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간절히 떠올랐던 맥주. 하지만 몸 상태가 정상이 될 때까지 잠시 참습니다.)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오늘 의무실 가서 하소연했다가 들은 소리입니다.

 

 

그제와 어제 올렸던 글이랑 트위터에 올렸던 몇몇 생존신고 트윗을 보면 아시겠지만 어제의 제 몸은 열에 취해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걸 시간 순으로 정리 해보지요.

 

 

1.발단

9.19(토) 09:00 집 근처 병원 문 열자마자 달려가서 독감예방접종을 함.

 

2.전개

09.20(일)

00:00경 일요일로 넘어오는 자정 경, 열이 오른다고 느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임.

06:00경 밖에서 나는 생활 소음에 더는 못자겠다 싶어 기상. 일어나자마자 바로 체온측정. 37도 돌파 확인.

 

집에 있는 체온계는 귀에 넣어 측정하는 접촉식 체온계입니다. L의 체온 측정을 위해 집에 사뒀던 필립스 제품인데, 이런 체온계라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이유 중에는 접종한 왼팔의 통증도 있습니다. 옆으로 누워 자는 걸 좋아하는데 옆으로 누우려고 뒤척일 때마다 왼팔의 통증이 와락 밀려오니 잠이 퍼뜩퍼뜩 깨더군요.

 

08:00경 다시 측정했을 때 38.4도(38.2도) 확인.

 

평소 체온을 안잰다면 몰라, 코로나19 때문에 날마다 체온을 재는 덕에 평소 체온이 어떤지는 대강 압니다. 물론 비접촉식으로 체온을 재다보니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일정한 체온을 유지한다는 건 압니다. 그러니 접촉식으로 측정해서 그보다는 조금 높게 나온다고 감안해도, 평소 나오던 측정치를 크게 벗어나니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기겁하고 2시간 마다 체온을 재기 시작하는데, 이 때부터는 안 떨어집니다. 그리고 함께 나타난 증상들은 대략 이렇습니다.

 

-주사 맞은 자리의 통증. 누르면 아프고, 어디 부딪혀서 생긴 혹처럼 주변부가 부어올랐음. 그 주변 부위에 열감 있음. 어딘가에 심하게 부딪혔을 때 발생하는 통증과 열감이 매우 유사. .. 그거 염증 반응 아닌가. 눌러도 아프고 만지기만 해도 아픕니다.

-몸 전체에 열이 있음. 몽롱한 느낌.

-으슬으슬 부들부들 떨릴 정도는 아니지만 오한은 있음. 찬바람을 못 견뎌서 둘둘 싸매고 있음.

-몸살감기의 증상으로, 약간의 근육통도 수반. 물론 주사 맞은 팔의 근육통은 약간이 아니라 상당한 근육통입니다.

-열이 오르니 속이 울렁거림. 시큼한 거, 시큼한 거, 시큼한 거! 이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음료는 오렌지 주스가 아니라 과일향 유사 유산균 음료입니다. 어, 그러니까 쥬시쿨 같은 것 말입니다. 제가 다니는 마트에는 쥬시쿨만 있더라고요.

-속이 울렁거리니 음식류도 안 받습니다. 소화가 안되어,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위가 부대낍니다. 당연히 입맛도 없고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감기약을 먹을까 말까 망설였지만, 감기약을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냥 종일 시름시름 앓으면서 자다가 깨다가 조아라 소설 읽다가 트윗하다가 다시 자다가를 반복.

 

13:00경 한잠 자고 일어나 쟀더니 드디어 37도 대로 떨어짐. 만세!

 

 

 

3.절정

14:00경 한참 놀다가 몸 상태가 이상해 다시 쟀더니, 도로 38.4로 복귀.

 

그 뒤로는 시름시름 앓으면서 자다 깨다 멍때리다를 반복.

 

17:00 본격적으로 드러누움. 자다 깨다 로오히 하다를 반복하다가, 그냥 눈 감고 명상(..)을 즐김. 안자던 낮잠을 자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몸부림 치다가 어느 새 기절.

 

 

4.결말

9.21(월) 12:45

새벽에 갑자기 눈이 떠지고는 열이 없다는 생각에, 시간을 확인하니 12시 45분. 나와서 잽싸게 체온을 재니 36.8도.

만세! 드디어! 드디어 정상체온!

