 그런지 마크는 그 뒤에 출현하지 않습니다. 대신 린다는 몇 번 나오더군요. 2008년, 게놈 분석 프로젝트 도중에 정식으로 결혼을 하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반테가 린다 보다 먼저 죽는 경우의 독일 연금 지급 문제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결혼해서 공식적인 배우자가 아니라면 연금이 나오지 않겠지요, 아마. 결혼의 가장 큰 기능 중에는 저런 재산 분배 및 상속 기능이...(...)


스반테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이야기는 302쪽에 나옵니다. 찾아보시어요.'ㅂ'




스반테 페보.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김명주 옮김. 부키, 2015,18000원.


제목에 언급된 데니소바인은 ... 직접 읽어보시면 압니다. 이 부분도 꽤 재미있습니다. 원제는 Neanderthal Man: In search of lost genomes 입니다. 번역제목이나 거의 같죠. 번역제목에 약간의 문학적 유희는 있지만.



번역도 괜찮았고 글 자체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구입할 생각이 있습니다. 일단 방에 책장을 마련하면 그 때부터 열심히 수집하겠지요.



유인원의 세 대모 중 유일하게 살아계신 분이지요. 다른 두 분은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입니다. 게다가 그 세 분이 모두 루시의 아버지™와 연을 맺고 있다는 것이 또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일단 넘어가고...
하여간 세 대모라고 하니 운명의 세 여신이나 세 자매들이 이렇게 저렇게 떠오릅니다. 이것도 다른 이야기니 넘어가고.

제인 구달 할머니가 아직 여든 밖에 안되셨나 싶다가도,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걸 보면 또 놀랍기도 하고 그렇네요.
하여간 제인 할머니가 올해 여든이시고 곧 생일을 맞이하신답니다. 그런데 생일 선물로 받고 싶어하시는 것이 참 근사합니다. 부모를 잃은 고아 침팬지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탄자니아의 섬이 필요하답니다.(...) 그렇습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이다보니 생일 선물도 이 정도는 필요한 거지요.

한국에서도 생일선물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이 있나봅니다. 아무래도 이대 모 기관에서 주최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보니 이대 내에서 행사를 여는 군요. 아마 다른 방식으로도 모금을 받지 않을까요? 확신은 못합니다.

생각난 김에 저도 생일 선물에 조금 보탤 생각입니다.꼭 원하시는 생일 선물을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부제가 도시 근교 자연의 사계이고 원제는 Suburban safari입니다. 도시 근교에서 생활하는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마당-정원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텃새 다섯 종류와 철새 다섯 종류의 이름을 써보시오."라는 잡지의 퀴즈를 보고는 관심이 생겨서 직접 뒷마당을 관찰합니다.
이전에도 이쪽에 관심이 여럿 있었던 모양입니다. 뒷마당을 자유 잔디밭으로 놔두면서 지역의 여러 아마추어 곤충학자들에게 관찰할 기회를 주기도 하니까요. 환경관련 학자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렇게 집 주변과 지역을 관찰하며 까마귀와 다람쥐를 보고 스컹크를 만납니다. 내키지 않지만 바베트와 바베트의 친척들에게도 눈도장(혹은 손도장)을 찍어두고, 식물과도 친해집니다.

책은 사계절을 다루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1년만에 나올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용이 꽤 깊거든요. 뒷마당만 관찰해도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음, 음, 아파트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쉽지 않겠지요. 북한산 기슭이라면 스컹크는 무리더라도 새와 다람쥐, 청설모까지는 어떻게 될겁니다. 개인적으로 청설모는 질색 팔색하지만.;
(새밥 훔쳐먹고 소밥 훔쳐먹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키는 것이...ㄱ- 다람쥐는 절대 연약한 생물이 아닙니다.)

책을 보다보니 베른트 하인리히의 책이 많이 언급되더군요. 근데 이 전에 읽었던 까마귀 책에서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가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던데, 이 책에서는 꽤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패스. 전 베른트 쪽을 슬쩍 편들지만 말입니다.;
베른트 하인리히의 책과도 닮아 있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생물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환경도 같이 다룹니다. 무엇보다 수맥찾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정말...; 결론은 알 수 없다에 가까웠지만 저는 믿지 않는 쪽이라서 말입니다.


