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윔지경은 제가 좋아하는 탐정 수위 안에 듭니다. 하지만 이번 권으로 그 순위는 추락할 것으로 보이니, 역시 미스 마플이나 캐드펠 수사님이나 브라운 신부님을 상위권으로 밀어야 하는 건가요. 엘러리 퀸은 그렇게 해도 순위가 떨어지지 않는데 왜! ;ㅁ;


동서미스테리북스에서 나온 『의혹』에 실린 어느 단편에 피터 윔지경의 결혼 후 이야기가 잠깐 등장합니다. 그래서 윔지경이 퀸과 마찬가지로 기혼남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맹독』은 피터 윔지경이 어느 아가씨에게 홀라당 반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내리 담고 있습니다.
플롯은 아주 단순합니다.
피터 윔지경은 우연히 피고석에 앉아 있는 어느 아가씨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 아가씨는, 그 때의 분위기를 살려 말하자면 빅토리아 시대의 꽉 막힌 시대를 벗어나 이제 본격적으로 여권 신장을 부르짖던 그 때에 맞춰 어느 남자와 동거를 했습니다. 뭐, 결혼하기를 원했었는데 남자가 거절했다던가요. 이 남자도 그리 좋은 남자는 아니었지요. 그러다가 몇년 뒤에 남자가 아가씨랑 결혼할 결심을 하고 청혼을 했을 때, 버럭 화를 내고는 남자와 헤어집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아가씨에게 미련이 남아 몇 번이고 주변을 서성이지요.
그랬는데 어느 날 이 남자가 죽습니다. 위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죽습니다. 남자의 죽음에 대해 또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무덤은 다시 파헤쳐져 검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남자의 몸에서는 치사량의 비소가 검출됩니다. 그 날 이 남자가 먹은 것을 곰곰이 따져보니 아가씨와 같이 커피를 마셨단 말이죠. 그리고 이 남자가 아가씨를 귀찮고 번거롭게 한데다가 이날도 싸움이 났다는 것은 주변을 조사해보니 금방 나옵니다. 아가씨는 곧 독살 혐의로 재판장에 오릅니다.

이 아가씨에게 홀라당 반한 윔지경은 당장에 찾아가서 프로포즈(...)를 하고는 '제가 꺼내줄게요!'라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그 뒤는 피터경의 좌충우돌. 그리고 파커의 좌충우돌로 이어집니다. 마무리는 공작님의 경악.


커플염장은 이제 그만. 아... ... 물론 가상의 인물이란 건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홀라당 반해서 이렇게 바보짓을 하는 걸 보면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그러니 차라리 전작에서 못난 남자에게 반해 하마터면 가족과 척을 질뻔한 메리 폴리가 귀여워 보일 지경이예요.
앞권인 『증인이 너무 많다』랑 이어지는 이야기라 괜찮긴 한데, 그래도 사이에 몇 권 쯤 빠진 모양입니다. 여튼 피터 윔지경 시리즈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워 해야하는겁니다.

트릭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부분에서 퐁하고 등장하더군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 책보다는 전작이 조금 더 마음에 듭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윔지경이 자책하는 장면이 더 많이 등장해서 그런가봅니다.


여튼.
제일 마음에 안드는 것은 책의 판형과 편집입니다. 아무리봐도 이 책은 이렇게 크게 만들 필요가 없어요. 종이 낭비고 책값 낭비입니다. 아니, 작게 만들어서 이 가격을 매겨도 살 사람은 산다고 생각합니다. 도로시 세이어즈의 책을 볼 사람은 알아서 살텐데, 왜 이리 크게 만들었을까요. 신국판이라지만 맨 처음 책인 『시체는 누구』가 문고판형으로 작은 하드커버로 나온 걸 보면 다음 책도 그렇게 귀엽게 만들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도서관에서 다른 책에 파묻혀 발견되지 않을까봐 그랬나요. 멋있게 만들긴 했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작게 편집했다가 그걸 도로 확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 작게 만들어도 좋았다고요.;ㅁ;
뭐, 이건 제가 작은 책을 선호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드커버라는 것은 마음에 드는데 이렇게 커다란 책을 뜯어서 다시 제본하려고 생각하니 훨씬 아쉽습니다. 작게 도로 내주진 않으려나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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