 

이라고 생각했지만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그도 그런게 하도 열이 안내려서, 상황 봐서는 병가든 재택근무든 써야겠다 생각했거든요. 다만 월요일은 제가 출근조라 일단 출근해서 보자 생각했는데 체온이 내렸습니다. 음. 병가도 재택근무도 물건너 갔네요. 안녕. 일단 출근하고 봅시다. 새벽에 운전해서 갈 생각하니 아득하지만, 그래도 출근해서 평소의 업무 루틴을 밟는 쪽이 한 주를 가뿐하게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

나이 먹으면 그런 루틴이 있어야 한 주가 편안히 돌아갑니다. 업무 기름칠이 잘 된다고 표현해도 틀리진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루틴이 어그러지면 한 주의 시작도 어그러지고, 그 주가 좀 버겁지요.

 

 

아침 업무를 대강 해치우고 의무실에 가서 하소연했더니 왜 미련하게 약 안 먹냐고 한 소리 하시더군요. 한 소리 들을법 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독감 주사 맞고 열이 오르면 타이레놀을 먹어도 된답니다. 하루에 두 알 정도요. 지금도 팔에 통증이 있다고 했더니 한 알 먼저 챙겨주시면서 힘들면 점심 때도 오라 하시더라고요. 점심 때도 전화 걸어서 따로 챙기시던데.. 크흡.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다음에 업무로 보답하겠습니다.(..)

 

 

지금은 증상이 거의 다 가셨습니다. 그래도 약간 원래의 몸 상태가 아님은 알겠더라고요. 원래 귀 안쪽이 약한 편이라 감기 올 때면 귀의 상태가 제일 먼저 이상합니다. 비염이 있기 때문에 비염과 감기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증상이 귀의 이상이기도 하고요. 어제도 귀 안쪽에 열이 올랐고, 아직도 귀 안쪽은 살짝 이물감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간질거림 같기도 하네요.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게 정상은 아니라고 보는 이유도 그겁니다. 목에 살짝 낀 가래는 계절적 증상이고, 콧물은 알레르기 성 비염이지만 팔은 어찌 봐도 독감예방접종이 원인입니다. 오늘 씻으면서 보니 주사 맞은 부위 주변이 아주 소담하게 부어 있습니다. 열감도 있고요. 뜨끈한 정도는 아니지만 열은 올라 있고, 부어 있고, 통증도 있습니다.

 

 

원래 주사맞을 때도 듣긴 했습니다. 주사 맞은 팔이 뻐근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심각하게 열이 오르면 병원에 전화하라고 했다고-같은 병원에서 주사 맞았던 어머니는 들었답니다만, 그 열이 오른 날이 일요일이면 방법이 없죠. 그래도 열과 그 수반되는 부작용 외에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타이레놀 받으면서 다른 이야기를 들은 게 저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독감예방접종 등, 주사 맞고 나서 반응이 크게 오는 사람들은 건강한 거랍니다. 면역체계가 강하다는 의미라나요. 반대로 면역체계가 약하면 예방접종 후 반응도 약할 수밖에 없다는군요. 그런가 생각하다, 제가 왜 평소 독감 주사를 안 맞았는지를 비로소 떠올렸습니다. 몇 년 전이더라, 독감주사를 맞고 그 후폭풍에 고생한 다음, 독감주사 맞고 독감증상 앓느니, 그냥 안 맞겠다고 했던 아련한 기억이 있더군요. 하하하하. 물론 독감 걸리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넘게를 고생합니다만, 어제 하루 종일 뻗어 있다보니 괜히 맞았나 후회했던 기억이 떠올랐고요. 오늘 새벽에 기력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독감 주사 안 맞겠다고 도로 선포했을 겁니다.

 

 

올해는 특별히, 코로나19와 독감의 환상적인 협업이 걱정되어 맞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올해도 독감 접종은 건너 뛰었을 겁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내년에는 ... 으음, 맞을까요 말까요. 그건 내년의 고민으로 놔두지요.

 

 

그래도 올 겨울 준비는 하나 마쳐서 다행입니다.


열이 오르고 으슬으슬 춥고 근육통이 생기고, 머리가 무거운 것은 카페인 때문만은 아닐겁니다. 물론 제가 아침부터 시작해, 홍차 한 포트, 커피 한 포트를 비워냈지만 카페인에 취해 어질어질한 것이 아닐겁니다.


반쯤은 자기 최면이긴 한데.-ㅁ- 당연히, 어제 맞은 독감 백신 때문에 그러겠지요.
작년에 신종플루 백신 맞고도 다음날 어지러운데다 몸이 무거워져서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그러네요. 이번 백신은 독감과 신종플루의 두 종류를 다 예방할 수 있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여튼 주사 맞은 자리는 근육통으로 고생입니다. 뭐, 오늘만 고생하면 내일은 괜찮겠지요.;

다들 감기랑 독감이랑 둘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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