후반부에 나오는 에너지 효율에 대한 것은 생각할 부분이 많습니다. 물을 많이 쓸 것이냐, 아니면 전기를 많이 쓸 것이냐. 양쪽의 딜레마는 해결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후폭풍-기후 변화로 투모로우를 떠올리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런 것도 쉽게 생각할 부분은 아니더군요. 사막 기후에 가까운 도시에서는 정원을 푸르게 가꿔 물을 많이 쓰는 것은 한정된 수자원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정원을 푸르게 가꾸면 집 주변의 기온이 내려가는데 도움이 되고, 따라서 냉방을 조금 덜해도 됩니다. 전기를 덜 써도 된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면 전기를 절약하는 것이지만 물을 생각하면 또 아니잖아요..-ㅂ-;
이런 딜레마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물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한국에서는 별로 생각할 일이 없었지요.



솔직히 이대로 가면 투모로우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요.

한나 홈스. 『풀 위의 생명들』, 안소연 옮김. 지호, 2008, 1만 7천원.

책이 상당히 두껍고 번역도 쉽지 않았을거라 책 가격은 적당하다고 봅니다. 하기야 요즘 나오는 얇은 소설 가격을 생각하면.ㄱ-;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건전치 못한, 어떤 의미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 낭비. 하지만 글을 쓰기 전 손을 풀기 위해 가볍게 두드려 봅니다.

사건의 발단은 조아라에 연재중인 어느 소설입니다. 그럭저럭 재미있게는 보고 있지만 선호작 등록은 하지 않은 소설인데, 선호작 등록을 하지 않은 건 주인공의 성격이 취향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게다가 최근 편에서는 정말 저랑 파장이 안 맞는 상황까지..ㄱ-; 제가 질색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하기야 아무리 나이가 많다 한들, 현재의 몸에서는 나이가 몇 살 되지도 않는 걸요. 한 열 살 되려나? 그렇다보니 정신도 몸을 따라가는 모습인가 싶더랍니다.

하여간.

그 소설 댓글에서 잠시 논쟁(?)이 붙은 모양입니다.

주인공들의 종족은 엘프입니다. 설정상, 그 세계의 엘프는 성별이 없답니다. 읽으면서 그냥 넘긴 모양인데, 저도 오늘 읽으면서 알았습니다. 엘프는 무성.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개체들 간에도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다. 아기는 '낳는 것'이 아니라 기운을 불어 넣어 빚어 내는 것이니 남녀 성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같은 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운을 불어 넣을 때 어느 쪽의 기운이 더 많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아빠 혹은 엄마의 위치가 결정되는 것 같더군요.

이를 두고 엘프의 성별이 무성이 아니라 중성이 아니냐, 혹은 양성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나봅니다.

漁夫님의 이글루에서 이런 저런 성별 관련 포스팅을 찾아서 링크하려다가 패스. 일단은 주소 하나 걸어 놓습니다. 제3의 성, 그러니까 미토콘드리아를 둘러싼... (하략) http://fischer.egloos.com/4653932 일단 이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관련글들을 찾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위의 내용은 아마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기억합니다. 그 책은 세 번 읽었는데 왜 읽을 때 마다 새 책을 읽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_-+


하여간 본론으로 돌아가, 이 경우 엘프의 성별은 무성이 맞다고 봅니다.
국어사전까지 뒤지지는 않겠지만 중성이라고 하는 것은 남성 혹은 여성처럼 두 가지 성별의 어느 기준에도 속하지 않는 성을 말합니다. 만약 성별이 셋인 종족이 있다고 하면 그 세 가지 모두에 속하지 않는 경우게 해당되겠지요. 그 경우 대체적으로 중성은 성적 구분에 속하지 않는, 생식이 되지 않는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 중에서 연혁(...)이 오래되신 분이라면 아마 중성이라고 표현했을 때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겁니다. CLAMP의 『성전』에서, 새로운 아수라왕은 중성입니다. 무성이 아니라 중성. 남녀 성별로 갈려 있는 그 세계에서 성별을 가지지 않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중성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생식 불능. 그리하여 아수라족은 멸망하였습니다.(...)


양성은 뭐냐?
말그대로 남자와 여자, 양쪽의 성을 다 가지고 있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남녀구유라는 말로도 표현하던가요. 달팽이가 양성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식물 역시 양성이지요. 다만 식물에 따라서는 자가 수분이 되지 않아 교차수분, 즉 달팽이나 지렁이처럼 동일 종족의 상대를 만나서 정자를 교환해야지만 생식이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 양성의 경우에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사실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성과 여성, 암과 수. 이렇게 두 가지 성별로 나눌 때 각각을 나누는 기준은 대개 미토콘드리아의 제공 여부에 따라 갈립니다. 그러니까 난자와 정자를 생각해보지요. 정자는 난자에게 핵만 전달하고, 난자는 세포질까지 제공합니다. 난자를 제공하는 쪽이 암, 정자를 제공하는 쪽이 수에 해당합니다. 임신을 하고 아기를 품는 쪽이 암컷 혹은 여성이 아니냐고 하실 분들이 있는데, 지금 제 머릿속에서는 해마가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해마는 수컷이 새끼를 품지요. 암컷한테 난자를 받아서 자신의 아기방(자궁)에서 수정시켜 키웁니다. 그걸 생각하면 꼭 아기를 품는 쪽이 암컷이라고 볼 수 없지요.


