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크고 두껍고 무겁습니다. 그래도 『거의 모든 것의 과학』보다는 작고 덜 무겁습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니 작다는 것은 그냥 농담으로 들으세요.^-T


읽기 시작할 때는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읽다가 상당히 자주 졸아서 목표했던 지난 주 완독은 포기하고, 지난 토요일에는 책을 한뼘 빌려왔기 때문에 일요일에 마음 잡고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완독.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도 많고, 제가 질색하는 부분도 많아서 읽는 도중 상당히 건너 뛰며 보았습니다. 지저분한 이야기나 사실을 기술함에도 잔혹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거의 건너 뛰었네요.


하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아 일일이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읽었습니다. 그랬던 가장 큰 이유는 이것도 주 배경이 18-20세기의 미국과 영국이라 은근히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가 많았다는 겁니다. 저자인 빌 브라이슨이 자기가 살고 있는 오래된 목사관저의 집 여기저기를 훑으면서 하나씩 그 역사를 파헤치다보니 그 시대의 역사가 안 나올 수 없어요. 게다가 그게 집의 역사뿐만 아니라 시스템 혹은 토목공학, 건축학, 그리고 식물학(정원 때문에), 도시설계 등 다양한 부분을 다루다보니 어떻게 보면 중구난방이고 어떻게 보면 흥미진진합니다. 그건 읽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를겁니다.



자아. 이제부터는 포스트잇으로 표시한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 보지요.


p.65

그루벤하우스는 단순히 깊이 1푸트 반 정도의 경ㅅ지게 판 구덩이 위에 작은 건물을 세운 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p.194

저택을 팔고 30만 파운드를 챙긴 벡퍼드는 바스에서 은퇴 생활에 들어갔으며 적당한 고전 양식으로 154푸트의 탑을 하나 세웠다.


잠시 헷갈립니다. 푸트? 피트?



97쪽. 얼음의 생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시카고가 얼음 생산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다만; 랍스터를 바다 가재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바닷가재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뭐, 몇 안되는 걸리는 단어 중 하나였으니까요. 다른 부분은-물론 스캔하듯 읽었지만-책 두께에 비해 걸리는 단어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여간 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되지 않아도 되는, 멀리 이동이 가능한, 그러니까 요즘과 같은 지역음식이나 신토불이, 로하스적인 생활과는 정반대였던 것이 이 때쯤 시작된 것이었네요. 미국 중부의 대규모 농업은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을 겁니다.



188쪽.

B님은 보시면 아마 스트레스로.. ... ... 제임스 와이엇이라는 건축가가 나옵니다. 왜 이런 건축가가 인기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술에 절어 있었고 약속도 잘 안 지켰고 원하는 건축물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신이 운하는 건축물을 만드는데 힘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중략) 대성당에 대한 그의 경우는 특히 무분별하고 철두철미했다. 존 카터라는 비평가는 오래된 인테리어를 서슴없이 뜯어내는 와이엇의 편향성에 경악한 나머지, 그를 "파괴자"라고 일컬으며 (하략)


그 아랫 문단을 보면 더럼 대성당에 거대한 첨탑을 올려놓고 싶어했다는데 실현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232쪽.

포크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포크가 왜 네 갈퀴를 달았는지 궁금하시면 헨리 페트로스키에게 물어보세요. 책 제목 자체가 그렇습니다.



283쪽. 이번 주제는 전화입니다.

벨과 최초로 전화통화를 했다는 왓슨이라는 인물 말입니다. 에디슨이었다면 절대 안 그랬을 텐데 벨은 왓슷에게 회사-나중의 AT&T-의 주식 10%를 양도했답니다. 27세에 부자가 된 왓슨은 세계여행을 떠나고, 독서를 하고, MIT에서 지질학으로 학위를 따고, 조선소를 시작해서 직원이 4천명에 달하자 판매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벨러미(벨아미?;)를 추종하다가 싫증났을 때 잉글랜드로 이사하고, 셰익스피어 극에서 재능을 보이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은퇴생활을 즐겼다가 81번째 생일을 앞두고 플로리다의 겨울 별장에서 '만족스럽고 부유한 상태에서 사망했'답니다.

