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내용을 소화하고 필요한 것을 추출하는 일을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그냥 눈으로만 내용을 훑고 조용히 던진 책은 엄밀히 말해 읽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600쪽이 넘는 이 책은 뒷부분에 참고문헌과 색인이 들어 있으므로 실제 읽는 분량에서 얼마간 빠지긴 하지만 그래도 500쪽이란게 만만한 분량은 아닙니다. 거기에 소설도 아니고 읽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두께 때문에 손을 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손 대고나서 내려 놓는데까지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제 저녁, 책을 읽기 시작해서 내려 놓을 때까지 1시간 남짓 걸렸으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읽은 게 아니라 훑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라기에 조리법이라도 자세히 실려있는 책인가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고, 해당 조리법이 소개된 책이나 정보 그리고 그 레시피의 저자를 다루면서 요리의 역사를 짚어가는 역사책에 가깝습니다. 옛 조리법을 다루기 때문에 만드는 법도 아주 구체적인 것이 아니고 실려 있는 이야기도 입맛에 안 맞더군요. 아마 책 자체의 목적은 그런 조리법을 다루면서 음식의 발전사, 음식의 변천사, 식문화의 발전과정 등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은데 재미가 없으니 읽다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초반에는 좀 읽다가 훑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식재료나 음식 등에 대한 주석은 나쁘지 않습니다. 귀리죽과 같은 번역도 괜찮은데 ...



149쪽. 카트린 드메디치. 그 뒤에 이어지는 교황 클레망 7세. 근데 또 거기 등장하는 음식 zabaglione는 자발리오네라고 나옵니다. 삼촌이라는 단어도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데 계속 그 뒤에도 삼촌이라고 언급되는군요.


226쪽에 등장하는 14세기 일본의 사례는 조금 많이 이상합니다. 지방에서 얼음 구덩이를 만들어 얼음을 보관했다는데 그 오가는 대화가 일본 분위기가 전혀 아닙니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을 일본에서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 같은 어색함. 이건 원서 자체가 그랬을 수 있는데요. 게다가 얼음 구덩이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에게 왕자가 채찍질을 가했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보통은 그 시대의 일본이라면 왕자라 부르는 것도 이상하고, 채찍질보다는 태형일 것 같긴 한데?


236쪽. 에그 베니딕트......... 홀런데이즈 소스....


372쪽. creamed mushroom. 크림이 있는 버섯.

마찬가지로 402쪽에는 Frech creamed oyster를 크림이 있는 프랑스식 굴로 번역했습니다.


546쪽. 니겔라 로슨. Nigella Lawson을 니겔라.... (먼산)



레시피에 대한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을 곁들인게 짤막짤막하게 이어지다보니 맥락이 없더라고요. 이어지는 느낌이 안들고 왜 이게 역사를 만든 레시피에 들어가냐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렇게 중요한 레시피인가요? 역사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인가요. 몇몇은 그럴 수 있지만 나머지는 왜 올랐을까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애초에 원서 제목이 A history of food in 100 recipes이니 원제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번역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요.



그리하여 포기했습니다. 읽고 싶으신 분들은 큰 기대 마시고 보시되 내용이 쉽지 않다는 건 감안하시어요.




윌리엄 시트웰.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안지은 옮김. 에쎄(글항아리), 2016, 26000원.


글항아리는 또 문학동네 자회사였는지 임프린트였는지로 기억하는데 출판사를 보고 안심했다가 뒤통수 맞았습니다.

지난주 Chemex 세일하고 있을 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카페뮤제오에서 구입했습니다. 통장에 여유자금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요. 그러니 통장에 돈이 있으면 안됩니다.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니까요.





그리하여 이번주에 도착한 상자 두 개. 같은 날 들어오더군요. 교보문고 상자는 넘어가고, 뒤쪽이 메인입니다.





사은품으로 들어오는 원두는 분쇄 요청했습니다. 사은품 원두는 가장 먼저 마시기 때문에 항상 분쇄 요청을 넣습니다. 오래 두고 마실 커피는 직접 갈고, 바로 마실 것은 그냥 두고. 인도네시아 만델링이었는데 맛이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제 취향보다는 신맛이 도드라지는 편입니다. 제 취향은 스모키, 초콜릿.






완충재 말아 놓은 것을 풀면 이런 모양입니다. 상자가 셋.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이 고루 섞여 있네요.






꺼내면 이런 모양입니다. 왼쪽의 나무 뚜껑 달린 것이 설탕과 우유그릇이고요, 앞쪽은 케멕스용 유리뚜껑, 태공이 들어가 앉은 것은 케멕스 유리머그입니다.





크기는 대강 이렇고요. 생각보다 설탕+ 우유 그릇이 큰 데 저기에 술 담아 마셔도 예쁘겠다는 망상을 잠시 해봅니다. 망상인건 몸 상태 때문에라도 술은 마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몸 상태는 부차적인 거고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니까요. 알콜중독은 무서운 겁니다.(...)



X자 모양의 머그라 저기에 라떼를 만들면 참 예쁘겠다 생각은 하지만 전용 솔이 없다면 설거지가 쉽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유리제품은 항상 무섭습니다. 재 취직 후 사무실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제가 깨먹은 것이, MANUAL의 유리드립퍼 두 개, 유리 서버 하나, 홍차 우리는 용으로 쓰던 포트 하나, 스타벅스의 센다이 한정 머그 하나, 그리고 엄지발가락까지 꽤 많습니다. 마지막에 이상한 것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하여간 유리제품은 쓰기 무섭더군요. 그리하여 개봉해서 사진 찍고는 도로 포장해 넣어 두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쓰는 것이 좋지만 이것도 도로 깨먹을 것 같고 케멕스는 가격도 비싸니까요. 아마 이러다가 누군가의 선물로 도로 방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군요....



엊그제 파랑새가 "비싸서 못사는 건 질러야 하고, 싸서 지르는 건 지르면 안된다"는 충동구매의 팁을 말하던데 이건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인지 모르겠습니다. 전자여서 안사다가 후자라 질렀으면 어느 쪽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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