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 있는 프리모바치오에서 가장 유명한 메뉴는 빵에다 담아주는 달콤하면서 살짝 매콤한 파스타입니다. 빠네라는 이름일겁니다. 안 간지 오래되었지만 종종 이글루스 밸리에 올라오니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근 TGI에서 같은 내용의 메뉴를 내 놓았는데 왠지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가격이 문제고 TGI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L모 산하로 들어간 TGI에는 관심이 없어요. 여기도 C모 그룹 못지 않게 하향 평준화의 선두를 달리고 있거든요. 게다가 L모 그룹은 제게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제2L월드-관심 밖입니다. 후후후.

본론으로 돌아가, 빵에다 수프 혹은 파스타를 담아주는 것은 제게는 상당한 흥미를 유발합니다. 오봉뺑에서 다른 메뉴보다 수프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빵에다 담을 수 있기 때문이고요, 프리모바치오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단 음식이 싫습니다-빠네를 기억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리고 옛날 옛적에 모 연예프로그램에서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를 방영했을 때도 기억나는 메뉴는 오직 하나, 통식빵을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내고 오븐에 구운 다음 수프를 담아주는 메뉴였습니다.

그런 고로 이건 제게 약간의 환상을 더한 꿈인겁니다.
그리고 꿈은 현실로 이루어야 제맛입니다.


신세계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L모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종종 놀러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계시(?)를 받아 신세계 지하 푸드코트에 내려가 베키아앤누보에서 빵을 샀습니다. 베키아앤누보는 제게 신탁과도 같은 곳이니,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잉글리시 머핀을 팔고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며, 시골빵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곳도 이곳입니다. 혹시 있을까 싶어 갔던 것인데 제가 찾던 빵이 있던데다 가격도 괜찮습니다. 그리하여 빵 두 개를 구입했습니다.
그 날 저녁에, G가 팀 동료에게 여행 선물로 받은 일본 카레를 써서 카레를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더 맛있게 카레를 먹기 위해서입니다. 카레는 당일날 먹는 것보다 다음날 먹는 것이 더 맛있습니다.



니콘.......................................... 이라서 그런 겁니다. 빛이 안 좋아서 그런 거지, 절대로 저런 자주색이 도는 빵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빵입니다. 개당 1200원하는 베키아앤누보의 미니캄파뉴(깜빠뉴?)입니다. 크기는 대략 남자 주먹 정도의 크기입니다. 손이 작으시다면 그보단 클 것이고, 손이 크시다면 그보단 작은 겁니다.



칼로 톱질하듯 썰어서 윗부분을 도려냅니다. 빵칼이면 좋겠지만 없다면 조금 힘들수도 있습니다. 저는 집에 있는 과도 중에서 칼날에 톱날 비슷한(..) 것이 있는 칼을 썼습니다.
속은 파내서 써도 되지만 빵을 보니 조직이 아주 치밀하거나 하지 않아서 그냥 빵 속을 눌러서 안에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수프를 담았다가 새기라도 하면 모양이 안나죠.

그리고는 빵 그릇 두 개와 뚜껑 두 개를 오븐에 살짝 굽습니다. 데우는 효과와 그릇 모양을 고정하는 효과를 둘다 노립니다. 조직이 단단해진달까, 그런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고요. 오븐에 굽는 동안 옆에서는 카레를 데웁니다. 원래는 클램차우더를 끓일까 했지만 만만한 것이 카레입니다. 만들기 쉬운 것이 좋아요. 클램차우더는 올 여름에 다시 도전해서 레시피를 완전히 익힌 다음에 해보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캠벨 수프를 사서 시도할 가능성도 있지만...;



지지난 주말의 모습. 빵을 굽다가 살짝 태웠지만 칼로 조금 긁어내니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삶은 달걀은 부모님이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간식으로 삶은 걸 몇 개 놔두고 가셔서 함께 올렸습니다.



근접 사진. 혹시 카레가 샐까봐 아래 그릇을 받쳤습니다. 하지만 생각외로 빵 조직이 치밀한가봅니다. 전혀 안새더군요.



카레 반 통을 넣어 한 냄비를 끓였는데 양파 다섯 개가 들어갔습니다. 감자는 큰 것으로 두 개, 중간 크기 하나. 당근 하나. 고기는 없습니다. 고기를 넣으면 재료 준비 단가가 확 올라갑니다. 양파가 많이 들어간 것은 제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G가 밑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남겨도 좋으련만 그냥 왕창 썰어버리더라고요. 하지만 다음에는 그냥 제가 준비를 하렵니다. 양파가 아까워서 그랬는지 껍질을 벗기다 말아서 카레를 먹는 도중 질긴 무언가가 씹히는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이자슥...



카레에는 양파가 듬뿍 들어가야 하지요. 다섯 개는 조금 많았다고 보지만.
평소 레시피에는 기름이 전혀 들어가지 않지만 이 때는 양파를 위해 포도씨유를 조금 둘렀습니다. 하지만 기름 설거지가 귀찮으니 다음에는 그냥 물만 넣고 만들겁니다.



예전에는 오뚜기 카레도 좋아했는데 일본 카레에 한 번 맛들이고 나서는 일본 카레만 먹습니다. 입맛이 변한거죠. 슬슬 오뚜기 카레도 한 번 먹어줄까 싶기도 한데. 일본 카레가 비싸긴 하지만 여행 다녀올 때마다 꼭 한 두 개씩 챙겨옵니다. 그럼 1년에 1-2번이나 그 이상 해먹지만 그래도 다섯 번을 넘어가진 않지요. 한 번 만들 때마다 큰 냄비로 하나 가득 만드니 먹다보면 이것으로 족하다는 심정이 되어 그런가봅니다. 이 카레는 이번 주말에 끝을 냈으니 다음엔 아마 두 세 달 뒤쯤, 카레가 생각날 때 만들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에는 닭고기를 듬뿍 넣어 만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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