왜 이걸 줄줄이 다 읊나면 여기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발명자나 발견자 들은 이름을 남기지도 못하고 가난과 불행 속에서 죽어갔거든요. 크흡. 이런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320쪽.

이 책은 수정궁에서 시작하는데, 수정궁을 지었던 인물은 아무런 경력이 없었지만 다만 ASK A LIB... 아니, ASK THE 조지프 팩스턴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물, 만능해결사 조지프 팩스턴이었답니다. 귀족도 아니고 평범한 인물이지만 발상은 비범했더군요. 비용도 적게 들고 규격생산과 조립을 통해 간단히 대형 건물 짓기를 해결한 무서운 인물.

정원계에도 그렇게 출중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이 320쪽에 나옵니다. 랜실롯 브라운 이라는 사람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스럽고 목가적인 영국풍경'을 만들어낸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군요. 영국 저지대의 풍경 상당수가 18세기에 만들어진 풍경이랍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하하하.;ㅂ;

게다가 이 사람은 앞서 등장한 와이엇 같은 인물하고 전혀 다르게 이후 서비스도 제공했다는군요. 그러니까 프로젝트 후에도 사유지를 돌아보고는 개선안을 만들어 주었고, 브라운이 만든 정원은 프랑스 정원처럼 끊임 없는 유지관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두면 그대로 알아서 유지가 되었답니다. 게다가 배수의 달인이기도 했다니! 게다가 성격도 매우 좋았답니다.



327쪽.

전 계속 키니네라고 알고 있었는데 퀴닌이라고 사전에 나오네요.=ㅁ= 하기야 어떻게 읽느냐의 차이일뿐이니.



350쪽.

안드레아 디 피에트로 델라 곤돌라라는 석공은 귀족 지안조르조 트리시노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트리시노는 이 소년을 데려와 수학과 기하학을 교육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소년은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이름은 팔라디오가 됩니다. 건축쪽에는 약한 제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 팔라디오. 팔라디오 양식의 그 팔라디오랍니다.

음, 근데 이 이야기 뒤에는 하나가 덧붙어 있네요. 팔라디오와 트리시노가 플라토닉한 관계라는 것을 굳이 덧붙일 필요가? 뭐, 그런 후원자 관계는 이 책 속에 한 둘 등장하는 것이 아니지요. 조지프 팩스턴도 그랬으니까요.



397쪽에 등장하는 러스킨. 결혼 스캔들로 아주 유명한데 스캔들이 워낙 대단했고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나머지 아예 스캔들 자체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사람들이 반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온 어느 전기에서는 결혼 사실과 이혼의 원인이 된 첫날밤 사건을 아예 무시하고 지나갔다는군요. 흠흠흠.

근데 러스킨. 터너가 사망한 뒤 예술가가 국가에 헌납한 작품을 검사하는 걸 맡았다고 하는데, 에로틱한 수채화를 보고는 "분명히 정신 이상의 상황에서나" 그려질 수 있는 것이라 판정하고 거의 모두를 파괴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미친놈.

존 러스킨이 그 당시 정치, 사상, 사회, 문화 등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고*는 인류의 적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아요.



441쪽.

조지프 바잘게트는 런던의 대 악취 사건 후 런던 하수도 체계를 다시 만드는 일을 해낸 인물입니다. 터널을 만들어 거기서 나온 흙으로는 제방을 쌓고, 지하 시설물을 위한 공간도 넉넉히 만들고, 지상에는 우회로도 만들었답니다. 이런 토목공사를 통해 강의 유속이 빨라져 하수가 빨리 처리되었고, 자정능력이 증가하였던 데다 현재까지도 이 하수체계를 처리하고 있다네요. 부작용도 있긴 했지만 뭐...;



469쪽.