...

그러고 보니 해마 타입의 임신공 설정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보신 분 있으신가요? (...)



덧붙여서.
임신수가 등장하는 어떤 소설에서는 임신 한달 되었을 때 태아의 심장소리를 듣는 장면이 있던데, 검색해보니 심장은 임신 5주에 형성되는군요. ... 인터넷 검색으로 이런 것 찾는 것이 오히려 귀찮긔..ㄱ-; 생물학 책 한 권 사다 놓아야하나.;


사람에 따라서는 혐오사진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에 따라서는 ...입니다. 그냥 생물학 시간이라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서 메스로 슥슥 갈라서 해부하지 않을까 싶군요. 하지만 평소라면 보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겁니다.;

토리노 난코의 『토리빵』에서, 민달팽이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몇 번 다른 책에서도 민달팽이가 질색이라는 말을 했고요. 제가 알고 있는 달팽이는 대개 손끝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귀여웠기 때문에 민달팽이도 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실은 플라나리아의 확대판을 떠올리고 있었다 해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랬는데,
지난 주말에 출근하다가 길에서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길 한가운데 뭔가 콩꼬투리 비슷한게 보이더라고요. 별 생각 없이 호기심에 들여다보았는데 그게 민달팽이였습니다. 바닥에 깔려 있는 포석은 일반 벽돌 크기입니다. 그러니 저 민달팽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도 짐작하시겠지요. 새끼손가락 길이보다야 훨씬 깁니다. 그러니까 왕꿈틀이를 옆에 던져 놓아도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ㄱ-; (먹어본지 오래라 확신은 안 서는군요.)

『토리빵』에서 등장한 장면은 새들이 먹이터 주변의 나무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먹이가 부족한가 싶어 채워주러 갔다가 민달팽이가 가득한 접시를 덥석 손으로 집은 모습이었습니다. 으아아.-_-; 비가 와서 미끄덩한 접시 위에 저런 커다랗고 미끈미끈한 것이 가득 들어 있으면 저라도 .....;



어쨌건 덕분에 새로운 걸 볼 수 있었으니까요. 다음부터는 밟지 않게 조심해야지.
물론 부제는 농담입니다. 설마 진담일까요. 저자 이름을 아시면 몇몇 분들은 아, 그 사람~ 하실 겁니다. 아마 이 책 좋아하실 분은 TBC님이실듯. ... 아니, 이거 To be continued의 약자 아닙니다. 쓰다보니 그리 되었다니까요?



베른트 하인리히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연구자인데, 종종 현대의 소로, 현대의 시튼이라 불린답니다. 1940년생, 폴란드 태생이고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B님은 아마 『동물들의 겨울나기』 나 『숲에 사는 즐거움』을 읽으셨을 겁니다. 아마 몇 년전일거예요.; 저도 기억이 가물합니다.

이 책을 뽑아 든건 단순합니다. 이전에 『통섭의 식탁』에서 목록을 보고 읽었던 책 중에 『핀치의 부리』가 있는데, 갑자기 이 책이 읽고 싶어지지 뭡니까. 재독하겠다며 도서관 서가에서 뽑아 드는데, 그 옆에 『까마귀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난번에도 이 책을 손에 뽑아 들며 읽을까 말까 했던 것이 기억나 이번엔 충동대출했습니다. 원래 인생은 다 그런거예요.-ㅁ-;

그랬는데, 책이 두껍고 내용이 많아서 읽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보통 출퇴근시간에나 책을 읽으니 이 책은 어제야 간신히 보았고요. 두 주쯤 걸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중에 몇 번 포기할까하다가 도로 마음을 접었던 것처럼 꽤 볼만 합니다. 물론 취향 차이니까 그러려니 하세요.; G에게 주면 하루 이틀만에 고스란히 돌아올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이 그리 쉽지는 않아요.


