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구나.”

 진영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보신각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진 않지만, 그리고 TV도 없는 집이라 그런 프로그램도 보진 않지만 왠지 공기가 그랬다. 12월 31일의 떠들썩함, 해를 보내고 해를 맞이하는 흥분과 기대감. 크리스마스, 아니 그 전의 동지부터 시작되었던 들뜬 분위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동지는 일을 벌였던지라 그 때의 고양감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느낌이다.

 “넋은 잡아두고, 쟁반 좀 받아줘.”

 넋 놓고 있지 말라고 돌려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1인용 나무 쟁반 위에 투박한 도자기 그릇 하나와 나무 숟가락, 투명한 유리컵이 올려 있었다. 껴안고 있던 쿠션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받으니, 그릇에 팥죽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진영이가 쟁반을 받아 들자 진하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운하와 선규와 함께 또 다른 쟁반을 들고 왔다. 앉은뱅이 탁자에 네 개의 쟁반이 나란히 놓였고 다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밑 맞이 야식입니다.”

 아무래도 준비한 것이 운하인지, 그렇게 말하는 운하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그럴만도 한 것이, 사발에는 팥죽이 담겨 있고 유리컵에는 식혜가 있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뭔가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게 이 식혜인가보다.

 “식혜도 직접 만든 거야?”
 “그야. 물론 외숙부의 지도를 받았지만.”

 진하가 대신 대답했다.
 팥죽 위에는 노란색 가루를 뿌려 두었다. 뭔가 하고 숟가락으로 쿡 찔러보니 이건 그냥 가루가 아니다. 노란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를 팥죽 위에 올렸다. 그러고 보니 탁자 한 가운데 놓인 것은 동치미와 인절미다.

 “우왓. 손 엄청나게 갔겠다. 팥죽에 인절미에 식혜까지. 게다가 다 집에서 만든거잖아.”
 “좋은 친구를 뒀다고 생각해.”
 “넵. 좋은 친구님.”

 운하가 실실 웃으며 자랑하자 진영이는 즉시 대꾸했다. 이런 좋은 친구가 없었다면 팥죽이고 뭐고, 아마 지금쯤은 집에 없는 아버지랑 아저씨를 떠올리며 혼자 TV를 보고 있었을 거다. 이런 맛있는 음식은 생각도 못하고 아마 식은 피자를 전자렌지에 데워 먹고 있겠지. 생각만해도 등줄기가 오싹하다. 지금 눈 앞의 광경과 비교할 수 있을까.

 “맛있다.”

 인절미 위에 팥죽을 퍼서 소스처럼 얹어 한 입에 넣으니 고소한 콩가루에 쫄깃한 인절미, 그리고 소스 같은 진한 팥국물이 아주 잘 어울린다. 단팥죽이 아니라 그냥 팥죽이지만 그래서 더 맛있다. 단 맛은 옆의 시원한 식혜로 보충하면 되니까.

 “내년에도 잘 부탁합니다.”

 진영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옆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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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목동 밀탑의 단팥죽. 사진과 위 이야기의 팥죽과는 다르지만 제가 가진 사진은 오로지 단팥죽뿐입니다.;)

위에 담은 이야기의 틀은 아는 사람들만 알겠지만 그래도 제 블로그를 방문하는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을 담았습니다.
내년에도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ㅅ<

내일의 목표와 다짐, 기타 등등에 대해서는 오늘 귀가해서 쓰거나 아니면 구정 때까지는 쓰겠습니다. 핫핫핫. 그러고보니 10년 계획 관련해서 쓸거리가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자아. 저는 2009년의 마지막 7시간을 즐기러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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