(중략) 백작의 바지는 "피부와 똑같은 색깔에 마치 장갑처럼 꽉 끼었다"고 말이다. 이런 옷차림은 브람멜의 연대 병사들이 입던 승마복에 근거한 것이었다. 재킷을 재단할 때에는 뒤쪽에 꼬리가 달리고 앞쪽은 잘라내서 사타구니가 드러나도록 했다. 남성복이 여성복보다 훨씬 더 섹시하도록 의도적으로 고안된 경우는 이때가 역사상 처음이었다.(하략)


헨리 8세의 복식이나 르네상스의 쫄쫄이 스타킹은 '의도적으로' 섹시하게 보이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지금은 어떤가? =ㅁ=




하여간 다양한 방면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 놓았으니 빅토리아 시대를 전후한 주거, 그리고 그 주변의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은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구난방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감안하고 보시어요.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박중서 옮김. 까치글방, 2011, 25000원.


원제가 At home: a short history of private life입니다. 짧은 역사. 그렇군요. 전체 역사가 아니라 근대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ㅂ'

묶어 쓰는 책은 대체적으로 마음에 덜 와닿은 책입니다. 그런 거예요...-ㅂ-;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지나치게 직설적이라 읽기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뭐, 제가 속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주제는 제게는 많이 버겁더랍니다. 먹는 것이나 애완동물 관련은 재미있게 보았는데 속옷의 역사를 아주 직설적으로 파헤치는 이 책을 보고 있노라니 막판에는 두 손 들고 휙휙 장을 넘기게 됩니다.

전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팬티가 먼저? 바지가 먼저?'이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러시아와 서양과 일본의 속옷 역사와 차이입니다. 문제는 그 속옷의 역사가 화장실 예의의 문화적 차이와도 연결된다는 겁니다. 아니, 가장 쇼크였던 것은 역시 러시아에서는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지 않았고 팬티도 비교적 최근에 입기 시작했다라는 겁니다. 셔츠에 해당하는 겉옷 자락 끝부분이 진한 노랑 혹은 갈색으로 물들었다는데서 두 손 들었습니다. 거기에 훈도시 이야기까지 넘어가면 더더욱. 허허허.;ㅂ;

하지만 재미있었던 것은 생리용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도시대의 생리용품이 어땠을 거라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한국은 어땠나 싶더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조선시대 말입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자료는 거의 없겠지만 조선이라면 있지 않을까요? 가랑이가 훤했던 에도의 속옷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잠방이라는 것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속곳이라 부르지요. 이전에 배웠던 걸 떠올리면 두 세 개 정도는 겹쳐 입었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게 고정형은 아니고 벙벙한 바지였으니까 기저귀 타입의 생리대는 고정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런 종류의 책은 본적이 없으니 학술 논문으로라도 있나 찾아볼 생각인데 없을 것 같아요.ㄱ-; 점잖빼는 학자들 성격에 이런 적나라한 이야기는 안 나올 것 같아...;


다른 책 두 권은 그냥 읽고 넘어갔습니다.
『세상의 모든 넛츠 레시피』는 음식만드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견과류를 이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모아 나열한 건데, 제 취향은 없었습니다.
『계절의 선물』도 마찬가지. 여기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맨 앞에 나온 비스코티라, 이건 제가 집에서 쓰던 레시피랑 비슷하더군요. 뭐, 제가 만들면 기름이 한 방울도 안 들어가긴 합니다만 이쯤되면 진짜 비스코티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괴식이 나오긴 하지요. 하하하;


요네하라 마리. 『팬티 인문학』, 노재명 옮김. 마음산책, 2010, 12000원.
닥터넛츠. 『세상의 모든 넛츠 레시피』. 영진미디어, 2013,15000원.
문인영. 『계절의 선물』. 북하우스엔. 2012,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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