베른트 하인리히는 동물생태 연구 쪽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본인이 통나무집을 짓고 소로나 시튼처럼 주변 동물들을 관찰하며 소일하는데, 그냥 관찰만 하진 않습니다. 여러 모로 실험을 합니다. 야들이 정말 알고서 하는 행동인지 아닌지 확인하며 말입니다. 본인이 관찰하기 쉽지 않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모읍니다. 여러 사례를 분석하기도 하는데, 그 사례도 100% 믿지는 않습니다. 아, 이 철저한 학자의 자세.; 그것도 생물학자니까요. 한 번 봐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몇 번, 여러 번, 그보다 더 많이 봐서 실제 패턴으로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래도 귀납법이란게 있잖아요? 어디서 흑고늬가 튀어나올지는 모릅니다. 대체적으로 이렇더라 생각할 따름이지요.

이번 책의 연구 대상은 예전에 연구했다가 한 번 접었던 적이 있는 도래까마귀입니다. 영어로 까마귀는 크게 raven과 crow로 나뉩니다. 한국에서 많이 보이는 작은 까마귀는 crow. 그리고 도래까마귀는 일본에서 많이 보이는 것처럼 육식조류처럼 덩치카 크고 아주 똑똑합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많이 보이는 그 무지막지한 녀석들은 raven입니다. 전 raven이 갈까마귀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전혀 다른 종이더군요. 예전에 콘라트 로렌츠의 책을 읽을 때는 이걸 raven이 아니라 갈까마귀라고 했다고 기억하거든요. 이 책에서는 그것도 raven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똑똑한 새들이었다고 기억하는 걸 보니 raven 맞나봅니다. raven들 정말로 똑똑해요. 정말로.ㄱ-;

이야기의 시작은 도래까마귀 연구를 위해서 까마귀 둥지를 약탈(!)하기 위해 나무를 타는데서 비롯합니다. 그리고 데려온 도래까마귀 네 마리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 새장에서 같이 키웁니다. 보다보면 도래까마귀가 참 영리하고 귀엽도 키워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1장에서 이미 그 꿈을 완전히 접은지라 뒤에서는 참 좋다고 생각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먹이가 굉장하거든요. 저도 못먹는 고기를! 그렇게 자주 먹다니!
게다가 기본 밥이 들쥐입니다. 하루에 몇 마리씩 먹는데, 도저히 그걸 구할 자신이 없어요. 먹이양이 엄청나더군요. 집에서 햄스터(...)나 실험용 흰쥐(...)를 키운다고 해도 얘 밥은 못댈 겁니다. 한 마리도 댈 자신이 없더라고요. 게다가 올빼미처럼 통째로 먹는 것도 아니고 갈기갈기 찢어줘야 합니다. 무리예요.;

하여간 그렇게 키운 까마귀는 그냥 애완동물이 아니라 관찰 대상이 됩니다. 야들이 어떻게 서열을 정하는지, 어떻게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지, 남의 새끼를 데려와도 알아보는지, 자신의 알과 달걀(먹이)을 구분하는지 등등을 하나하나 실험합니다. 이 네 마리만 데리고 한 것은 아니고, 나중에는 주변에서 포획한 다른 도래까마귀들을 데리고도 실험합니다. 그리고 이 실험은 굉장한 막노동을 수반합니다.

단순한 실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시튼동물기처럼 동물의 생태를 자세히 기술하니 굴러가며 웃게 되는 장면도 여럿 나오는군요.


분명 어디선가 조금 심각한 오타를 하나 보았는데, 어디서 보았는지 도통 못찾겠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는 사전 메모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조금 후회되지만 어쩌겠나요.

이름의 어원 찾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Wolfram이라는 독일 이름이 늑대와 도래까마귀를 뜻한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도래까마귀는 육식을 하는데, 주로 강한 동물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먹이를 얻습니다. 그래서 늑대와 자주 어울려서 다닌다네요. 그래서 Wolf-rhaben, wolf-raven이라네요.



그러나 가장 감명깊게 보았던 것은 늑대-까마귀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갔을 때, 모텔에 머물면서 보았던 '생애 가장 큰 팬케이크'였다는게..OTL 주말에 프렌치 토스트건 팬케이크건 해먹어야겠습니다.


베른트 하인리히. 『까마귀의 마음: 불길한 검은 새의 재발견』, 최재경 옮김. 에코리브르, 2005, 23000원.


책이 참으로 두껍고 내용 많고 아름다워 저 가격이라도 이해갑니다. 그런데 품절.; 도서관에서 찾아보셔야겠네요.

덧붙이자면, 이런 쪽 연구하시는 분들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책입니다...(먼산) 아마도 수많은 동병상련을 양산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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